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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함승민 기자의 센터링 경제학④ ‘플랜B’ 없는 축구와 경제 - 플랜B 유무가 진짜 실력이다 

차선책 없으면 작은 변수에도 휘청 … 플랜A와의 조화도 중요 

대한민국 축구와 경제에 공통적으로 없는 게 있다. 플랜B다. 플랜B는 첫째 안(플랜 A)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 진행할 두 번째 계획을 뜻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또 하나의 준비다. 개인의 인생살이든 기업 경영이든 뜻하지 않은 내·외부 변수에 부딪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대한민국 축구와 경제 모두 플랜B의 부재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월드컵 직후 사입한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왼쪽)과 우승을 차지한 독일 대표팀의 요하임 뢰브 감독. 플랜B의 유무가 이들의 운명을 갈랐다.
A그룹: 네덜란드·콜롬비아·코스타리카·멕시코·칠레·독일·미국, B그룹: 대한민국·스페인·브라질

A그룹과 B그룹의 차이는 뭘까? 축구에 관심이 많거나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A그룹은 올해 여름 열린 브라질 월드컵에서 성공한 팀, B그룹은 실패한 팀이다. 독일은 우승을 차지했고, 대회 전 불안감을 노출했던 네덜란드는 예상을 깨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상대적 약체로 평가 받던 신대륙 국가들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보였다.

이와 달리 강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은 준결승전에서 독일에게 1대 7의 대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브라질이 개최국 이점까지 안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결과다. 최근 주요 대회를 연이어 석권한 스페인은 조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조별 예선에서 떨어졌다. 기량 차이를 감안할 때 스페인의 탈락처럼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지만, 경기 내용 측면에서 많은 실망감을 안겨줬다.

경기 도중에도 상황 따라 플랜B 가동


*총 수출입의 대 국민총소득(GNI) 비율 자료: 한국은행
A와 B그룹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플랜B의 유무다.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은 대부분 플랜B의 덕을 봤다. 월드컵 본선에만 집중해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A그룹의 많은 팀은 대회 전후 주요 선수를 부상으로 잃은 상태에서 출전해야만 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이들은 플랜B 효과를 톡톡히 봤다.

대표적인 게 콜롬비아다. 콜롬비아의 간판 공격수 라다멜 팔 카오가 대회 직전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콜롬비아는 플랜B를 가동했다. 플랜A인 투 톱(공격수 두 명) 전술을 포기하고 한 명의 공격수만 배치했다. 대신 그 아래에 위치한 공격형 미드필더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포메이션을 짰다. 그 결과가 하메스 로드리게스라는 신성의 등장이다. 그의 활약 덕에 팀은 8강 진출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콜롬비아뿐만 아니다. 멕시코는 핵심 미드필더 자원 루이스 몬테스가, 코스타리카는 에이스 알바로 사보리오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두 팀 모두 바로 전술에 변화를 줘 효과를 봤다. 네덜란드 역시 케빈 스투르트만이라는 유용한 미드필더가 빠진 채 대회에 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회 직전인 5월 에콰도르와의 평가전부터 쓰리백 전술로 전환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미국 대표팀 감독도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조지 알티도어가 부상을 당하자 전술 변화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들의 플랜B는 경기 중간에도 등장한다. 코스타리카·네덜란드·멕시코·칠레는 모두 쓰리백과 포백 전술을 병행한 팀이다. 점수, 경기 시간, 상대팀의 전술과 특징 등 상황에 맞춰 순간순간 수비수의 숫자와 포메이션을 바꿔가며 플랜A와 플랜B를 오간 것이다.

이와 달리 스페인과 브라질은 플랜B 부재의 반면교사가 됐다. 정교한 패스로 점유율을 높여 경기를 지배하는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한다는 뜻)’로 2010년 월드컵과 2012년 유럽선수권에서 우승한 스페인은 선수층과 축구계 전술 변화를 간과한 채 플랜A만을 고집하다가 몰락했다. 브라질 역시 월드컵 1년 전에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과 똑같은 선발 명단과 전술만 내세우다가 네이마르와 치아구 시우바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준결승전과 3·4위전에서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만한 수모를 겪었다.

대한민국 대표팀 플랜A 고집하다 실패

한국 대표팀도 경직된 전술 운용이 패인이 돼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러시아와 알제리를 상대로 같은 전술만 고집하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경기 중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선수 교체도 전술 변화가 아니라 지친 선수를 성향이 비슷한 다른 선수로 대체하는 용도로만 썼다. 같은 전술은 분석 당하기 쉽다. 갈수록 수싸움이 치열해지는 현대 축구에서 순진무구하게 ‘난 이 카드 밖에 없소’라고 온 동네에 소문을 낸 셈이다.

사실 한국 축구의 플랜B 문제는 지난 월드컵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을 뿐 비단 당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축구는 선수나 전술 실험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탓에 이 문제가 자주 나타난다. 금메달의 좋은 성적을 거둔 아시안게임에서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유소년대회에서도 비슷한 약점을 드러냈다.

아시안게임과 19세 이하 AFC챔피언십은 일정이 빡빡한 대회였다. 하루 걸러 하루씩 경기가 열렸다. 이 와중에도 한국 대표팀은 플랜A만을 내세웠다. 베스트11 명단에도 변화가 없었다. 선수들의 체력과 경기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잦은 실수를 보이며 답답한 경기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아시안게임에서는 상대팀 역시 플랜B가 없는 북한인데다가 준결승에서 연장전까지 가며 체력을 소모한 덕(?)에 금메달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유소년 대회에서도 같은 이유로 중국과 비기고 일본에게 지면서 조별리그 탈락과 함께 내년 열리는 20세 이하 월드컵 출전권도 놓치게 됐다.

플랜B가 없을 때 위기가 닥치는 것은 축구뿐만이 아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기업의 경영에서도 국가 경제에도 플랜B는 필수다. 과거 실패한 기업들을 보자. 노키아와 코닥은 각각 과거 피처폰, 필름 사업의 영광을 버리지 못해 존망의 위기에 이르렀다. 소니도 트리니트론 브라운관에 의존하다 액정표시장치(LCD) 등 평판 TV 시대 진입에 늦고 말았다. 브라질과 스페인 축구 대표팀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과 진입해 있는 시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탓에 일이 틀어졌을 때의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 경제에 번지고 있는 우려 섞인 시선도 플랜B의 부재와 관계가 깊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대비를 걱정하게 마련이다. ‘삼성은 스마트폰 아니면 뭐로 돈 벌지?’ ‘삼성과 현대차가 망하면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 아닌가?’ ‘수출마저 안 되면 경제성장은 물 건너 가는 건데…’ 결국 삼성·현대차의 차세대 사업, 이들 말고 경제 성장을 이끌 후보 기업, 수출 외의 성장 동력 등 플랜B가 모호하다는 걸 뜻한다.

쏠림현상 심각한 한국 경제

실제로 지표를 보면 한국 경제는 플랜B보다는 ‘올인’과 가깝다. 1950년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이 비중이 53.9%로 증가할 정도로 국내 경제는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입총액을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무역의존도는 3년 연속 100%를 넘은 데 이어 올 들어서도 비슷하다. 경제 규모가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높은 무역의존도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2012년 한국의 GDP 기준 무역의존도는 109.9%에 달했지만 11위인 캐나다는 62.8%, 12위인 호주는 40.8%에 각각 그쳤다. 주요 선진국인 미국(30.4%)·일본(31.3%)·프랑스(57.1%)·영국(65.2%) 등도 한국보다 무역의존도가 훨씬 낮다.

소수 기업 의존도 심하다. 최근 주가 하락으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이 유가증권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가깝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은 2012년 법인세 신고기업 기준 39조 원으로 전체 기업 155조1000억 원의 24.9%를 차지한다. 10대 그룹의 전체 고용 증가에서 두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90%가 넘는다.

개별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에서 스마트폰 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0%를 육박한다. 삼성 계열사의 삼성전자 매출 의존도 역시 높은 편이다. 삼성전기의 삼성전자 매출 비중은 2009년 46% 수준에서 2011년 52%로 절반을 넘어섰고, 지난해는 57%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는 60%에 달하기도 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2012년 94%, 지난해에는 100%를 기록했다. 결국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흔들리면 삼성그룹 전체가 흔들린다. 그러면 수출이 흔들리고, 수출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휘청거린다.

같은 위기가 와도 플랜B가 없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유가, 지정학적 분쟁, 자연재해, 신기술 발명, 인구구조 등 외부 변수에 따른 진폭도 크다. 한국 경제가 외풍을 심하게 받는 것, 기업들이 공급·수요처 다변화에 사활을 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플랜B가 없으니 세월호 참사나 환율 변동과 같은 예측 못한 악재가 치명상이 된다. 환율이 아니라 환율에 대한 플랜B가 없음을 탓해야 한다. 어찌 보면 축구계에서 나타 나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보수성이 경제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다만 플랜B와 막무가내식 변화는 구분해야 한다. 플랜B는 당장 급해서 구멍을 메우는 미봉책이 아니다. 유행 따라 변화를 쫓아가는 것과도 다르다. 플랜B는 철저히 계산하고 미리 준비한 계획 파괴다. 그 이전에는 냉철한 자기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플랜A를 버리고 포기한 게 아니라, 그것 외에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준비해 플랜A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독일 대표팀은 당시 제로톱(플랜A)과 원톱(플랜B) 시스템의 변화를 활용했다. 토마스 뮐러, 메수트 외질, 마리오 괴체, 토니 크로스 등 미드필더 라인의 연계를 활용한 공격수 없는 전술을 쓰다가도 경기 흐름과 상대에 따라서는 헤딩이 탁월한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교체 혹은 선발로 투입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독일의 이런 유연성은 다득점으로 이어져 경기당 2.57골의 대회 최다 골 결과로 이어졌다.

냉철한 자기분석 선행돼야

요하임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이 순간의 기지로 이런 변화를 준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사용 가능한 선수의 장단점과 스타일, 그에 맞는 조합을 찾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순간순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여러 성향의 자원을 동시에 효율적으로 이용한 전략이다. 경제에서의 플랜B 역시 단기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에서 기틀을 닦고 플랜A 못지않은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수준 낮은 플랜B는 없느니만 못하다.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메라리가 등 우승을 싹쓸이하던 2010- 2011 시즌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바르샤)는 최강이라 불렸다. 많은 전문가들은 바르샤의 ‘메시 의존증’을 지적했지만 당시 바르샤는 메시 없이도 강했다. 알렉시스 산체스나 페드로 같은 플랜B가 훌륭한 활약을 한 덕이다. 최상의 환경이 아닐 때도 흔들리지 않는 것. 진정한 강자는 최고의 상태가 아니라 서로 차·포 떼고 붙었을 때, 즉 누가 강하고 다양한 플랜B를 내놓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1260호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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