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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성고용률 60% 수준에 그쳐커피숍 창업에 도전하는 주부는 많지만 아예 커피 제조 업체를 차린 주부는 드물다. 김 대표는 이런 틈새를 공략했다. 커피 맛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문을 연 지 1년도 안 된 혜진스커피는 월 7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사업체가 됐다.“계속 주부로만 살아야 하나라는 막연한 아쉬움 같은 건 있었지만 제가 사업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죠. 취미로 만든 더치커피를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신이 났어요. 정부의 맞춤형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5000만원의 보조금을 받게 되면서 날개를 달았죠. 남편과 아이들의 적극적인 후원도 큰 도움이 됐어요(‘기다림’이란 혜진스커피의 브랜드와 로고 디자인은 김 대표의 첫째 딸이 직접 했다). 돈을 받고 파는 커피가 됐으니 앞으론 더 신경을 써야죠. 맛과 향만 변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사랑해줄 거란 믿음이 있어요.”여성 특유의 꼼꼼함, 가사를 돌보며 축적한 억척스러움, 책임감과 성실함까지. 대한민국 주부의 경쟁력은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의 여성고용률은 60% 수준에 머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다. 주부의 경제활동참여율이 떨어져서다. 여전히 양육과 가사를 여성의 몫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한데다 단절된 경력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어도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구직이 어렵다면 창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창업은 구직보다 리스크가 훨씬 크다. 리스크 관리는 쉽지 않고, 예상 못한 돌발 변수가 수시로 튀어나온다. 힘든 만큼 과실도 달다. 단순한 생계 보조 수단이 소득의 중심축으로 바뀐다.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 남편과 함께하는 가족 사업으로 진화하고, 엄마와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11월 12일 서울 잠실동 혜진스커피 매장에서 창업에 성공한 주부 4인방이 모였다. 김혜진대표, 인테리어와 홈 데코 관련 인터넷 쇼핑몰 ‘블랑메종’을 운영하는 구현정(44) 대표, 세탁 프랜차이즈 크린토피아 매장을 운영하는 전경옥(48) 점주, 신세계의 편의점 프랜차이즈 위드미 매장을 운영하는 강혜숙(50) 점주다.
각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구현정 : 얼마 전까진 결혼 12년차 평범한 전업주부였죠. 어렸을 때부터 집 꾸미기에 관심이 많아 이사를 가는 친척이 있으면 인테리어와 집 장식을 돕곤 했는데 그게 일이 됐어요.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은데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최신 유행이 뭔지 궁금해하는 분도 많고요. 그런 수요를 채워주는 일이에요. 각종 인테리어 제품을 팔기도 하고, 컨설팅도 하죠. 최근엔 엔틱 가구를 수입해 판매하는 일도 시작했어요. 연 매출은 약 4억5000만원 정도에요.전경옥 : 저는 전업주부는 아니었어요. 화장품 체인점을 15년 정도 운영했는데 인터넷 쇼핑이 발달하면 오프라인 화장품 매장은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마침 세탁 편의점이 눈에 들어왔죠. 2000만원 정도의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그게 8년 전인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이제는 안정적인 매출(연간 약 2억5000만원)을 유지하고 있어요. 얼마 전엔 점포를 넓혀 코인 세탁 시설도 갖췄어요(전경옥 점주 가 운영하는 서초GS자이점은 2000개가 넘는 전국 크린토피아 매장 중에서도 가장 실적이 좋은 매장 중 하나로 꼽힌다).강혜숙 : 전업주부로 지내다 편의점을 운영한 지 11년 됐네요.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으로 시작했다가 얼마 전까진 개인 편의점을 운영했어요. 9개월 전 신세계 위드미와 손을 잡았죠. 가격 정책이 맘에 들었어요. 처음 편의점을 시작할 땐 생계형 창업에 가까웠어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내 남편도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죠.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상권 내 편의점 중에서 가장 늦게 출발해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10년이 넘으니 단골이 많이 생기더군요.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됐어요.
사람들은 성공한 모습만 보겠지만 힘든 점이 참 많죠?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김혜진: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신기해해요. 이해를 많이 해줘서 고맙죠. 하지만 둘째(초등학교 4학년)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데 최근 바빠지면서 신경을 많이 못 써줬어요.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가 시험을 못 쳤다는 전화라도 오면 괜히 저 때문인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역할도 소홀하고 싶지 않아요.구현정: 저도 공감해요. 저도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집에 혼자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요즘 엄마가 바쁜걸 알고 혼자 간식도 찾아 먹고, 라면도 끓여 먹곤 하는데 그게 더 짠해요. 가구 수입 사업을 시작하면서 새벽에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곤하면 아침에 아이에게 신경을 더 못 쓰게 되죠.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아요.아무래도 가족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겠군요.강혜숙: 편의점은 특히 조력자 없이는 힘들어요. 일단 운영시간 자체가 길잖아요. 저는 남편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덜 힘든 편인데,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면 꼭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무리하기 시작하면 모든 생활 리듬이 깨질 수 있어요. 남편이나 가족이 아무래도 가장 편하죠.김혜진: 사실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살다 보면 실전 감각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잖아요? 전 아마 남편의 지원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거에요. 사업에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 마케팅, 세금 문제까지 남편이 자기 일처럼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아무리 부부 간이라도 최대한 대화를 많이 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해요.전경옥: 저는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세요. 아버지는 연세가 여든둘이신데도 아직 정정하세요. 덜 바쁜 시간이라도 제 손을 덜어주시니 큰 도움이 되죠. 물론 임금은 주급으로 정확히 챙겨드린답니다.
창업을 준비할 때 특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이게 끝은 아니겠죠.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전경옥: 열심히 해서 전국 매출 1위를 한 번 해봐야죠(웃음). 사실 저는 큰 욕심 없어요. 현재의 매출 수준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고객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건 새 고객을 창출하는 것만큼 어렵거든요.강혜숙: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점포를 좀 더 늘리고 싶어요. 여러 점포를 운영하면서 운영보다는 관리에 중점을 둘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구현정: 아직 먼 미래긴 해도 타운하우스를 짓는 게 꿈이에요. 땅부터, 건축, 조경, 내부 인테리어, 분양까지 모두 제 손으로 해보는 거죠. 인정받으면 제 이름을 딴 단지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김혜진: 단기적으로는 하루 100병 이상 판매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준비를 잘 해서 백화점·대형마트 공략도 시작해야죠. 품질만 갖추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요. 여기서 멈출 순 없죠. 꿈은 큰 게 좋다고 했는데 해외에 저의 커피를 수출하는 날 도 곧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