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다.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 들어간 지하 1층의 극장. 좁은 공간에 많은 관객이 들어올수 있도록 좌석 줄을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 줄은 거의 기다시피 움직여야 할 정도로 이동이 대단히 불편했다. 연극이 시작되고 암전되었을 때 비상구 표지판에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스치듯 지나간 생각. ‘만약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
연극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기업의 비정함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었다. 한국의 소극장 경영이 어려운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비정한 기업을 비난하면서, 연극을 구경하는 관객들의 안전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모순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옳음을 실천하기 위한 비판은 말과 행동의 일치로부터 그 힘이 나오는 법이다.
대한항공의 부사장이 고객대응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숙지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출발한 비행기를 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조사 중이지만, 비행기를 되돌아 가게 하는데 부사장이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은 높아 보인다. 그의 행동에 대한 여러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고객을 위한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다고 질책하면서 행한 결정이 정작 고객에게 많은 불편을 끼쳤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출발한 비행기가 게이트로 되돌아 간 예외적인 상황 속에서 고객이 겪었을 불안과 당황함, 그리고 지연된 시간. 기내 서비스 매뉴얼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필요하다. 매뉴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제대로 제공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논어의 위령공편에서 공자가 설파한 바처럼 매뉴얼(道)은 고객(人)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고객이나 종업원이 매뉴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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