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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너 죽고 나 살자’의 양보 없는 소모전 

영화 <카지노>의 ‘제로섬 게임’ … 전체 파이 키워야 해결 가능 

박용삼 KAIST 경영공학 박사

1995년 개봉한 영화 <카지노(Casino)>. 에이스(로버트 드니로)는 천재적인 도박사이다. 15세 때부터 경마든 스포츠 베팅이든 뭐든 내기를 걸면 이기는 재주를 타고 났다. 동물적인 감각에 더해 예리한 분석력까지 갖춘 덕분이다. 캔자스 시티의 마피아 보스들은 그의 재주를 높이 샀고, 에이스도 상납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사랑을 듬뿍 받는다. 하지만 그의 재주에 비해 노는 물이 작았다. 도시 내 몇몇 도박사들끼리 빤한 시장을 놓고 경쟁하려니 수익도 제자리걸음이고 갈등도 심해질 수밖에. 마피아 보스들은 통 큰 결단을 내린다.

보스들은 에이스를 전 세계 카지노의 성지(聖地)인 라스베이거스로 보내고, 그곳의 한 카지노를 맡기면서 맘껏 능력을 발휘 할 것을 주문한다. 물론 속내는 에이스를 통해 상납 수입을 더 늘려보자는 것이다. 에이스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카지노의 수익을 몇 배로 높이는 한편 고향의 보스들을 챙기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조직 내에서 그의 입지는 점점 굳어지고, 매력적인 금발의 콜걸 진저(샤론 스톤)를 만나 결혼까지 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역시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국가·사회·기업을 서서히 고사시켜

게임이론에서 다루는 게임 중에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있다. 한 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의 합이 제로(0)가 되는 게임을 일컫는다. 내가 10을 얻으면 상대가 10을 잃고, 상대가 10을 얻으면 내가 10을 잃게 되는 게임이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이다. 게임 참여자 간의 이해득실이 적나라하게 갈리기 때문에 제로섬 게임은 통상 치열한 대립과 경쟁을 부른다. 스포츠가 특히 그렇다. 룰 자체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종종 무승부가 나기도 하지만 시간 제약만 없다면 언젠가는 승부가 난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 선진국 진입을 코 앞에 두고 국가 전체가 제로섬 게임에 빠져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을 하고, 사회에서는 이익집단 간에 물러설 수 없는 주장이 부딪친다. 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영역 다툼이 그칠 줄 모르고, 회사에서는 노(勞)와 사(社),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밥그릇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 마치 우리 사전(辭典)에 타협이란 없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머리가 좋은 민족이어서 그런지 우리는 시시비비(是是非非)의 프레임에 갇혀 제로섬 게임에 너무 쉽게 빠지는 것 같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조선시대 역사의 상당 부분은 동인 vs 서인, 남인 vs 북인, 소론 vs 노론, 시파 vs 벽파 등간의 반목이 차지한다.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파벌 싸움을 해야 했는지, 국가?사회 발전에 무슨 소용이 있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제로섬 게임은 국가·사회·기업을 서서히 고사시킨다. 부와 가치를 높이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고 결국 곳간을 바닥내기 때문이다. 제로섬 게임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흔히 게임 참가자 간에 신뢰·이해·양보 등이 거론되는데 말은 좋지만 그다지 지속적일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 욕심을 부리는 쪽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러면 여기에 맞서 새로운 제로섬 국면에 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해법은 파이를 키우는 것 밖에는 없다. 게임 구도를 제로섬에서 포지티브섬(Positive sum)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피아 보스들은 에이스라는 인재를 제로섬 테두리에 가두는 대신 더 큰 세상에서 포지티브 게임을 하도록 했다. 더 많이 벌어 모두 배불리자는 취지다. 역시 보스들은 안목이 다르다(영화의 스토리와는 별개로 도박만 따로 떼어서 생각 한다면 사실 도박은 네거티브섬 게임이다. 참가자들 모두가 결국에는 돈을 잃게 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제로섬 국면에서 파이를 나누는데 쏟을 노력이면 파이를 키우는 방법을 찾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리콘밸리의 열혈 벤처들은 죽어가는 미국 경제에 새로운 먹거리를 계속 공급한다. 성장이 주춤해진 중국도 알리바바나 샤오미 같은 기업들이 나타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간다.

1980년대 콜라 시장처럼 제한된 고객을 놓고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산업 자체가 레드오션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목표 시장을 콜라에서 주스·생수·커피 등 전체 음료 시장으로 넓히면, 혹은 음료와 어울리는 패스트푸드 등으로까지 확장하면 완전히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린다. 자동차 부품 업체와 조립 업체가 납품 단가를 놓고 실랑이를 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나 두 업체가 힘을 합쳐 부품의 품질을 높이고 단가를 낮추는 방안을 찾아내면 자동차 매출도 늘고 부품 매출도 는다. 너도 살고 나도 살게 되는 것이다.

어항에 가두지 말고 강에 방류하라

기업에 성장이 필요한 이유도 그렇다. 성장은 제로섬을 포지티브섬으로 바꾸는 놀라운 힘이 있다. 기존 사업에서 수익이 계속 발생한다 해도 끊임없이 영토를 넓히고 신사업을 추구해야 한다. 성장이 멈추면 대수롭지 않은 온갖 갈등이 고개를 들고, 조직은 소모적인 제로섬 게임에 휩쓸려 버린다. 제한된 (임원)자리를 놓고 충성경쟁 시키기보다 직원들의 움츠러드는 역동성에 불을 지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관상어인 코이(Koi)라는 잉어는 작은 어항에서는 10cm도 채 자라지 않지만, 연못에 넣어 두면 20cm, 강물에 방류하면 10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직원들을 어항에 가두면 아무리 S급 인재라도 영영 미생(未生)에 그친다. 더 큰 바다로 내 몰아야 미국의 스티브잡스, 일본의 손정의, 중국의 마윈이 나온다.

자, 다시 영화 이야기. 마피아 영화가 늘 그렇듯 결말은 우중충하다. 에이스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성공을 계기로 과거의 촌뜨기 도박사에서 벗어나 상류 사회로의 진출을 꿈꾸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내와의 불화, 친구의 배신, 거기다 FBI까지 검은 돈의 냄새를 맡고 개입하자 그의 화려한 삶도 막을 내린다. 자동차가 폭발하면서 공중으로 날아가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고 허탈하다. 제로섬에서 포지티브 섬으로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더 큰 파이를 관리하기에는 힘이 달렸나 보다. 이 영화의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는 이탈리아계 이민 2세 출신으로 가히 미국 갱스터 영화의 거장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전설적 락그룹 롤링스톤스의 광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에는 롤링스톤스의 주옥 같은 음악이 무려 7곡이나 삽입돼 있다.

박용삼 - KAIST 경영공학 박사로 포스코경영연구소 산업전략 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정보통신 기술정책 수립 업무를 맡았다. 포스코에서 10년 넘게 신사업·신기술 투자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1266호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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