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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넘기는 삼성-LG 세탁기 파손 논란 | 출국금지·압수수색에 LG측 “과하다” 발끈 

두 회사 맞고소하며 대립 ... ‘2015년 세계 가전 1위’ 목표 두고 신경전 


▎조성진 LG전자 사장.
“2015년 가전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 조성진 LG전자 가전(H&A)사업부 사장(당시 HA사업본부장)이 2013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 ‘CES 2013’에서 밝힌 포부다. 당시 조 사장은 2012년 말 LG그룹 인사에서 고졸출신으로는 처음으로 LG전자 사장에 올라 화제를 모으던 터였다. 인사가 결정된 후부터 몇 달 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그는 “아직 너무 이르다. (사장으로서) 성과가 나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공식 인터뷰를 삼갔다. 그런 그가 사장으로서 처음 CES 현장을 찾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보인 당찬 모습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같은 해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역시 ‘2015년 글로벌 가전 1위’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윤 사장은 스마트폰이나 TV·반도체 등 다른 사업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생활가전사업부에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주문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에 대해 조 사장은 “삼성은 좋은 경쟁자”라며 “LG전자 세탁기와 냉장고가 자랑거리가 되고 제품에 대한 열망을 가진 고객이 늘어나는 게 진정한 1등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성진 사장 출석 연기에 출국금지·압수수색 초강수


그로부터 2년이 흐른 ‘CES 2015’에서 ‘1위 대결’의 결과가 채 나기도 전에 또다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미국이 아닌 유럽 시장에서였다. 2014년 9월 LG전자 임원이 독일 전자제품 유통기업 자툰이 운영하는 베를린 유로파센터와 슈티글리츠 매장에서 삼성전자의 세탁기를 훼손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현장에는 조성진 사장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지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14’ 참석 일정을 소화하던 차였다.

당시 매장에 진열된 제품 2대가 파손됐고, LG전자 측에서는 4대 가격을 변상했다. LG전자 측은 ‘고의성 없는 품질 테스트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삼성전자 측은 CCTV를 추가로 확인한 결과 오전 10시30분쯤 슈티글리츠 매장을 방문한 조 사장이 제품 도어 부분에 충격을 준 영상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 9월 1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업무방해·명예훼손·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조 사장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조성진 사장은 업무상 일정을 들어 검찰에 두 차례 이상 출석 연기 요청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 사장을 제외하고 이번 사건과 관련된 LG전자 임직원 4명은 이미 지난 12월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9월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연돼 해를 넘기게 됐다.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연말 인사를 비롯해 사업부 단위의 조직 개편이 이뤄지는 등 그룹 차원의 굵직한 일이 많았던 만큼 이번 일에 대해 입장 정리를 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며 “(조 사장이) 평소 워낙 꼼꼼하고 진중한 편이라 섣부른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검찰 수사가 지연되는 중에 LG전자는 12월 12일, 삼성전자의 CCTV가 날조됐다며 증거위조 및 명예훼손 혐의로 삼성전자 임직원을 맞고소했다. LG전자 측은 “삼성전자가 LG전자 측에 의해 손괴됐다며 검찰에 증거물로 제출한 세탁기 현물이 훼손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삼성전자가 언론사에 제공한 동영상에는 삼성전자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세탁기에 여러 차례 충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또한 삼성전자가 제출한 증거물인 세탁기가 사건 현장과 동일한 제품인지는 확인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지연시키기 위한 억지 주장”이라며 “조 사장이 죄가 없다면 지난 몇 달 간 출석 요구에 불응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LG전자가 삼성전자 임원을 고소하면서 증거위조와 은닉 의혹을 제기하고, 독일 사법당국에서 불기소 처리했다고 주장한 사건은 2개 매장 중 유로파센터 매장 한곳에만 국한된다는 것이다. 조 사장이 연루된 슈티글리츠 매장 세탁기는 이미 9월 23일 증거물로 제출돼 독일 현지 검찰에서도 여전히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진 사장 측은 2015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5’에 참석한 뒤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검찰에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12월 중에도 검찰 출석을 통보 받았으나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조 사장에 대해 2015년 1월 10일까지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2탄은 더 강력했다. 검찰은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LG전자 공장 등에도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LG전자가 출국금지 해제를 요청하자,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걸로 보인다.

조직 개편 후 첫 해외 행사 불발 될 수도

일단 조 사장이 참석하기로 한 ‘CES 2015’ 일정(1월 6~9일)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조 사장의 이번 CES 참석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난 11월 이뤄진 LG전자 조직개편에서 HA와 AE사업본부가 통합돼 H&A사업본부로 재편됐다. 다가오는 CES 참석은 조성진 사장이 H&A사업본부장으로서 갖는 첫 주요 일정이다. 조 사장은 미국 현지에서 1월 7일 기자간담회를 주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LG전자 내부에서는 ‘삼성전자의 증거 제출로 다소 불리해진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출국금지는 다소 과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업체의 치열한 신경전이 ‘2015년 전 세계 생활가전 1위’라는 동일한 목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생활가전 분야에 대한 자존심이 걸린 만큼 양사 모두 예민해진 상태라는 것. LG전자 측은 “CES는 새해 사업전략을 검토하고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행사”라며 “조 사장의 참가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LG전자는 조 사장이 CES 일정 이후에는 언제라도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고 덧붙였다. 2년 전 같은 자리에서 ‘2015년 1위’를 외친 조성진 사장이 목표한 그날을 코앞에 두고 진퇴양난에 빠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1268호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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