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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그룹 2015년 경영 화두 - 너도나도 ‘위기·불황·어려움·대비’ 

너도나도 ‘위기·불황·어려움·대비’ 


▎1월 5일 열린 2015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재계 최고경영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위기·침체·불황·고난·생존·둔화·악조건·불확실·정체….’

국내 10대 그룹 최고경영자의 2015년 신년사에 등장한 단어들이다. 최근 국내외 경제 상황을 반영하듯 ‘엔저·디플레이션·저성장·유가 하락’ 등의 말들도 등장했다. 지난해 신년사에 자주 보였던 ‘회복·회복세’는 자취를 감췄다. 최고경영자들이 올해 국내외 경제를 어둡게 내다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본지가 10대 그룹 총수·최고경영자의 신년사 전문에 어떤 단어가 많이 쓰였는지 분석한 결과다(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인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아 분석에서 제외했다).

올해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매년 신년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글로벌·세계·해외’였다. 30회 쓰였다. 다음은 ‘위기·리스크·침체·불황’으로 29번 등장한다. 매년 신년사에서 빠지지 않는 ‘고객·고객가치’는 27회 나온다. 지난해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어려운·어려울·어렵게’는 25회 등장해 넷째로 많이 쓴 말이었다. 우리나라 기업 수익성이 점차 악화하는 것을 우려한 듯 ‘수익·성과(22회)’를 강조한 총수가 많았던 것도 올해 신년사의 특징이다. ‘경영환경·경영여건·경제환경(21회)’ 앞뒤에는 ‘어려운, 쉽지않은, ~은 어렵지만’ 등이 붙었다. ‘대비·대응·극복(19회)’도 많이 등장했다.

기업 신년사에는 국내외 경제·경영환경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인식과 기업의 방향이 담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올해 신년사는 2010년 이후 가장 긴장감이 감돈다. 전반적으로 반짝 회복 뒤 다시 경기가 둔화된 2012~2013년과 비슷하지만, 노출된 단어만 보면 더 심각해 보인다. ‘불확실·불안정’, ‘급격·급변’ 등이 심심치 않게 쓰였다. ‘노력’이 16회나 등장한 것도 이채롭다. ‘어렵지만 이겨내자’는 최고경영자들의 당부와 각오가 담긴 단어도 많이 쓰였다. ‘새로운·새롭게(21회)’ ‘발전·번영·도약(17회)’ ‘도전(12회)’ ‘혁신(11회)’ 등이다. ‘경쟁력(15회)’ ‘성장·성장기반(14회)’ ‘미래(12회)’ ‘창의·창조(10회)’ ‘변화·변혁(9회)’ 등도 자주 쓰였다. 구조개혁·창조경제 등 정부가 내세우는 구호는 신년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더 어두워진 경제 인식


10대 그룹 총수·최고경영자들은 최근 국내외 경제를 이렇게 총평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세계 경제는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환율과 유가의 불안정한 움직임은 수출 비중이 큰 우리에게 상당한 도전”이라며 “후발기업의 거센 추격, 일본과 중국의 동향 등을 보면 수년 내에 큰 어려움이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올해 국내외 경영환경은 불확실성이 더 커질 전망”이라며 “신흥국 경제 리스크 증가,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유럽 경제의 디플레이션 및 장기 침체, 그리고 유가 하락 장기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내수 부진과 중국의 성장 둔화, 엔화 대비 원화 가치의 상대적 강세 등으로 우리 경제의 돌파구를 찾기는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시대상을 반영하듯 기업문화와 사회공헌을 언급한 그룹이 특히 많았다. 구본무 회장은 “열띤 토론이 없는 일방적인 소통과 고객 가치에 맞지 않더라도 지시에 순응하는 문화로는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은 “당면한 위기를 숫자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구성원의 정신, 우리의 조직, 제도, 의사 결정과정, 기업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자”고 강조했다. 허창수 회장은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낡은 사고와 행동 패턴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근 의장은 “사회적 기업,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같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국가·사회와 함께하는 SK로 자리매김 하자”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은 사과문 같은 신년사

그룹의 이슈가 담긴 신년사도 눈에 띄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제2롯데월드의 잇단 사건·사고를 의식한 듯 “불미스러운 일들로 국민과 고객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롯데월드타워가 관련 기관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진정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했다. 권오갑 회장은 “(2014년은) 현대중공업 가족의 자존심이 크게 손상된 한 해였다”며 ‘합심·협력’을 세 차례나 강조했다. 지난해 수익 악화와 노사 분쟁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4개사를 인수한 것과 관련 “오래 전부터 그룹 성장을 위해 하이브리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며 “새로운 가족이 될 8000여 임직원들은 천군만마와도 같은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항공기 회항 사건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오늘 이 아침, 밝고 희망찬 화두 대신 준엄한 반성과 자성의 말씀부터 드리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임직원들을 특정해 “깊이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사과문이나 다름없는 신년사였다.

-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1269호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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