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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 봅시다-현대·한진그룹의 선제적 구조조정은 - 현대 급한 불 끄고 한진은 위험 줄여 

산은 “오너 의지 강해 자산 매각에 적극 나서” 경영 정상화 파란불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자금난에 시달린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LNG 사업부문을 매각해 97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동부그룹과 현대그룹, 한진그룹은 비슷한 시기 유동성 위기에 놓여 선제적 구조조정을 단행한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 가운데 동부는 계속 난항을 겪고 있지만 현대와 한진은 각각 급한 불을 껐거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현대그룹은 현재까지 구조조정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2013년 12월 3조3400억원 규모의 자금 확보 내용을 담은 자구안을 발표했다. 1년 여가 지난 지금까지 현대그룹은 3조400억원의 자금을 확보, 애당초 자구안의 90%가량을 이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그룹 내 택배 분야 계열사인 현대로지스틱스를 일본계 금융회사인 오릭스에 넘기면서 6000억원을,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부문을 매각하면서 9700억원을 확보했다.

현대그룹 1년 간 3조400억원 확보


여기에 부산신항터미널의 재무적 투자자를 교체하면서 2500억원을, 해외 터미널 유동화로 1500억원을 조달했다. 그러는 동안 돈이 될 만한 자산은 대부분 매각했다. 컨테이너 기기 매각으로 1225억원을, KB금융지주 지분과 부동산 등의 비주력 자산 매각으로 4509억원을 충당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컨테이너 기기 2만5000여대를 추가 매각해 662억원을, 부산의 컨테이너 야드(CY) 잔여 부지를 매각해 783억원을, 현대오일뱅크 지분 중 추가분을 매각해 288억원을 각각 확보했다. 이에 앞서 현대증권 등 금융사의 매각 방식 확정으로 2000억원의 선유입 자금을 확보했고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로 1803억원, 현대상선 외자유치로 1170억원의 자기자본을 확충했다. 현대그룹은 이 기간 경영혁신으로 1225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 단행으로 자구안 이행률 100% 달성을 눈앞에 두게 됐다”며 “곧 목표치의 초과 달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그룹은 자구안에 명시했던 3조3400억원 중 3000억원 안팎의 자금 확보만 남겨뒀다. 자구안에서 제시한 현대증권 지분 매각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게 된다. 올 1월 하순경 현대증권 매각 본입찰이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관련 업계는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 36.9%가 약 5000억원 규모로 거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증권 인수전에는 오릭스 외에도 국내 사모펀드인 파인스트리트와 중국계 부동산·금융기업인 푸싱그룹 등 3곳이 뛰어들었다.

현대그룹이 구조조정으로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지표로도 나타난다. 현대상선은 2013년 9월 기준 1214.2%에 달했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9월 기준 763.7%까지 낮췄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1년 만에 거둔 성적치고는 양호하다. 지배구조라는 무형(無形)의 지표도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룹 지배구조의 연결고리로 꼽히던 현대로지스틱스의 매각으로 ‘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스틱스’였던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서 벗어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현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2대 주주인 스위스 승강기업체 쉰들러아게홀딩스와 그간 벌여온 경영권 분쟁에서도 향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배구조상의 부담을 덜어낸데다, 견고한 국내 시장점유율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3469억원, 영업이익은 428억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2.4%, 44.1% 증가했다. 작년 6월 한때 2만9000원대까지 주저앉았던 주가는 올 1월 8일 현재 6만500원으로 상승했다. 현대상선이 해운업황의 계속된 침체로 어려운 길을 걷는 상황에서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 전체의 부활 열쇠를 쥘 전망이다.

한진그룹의 구조조정도 비교적 양호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한진그룹은 현대그룹과 비슷한 시기인 2013년 12월 자금난에 처한 대한항공의 자산 매각 등을 담은 선제적 자구안을 제시했다. 당시 독립적으로 경영되던 한진해운도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한 채 자구안을 발표했다. 이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이 시숙(媤叔)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 조 회장이 한진해운을 한진그룹 계열사로 편입시키고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2분기까지만 해도 더딘 속도의 구조조정으로 우려를 자아냈던 한진은 지난해 7월 에쓰오일 지분 2조원어치를 에쓰오일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에 매각했다. 아울러 한진해운의 전용선 사업 부문을 매각해 3100억원을 확보하는 등 추가로 1조6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자구안의 90% 가까이를 이행했고 향후 상황도 긍정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2013년까지 3년째 적자 상태였던 한진해운은 지난해 3분기에 누적 영업이익 275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전년 동기에는 2666억원 적자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진해운 경영권을 가져온 것도 한진그룹 전체에는 희망적인 요소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경영권 확보로 육-해-공으로 이어지는 물류 채널을 확보하게 됐다”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면서 도약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진해운 흑자 전환에 성공

현대와 한진이 동부와 달리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데 대해 일각에서는 “오너들의 의지 차이가 변수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들 그룹은 모두 산업은행 주도로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산은 관계자는 “현대와 한진은 오너가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각하려 했고, 심지어 경영권을 양보하면서까지 기업을 살리려 했다”고 주장했다. 최은영 회장이 조양호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통해 한진해운에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담보대출을 지원하는 등 속도감 있게 구조조정을 추진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정은 회장도 대기업 오너로서는 이례적으로 2013년부터 수차례 직접 산은을 찾아 류희경 산은 수석부행장을 만나는 등 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269호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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