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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 저출산·고령화란 양곤마<두 개의 위험한 미생마> 피하려면 

교육제도 개혁하고 독일처럼 노인을 사회적 자원으로 여겨야 


한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도래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고 경제 역동성도 약해질 것이다. 얼마 전 방송 토론에서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스런 전망을 내놓았다. 외국의 전문가도 한국이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저출산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중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인구가 줄어들면 생산과 소비는 물론 투자가 위축돼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민들은 저출산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위기의 징후가 보이는데도 대비를 하지 않는 것은 한국인의 고질적 악습이다. 우리는 문제가 터지면 신속하게 처리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미래 대비는 잘 하지 않는다. 바둑으로 치면 대마(大馬)에 위험 신호가 감지되었는데도 방치하는 것과 같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생사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을 때 그제야 삶의 묘수를 찾으려고 한다.

문제 해결능력은 뛰어난데 대비능력 떨어져

이것은 하수의 바둑이다. 하수들의 대마가 잘 죽는 것은 이처럼 위기관리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고수는 위기가 오기전에 대비한다. 그래서 대마가 여간해서는 잡히지 않는다. 바둑의 위기관리 방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 문제를 고민해보자.

바둑에서 고수들의 위기대처 방식은 다양하다. 대마를 너무 뚱뚱하고 무겁게 만들지 않으며 탄력성이 풍부한 형태로 만든다. 또한 주변 상황의 변화가 미생마에 미치는 영향을 항상 고려한다. 위기에 처하면 일부를 버리거나 바꿔치기 하는 방식도 쓴다. 그러나 고수들은 기본적으로 미생마(未生馬)를 함부로 만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공격 당하기 쉬운 돌을 만들면 그만큼 반면운영이 지장을 받는다고 본다. 그러나 바둑을 두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미생마가 생기는 상황이 있다. 이와 관련해 고수와 하수 모두 금기시하는 것이 있다. 바로 양곤마(兩困馬)다. 두 개의 미생마가 생기는 것을 누구나 극도로 경계한다. 그래서 ‘양곤마는 무사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하나의 곤마라면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두 개의 위험한 미생마가 있다면 위기 극복이 어렵다는 뜻이다.


[1도]의 모양을 보자. 좌우의 백돌 두 점들이 미생이다. 이 경우 흑이 공격을 하면 백돌은 둘 중 하나가 잡힐 공산이 크다.

[2도]에서 흑1에 한 칸 뛰어 움직인다고 하자. 흑이 아주 쉽게 두었는데도 양쪽의 백돌이 동시에 공격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3도]에서 백2로 오른쪽 미생마가 달아나면 흑3으로 포위돼 왼쪽 백 두점은 그로키 상태가 된다. 극히 단순한 예지만 양곤마는 무사하기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둑의 비유처럼 한국은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두 개의 곤마가 생기려고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겹친다면 사태는 매우 심각할 것이다. 이 양곤마가 우리 사회를 휘덮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넘쳐나는 노인들에 대한 복지 부담이 커지는데 경제의 주역인 젊은 인구는 줄어드니 이중으로 부담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보면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가 시급히 대비해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양곤마의 해법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피할 수 없다. 앞으로 한국은 노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곤마는 어쩔 수 없는 부담인가. 노인들을 부양해야 할 부담으로 젊은 세대의 어깨가 축 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법은 있다. 하나의 방법은 발상의 전환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사고방식이다. 바둑에서는 대마가 위기로 몰릴 때 역으로 실리(實利)를 취하며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 있다. 일본의 조치훈 9단, 사카타 에이오 9단이 이런 전법의 명수였다. 세계를 정복한 이세돌 9단도 이런 전법을 즐겨 쓴다.

이 전법처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방법은 노인을 사회적 부담으로 보는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의 주역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년층은 일선에서 물러나 용도가 폐기된 존재로 보기 쉽다. 또한 사회가 부양해야 할 짐덩어리로 보기 쉽다.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동력이 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모델은 독일이다. 노인을 사회의 자원으로 생각하여 노인들이 일할 기회를 주고 그러한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독일은 청년과 노인의 일자리 분배를 통해 서로의 고통을 나누며 노인을 활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청년층에 대한 기성세대의 투자로 국가 경쟁력이 상승해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됐다.

또 하나의 모델은 일본바둑복지협회 모델이다. 최근 일본 노년층의 바둑봉사활동을 연구한 명지대 바둑학과 이수정씨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에 나오는 일본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봉사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봉사를 하고 있다. 다른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찾아가 바둑봉사를 한 것이다. 이들의 만족감과 성공적 노화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도 노인들을 쓸모없고 부담스런 존재라는 의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노령층의 경륜과 지식을 사회에 적절하게 활용하고 이것을 성장동력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저출산이란 곤마의 해법은 근본 원인을 파악해 개선을 하는 것이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의 보육과 교육 부담이다. 아이들을 키울 경우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바꿔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아이가 짐 아니라 낙으로 여기게 만들어야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의 과도한 입시경쟁과 그에 따르는 사교육비의 부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문제는 해결책이다. 사실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며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어 간다. 그러나 해법은 있다. 대학을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하면 된다. 대학을 쉽게 들어갈 수 있다면 어려서부터 입시 경쟁에 몰려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입학을 쉽게 하는 대신 졸업 요건을 엄격하게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 문제에 있어서도 아이가 짐덩어리가 아니라 인생의 낙 중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할 것 같다. 사회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자녀 없이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는 삶이 행복한지를 생각해 보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 로신왕전에서 우 승했다. 한 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272호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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