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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⑨ - 산업+산업 융합의 중심은 디자인 

다양성 존중되는 융합디자인이 미래 경쟁력 …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 

김태완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융합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의 비빔밥은 최고의 융합 음식이다. / 사진:중앙포토
제조업 혁신 3.0 시대에 디자인 기술 연구·개발(R&D)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기업의 기술-디자인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 디자인 R&D 지원 확대 방침을 내놓았다. 서비스 디자인을 접목한 제조업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산업 간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융합이란 녹을 융(融), 합할 합(合), 즉 녹여서 합한다는 의미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지거나 그렇게 만듦 또는 그런 일’을 의미 한다.

융합은 둘 이상이 잘 어울리도록 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빔밥을 만들어 내는 게 융합이다. 비빔밥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음식이면서 풍부한 맛을 내는 단일 메뉴다. 여러 가지 종류의 재료가 섞여서 훌륭한 맛을 내는 한국 최고의 융합 음식이다. 불고기 피자와 같은 퓨전음식도 융합의 한 예다. 실제로 피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보다 한국의 피자 종류가 더 많다. 불고기와 같이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재료를 융합해 시장을 공략한 뛰어난 전술 덕분이다.

비빔밥은 최고의 융합 음식

한국의 IT기술과 타 산업 간의 연계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로 이제는 정보가 사람이 아닌 사물과 사물끼리 공유하고 저장하는 게 가능해졌다. IT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교육에 대한 투자 또한 많아 한국의 융합산업은 장래가 밝아 보인다. 최근에는 국내 대학에 융합디자인 학과가 생겨났고, 일부 융합디자인연구소를 운영 중인 대학도 생겼다. 2010년부터 디자인과 공학 간 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융합형 디자인대학 육성사업을 실시하면서 국가에서 매해 수십 억원을 지원한 결과다. 넘기 힘든 학문의 벽을 융합이라는 매개체로 넘나들면서 다양한 연구를 하려는 움직임에 속도가 나고 있다.

정부의 융합 기반 산업의 육성 계획은 미래 성장산업이 그 주축을 이룬다. 그중 하나가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기술·서비스·문화·지역·음식 등 여러 영역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찾아서 연결 통로를 만드는 작업이 융합디자인의 시작이다. 30~40년 전만 해도 국내 대학에 자동차 디자인학과가 개설되지 않았고,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모델이 거의 없이 수입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기자동차를 생산해 내고 있고, 융합디자인학과가 생겨났다. 산업 융합의 중심에 디자인이 있다.

과거 디자인은 제조산업에서 수족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온 몸의 혈관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혈관은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 디자인은 모든 산업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만큼 책임감 또한 무겁다. 디자인은 물론 구조적·기술적·철학적·의학적·인문학적·수학적 등 관련 융합산업의 기초 지식과 경험이 융합디자인의 밑바탕이 돼야 한다. 그리고 각 산업의 전문가들은 기존의 틀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함께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와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서 끊임없이 벗어나야 한다. ‘Think out of box’는 내가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또는 후배와 직원들에게 전했던 말이다. 모든 학문과 사상, 민족은 경계를 만들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었으나 앞으로는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 연결하고 새로운 기술·산업·사상·학문 등이 생기고 계속 움직일 것이다. 얼마 전 이런 문구를 책에서 봤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생각의 흐름을 방해한다. 기존의 생각에 갇혀 지내다 보면 창의성과 목표 의식이 흐려질 수 있다. 기존의 관념 안에 갇히는 것, 우리는 그것을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회사에서도 종종 통합·융합을 통한 사례가 있다. GM의 경우 ‘Diagonal Slice Meeting’을 분기별로 한번씩 했다. 말 그대로 직역하면 사선으로 자르는 모임이다. 여기에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마케팅·엔지니어링·재무·구매·홍보 등 여러 부문 사람들이 사원부터 임원까지 다양하게 모인다. 평소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서로가 편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다양한 부문,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회사를 전체적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디나 다양성이 있지만, 그 다양성이 가장 빛날 때는 가장 조화로울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조화로울 때 다양성 빛나

지난해 말, 지인의 초대로 어느 모임에 나갔다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각가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나무·금속·플라스틱·석고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고 했다. 흔치 않은 경우라서 왜 그렇게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느냐고 물었더니, 재료를 좀 더 이해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는 대답을 했다. 정말 멋진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국내 조각가들 사이에서 이단아로 따돌림을 받는다고 했다. 조각가가 한 가지 재료에 집중해야 정통성이 있다는 게 이유다. 가장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예술계통도 현실의 벽은 있었다. 아직까지 다양성이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과연 기술력만을 가지고 제대로 된 융합을 이룰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훨씬 중요하다(Imagination is much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고 말했다. 이론적인 통합·융합도 중요하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나 미래를 바라보는 상상력을 키우고, 또 미래 산업의 가능성을 보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융합에서 찾기를 기대해본다.

김태완 - ‘완에디’ 디자인컨설팅 대표.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디자인석사를 받았다. 자동차·항공기를 디자인하는 영국 IAD(후에 대우 워딩연구소)에서 일하다 이탈리아 피아트로 옮겨 친퀘첸토(피아트500)의 컨셉트 모델을 디자인했다. 이후 한국GM 디자인 총괄 부사장을 지냈다. wanedesign@gmail.com

1272호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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