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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 황희가 청백리의 표상이 된 이유는 

신하의 일장일단 십분 활용한 세종의 묘수 … 고수는 장점 부각시켜 활용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부동산 경기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보면 좀 이상한 점이 있다. 부동산 투기를 많이 해서 시장이 바짝 달아올랐을 때는 ‘부동산 광풍’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이것을 억제하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잠잠해진 요즘은 침체라고 걱정하며 열기를 살리려고 고심한다. 불길이 타오를 때는 끄려고 전전긍긍하고, 불길이 잠잠할 때는 불씨를 살리려고 애를 쓰니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경기가 과열될 때는 집값이 몇 달 사이에 수억원씩 오르게 되니 불길을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분위기가 너무 침체된 상황에서는 전반적인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 불씨를 살려보고 싶은 생각이 당연히 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반대로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즉, 부동산 광풍은 ‘활성화’로 보고 침체는 ‘안정화’로 보는 것이다. 요즘은 부동산 훈풍이나 열기니 하며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니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르는 것은 좋게 말해 ‘활성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동산에 초연한 상황은 광풍이 사라진 상태이니 ‘안정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면 국가의 경제정책도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많은 일은 대부분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사람 개개인도 각자 장점과 단점이 있다. 아무리 단점이 많은 사람이라도 찾아보면 장점은 있다. 여러 면으로 뛰어난 사람도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는 말처럼 단점이 있다. 바둑에서는 이처럼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을 ‘일장일단(一長一短)’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수가 하나의 장점이 있으면 하나의 단점을 갖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행마법을 예로 들어보자.

[1도]에는 세 가지 행마(行馬)가 있다. 바둑돌이 기존의 돌에서 움직이는 것을 ‘행마’라고 한다. 흑1은 뻗음이라고 하는 행마로 바둑에서 가장 튼튼한 수다. 흑2는 한칸뜀이라고 불리는데 흑1보다 발이 빠르다. 대신 흑1보다 허술하다. 흑3의 두칸뜀은 발이 빨라 매우 능률적이다. 그러나 가장 허술하다. 이 세 가지 수를 비교해 보면 일장일단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단단하면 능률이 떨어진다. 반대로 능률적이면 허술하다. 이것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장을 추구하면 분배가 약화되고, 분배에 치중하면 성장이 더디어진다.

아름다운 장미에도 가시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물을 어느 한 면으로 보려는 성향이 있다. 예를 들어 위인은 모든 면이 장점 투성이고 악인은 모든 면이 나쁜 점으로 가득 찬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은 온갖 선행의 대명사로 미화된다. 이와 달리 한 번 악인으로 낙인 찍히면 그 사람은 주변 사람이나 매스컴의 뭇매를 견디지 못한다. 바둑수의 일장일단 시각으로 보면 이런 태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어느 한쪽만 바라본다면 왜곡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장일단은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 기본적으로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자신의 철학이나 성향에 따라 결정하게 된다. [2도]의 포석에서 흑3의 좁은 굳힘 수와 백6의 넓은 굳힘수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당사자의 성향에 달려 있다. 조훈현 9단이나 일본의 하시모토 우타로 9단처럼 빠른 바둑을 구사하는 기사는 백6과 같은 능률적인 굳힘수를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두터운 바둑을 구사하는 기사들은 흑 6의 단단한 굳힘을 선호한다. 정치인의 성향에 따라 보수적인 행보를 할 것이냐, 진보적인 전략을 쓸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둑의 고수들은 어떤 수의 장점과 단점 중에서 장점을 살리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위의 그림에서 좁고 느린 수는 부정적으로 보면 비능률적인 거북이걸음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견실하고 안정감이 있는 수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넓은 굳힘은 부정적인 시각으로는 허술하다고 할 수 있는데, 긍정적으로 보면 능률성이 좋은 수가 된다.

고수들은 상황에 맞춰 어떤 수의 장점을 살리는 전략에 능하다. 능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허술하지만 능률적인 수를 택한다. 그러나 튼튼함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느리지만 든든한 수를 택한다. 결국 일장일단이 있을 때 현명한 방법은 장점을 부각시켜 활용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단점을 부각시키면 짜증과 한숨만 나오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리더의 표상인 세종대왕은 일장일단의 철학을 잘 이해했던 것 같다. 세종은 약간 흠이 있는 신하라도 장점을 중히 여겨 함부로 처벌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술에 취해 실수한 관리를 처벌하지 않고 능력을 발휘토록 했다. 황희 정승도 원래 청빈한 관료는 아니었는데 세종대왕이 계속 ‘청백리’로 부르자 어쩔 수 없이 청백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장일단의 철학을 여러 면에 적용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현상의 양면을 바라보며 특히 긍정적인 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장점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한다. 물론 단점도 보아야 하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부동산 경기의 대책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부동산 침체를 탓하기보다 집값에 거품이 빠지면서 서민의 주거안정에 유리해진 점을 살리는 것이다. 예전에 부동산 광풍으로 서민들이 허덕이며 아우성치던 때를 생각하면 이런 면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억지로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는 것은 악수가 될 수 있다. 또 다시 예전과 같은 광풍이 몰아친다면 또 후회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분위기로는 학습효과 때문에 그렇게 될 리는 없다고 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상황에 맞는 장점 살려야

그렇다면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민생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 얘기를 너무 깊이 하기는 좀 그렇지만, 건설업 활황이 민생 경제를 살리는 유일한 길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의식주와 같은 하드웨어적인 삶에 치중해 왔다.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입는 생활에 가치를 둔 것이다. 그러나 의식주 외에도 인간생활에는 교육·문화·레저·사교·봉사 등 다양한 면이 있다. 이런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여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정수일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은 일장일단이 있다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가급적 상황에 맞게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유도해 보자.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 로신왕전에서 우 승했다. 한 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276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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