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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죽은 제품도 살리는 ‘재발견’ 

원래 제품에서 새로운 용도 발견하는 사례 늘어 … 수퍼 컨슈머 육성해야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포스트잇은 실패한 연구 성과를 재발견해 대박을 낸 사례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접착제가 접착력이 너무 약해 폐기하려 했지만, 3M은 이 약한 접착력에 착안해 포스트잇을 개발했다.
주부들이 주방과 욕실을 청소할 때 많이 사용하는 ‘암앤해머 베이킹소다’는 본래 빵을 구울 때 사용하는 제빵용 파우더로 개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주부들은 기업의 애초 의도와 달리 베이킹소다에서 세척과 탈취 효과를 발견했다. 이제 베이킹소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왠지 먹는 것보다는 청소용 세재란 이미지가 더 강하게 떠오른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포스트잇’도 원래는 실패한 제품이었는데 우연히 제작자가 새로운 용도를 발견해 떼었다 붙여다 하기 간편한 메모지로 유명해졌다.

원래의 제품에서 우연히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고, 그것을 성공시키는 사례는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 한 수요가 생기는 것이기에 더욱더 반가울 것이다. 더구나 예전에는 기업이 실패한 제품을 다시 리뉴얼해 새로운 제품으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엔 소비자들 스스로 새로운 사용법을 재발견하는 현상이 더욱 강하다. 그야말로 옆에 있는 제품도 다시 봐야할 판이다.

제품의 용도를 새롭게 재발견하면 타깃 고객 자체가 바뀐다.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웨어러블 디바이스 ‘갤럭시 기어’는 애초에 기자나 연구원처럼 전문직종을 타깃으로 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으로 메일을 확인하거나 인터넷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첨단 IT기기인 스마트 워치에 대한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시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높은 선호를 보인 고객군이 기업의 예상과 달리 ‘운동하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스마트 워치를 착용한 사람들은, 이 제품을 스마트폰 대용기기보다는 만보계, 심박수 측정, 칼로리 계산 등의 운동 보조기기로 사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두 제품을 적당히 섞어서 새로운 사용방법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모디슈머(modisumer=modify+consumer)’의 활약이 이에 해당된다. 만두를 즉석밥에 넣어 먹는 ‘만두밥,’ 즉석 계란찜에 밥과 참기름을 넣어 먹는 ‘계란찜 비빔밥’은 모두 소비자가 직접 개발한 레시피다. 다른 음식과 섞어 새로운 레시피로 개발하기 편리한 ‘국물 없는 라면’의 판매량도 부쩍 증가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팔도비빔면’, 농심 ‘찰비빔면’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건강에 좋다고 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탄산수가 폭탄주를 제조할 때 활용되는 등 소비자는 계속해서 다양한 제품을 섞으며 새로운 사용방법을 재발견하고 있다.

제품의 재발견은 매출 상승의 기회

최근에는 기존 제품을 원래의 목적으로 사용하되 그것을 조금만 더 업그레이드하는 사용법도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용도를 추가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공간에 새로운 용도를 추가할 수 있다. 일본의 긴테츠백화점 아베노하루카스 본점에서는 건물의 가장 꼭대기층을 텃밭으로 용도를 변경해 고객에게 분양하고 있다. 전문가가 농사짓는 법을 직접 강의하며 월별로 다양한 식물을 심도록 유도한다. 덕분에 백화점 발길이 뜸하던 고객들이 ‘내 상추는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 백화점을 자주 찾게 되면서 자연스레 매출상승에도 기여한다. 서울시에서도 2014년 부터 명동 유네스코빌딩 옥상, 서초구 서울연구원 옥상, 남산 중부공원녹지사업소 옥상 등 모두 11곳에서 양봉장을 운영하고 있다. 고온다습한 고층 건물의 옥상이 꿀벌이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점에 착안해 공간을 새롭게 재해석한 결과다.

소비자가 스스로 제품을 새롭게 해석하기도 한다. ‘휴롬’이나 ‘쥬스프레소’ 제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일을 통째로 가는 믹서기 제품류와 달리, 이런 주스 제조기들은 녹즙기와 비슷한 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과일의 즙과 섬유질을 분리해서 배출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즙을 낸 주스를 마시고, 찌꺼기로 불리는 섬유질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제품을 재발견한 사람들은 다르다. 가령, 감자전을 부칠 때 믹서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주스 제조기에 간 다음, 남은 찌꺼기를 감자전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당근을 즙낸 후 그 찌꺼기로 케이크를 구우면, 당근이 들어간 표시가 나지 않아 어린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당근 케이크가 완성된다. 제품의 재발견, 아니 찌꺼기의 재발견이다.

기존 제품을 재발견하는 현상의 가장 큰 장점은 자원을 충분히 재활용하는 작은 혁신 사례가 된다는 점이다. 흔히 기업이 하는 혁신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혁신된 것처럼 기존의 시장 질서를 파괴하며 새로운 시장 지배적 표준이 출현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매년 새로 출시되는 자동차 모델처럼 조금씩 성능이 개선되는 연속적 혁신(Continuous Innovation)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혁신 모델 가운데, 재발견 트렌드는 다소 당황스럽지만 재미있는 형태로 매출상승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들이 우리 제품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서도 재발견 트렌드는 중요하다. 재발견 트렌드에 앞장서는 몇몇 소비자를 일컬어 ‘슈퍼 컨슈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3월, 하버드비지니스리뷰에서 처음 발표된 이 개념은 기존의 충성고객과는 약간 다르다. 똑같은 제품을 반복 구매하는 사람을 충성고객이라고 한다면, 수퍼 컨슈머는 기업이 출시한 제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새로운 사용법을 제안하는 소비자를 일컫는다. 제품을 다양하게 활용하다 보니, 한 사람이 구매하는 양도 많을 수밖에 없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전체 소비자 중 약 10% 정도이지만 전체 매출 기여도는 30~70%에 달한다고 한다. 특정 브랜드에 대한 애호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시대에, 수퍼 컨슈머를 육성함으로써 매출 상승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재발견 트렌드를 성공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고정관념을 경계하며, 최대한 유연하게 사고해야 한다. 이에 대해 테오도르 레빗 전 하버드대 교수는 “마케팅의 근시안적 사고(marketing myopia)’를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모든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늘 하던 대로 근시안적인 마케팅을 펼치면 결국 그 기업이나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가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는 정체기에, 완전히 새로운 것, 세상에 없는 것을 발명하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단,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 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81호 (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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