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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유머로 만드는 편견없는 세상 

이란 출신 마즈 조브라니의 스탠딩 코미디 … “아랍인도 웃는다”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ted.com
아랍, 혹은 이슬람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아마도 많은 사람이 비행기 납치, 자살폭탄 테러, 미국 대사관 습격, 9·11 테러 등을 떠올릴 게다. 아니면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 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뭔가를 다급히 의논하는 모습? 최근에는 시꺼먼 복면을 뒤집어 쓰고 오렌지색 죄수복의 인질을 참수하는 끔찍한 영상도 떠오른다. 아랍에는 하나같이 악마들만 있을까? 이슬람교는 정녕 테러리스트를 양성하는 종교일까? 당연히 아니다. 중국인들이 모두 시끄러운 것은 아니고, 일본인들이 죄다 한국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아랍인의 코미디, 편견을 꼬집다


이란계 미국인 코미디언 마즈 조브라니(Maz Jobrani)는 이란의 테헤란에서 태어나 6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UC버클리에서 정치학과 이탈리아어를 전공한 그는 UCLA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코미디언이 되기로 결심한다. 미국 유명 토크쇼인 제이 리노의 ‘투나잇쇼’에 출연할 정도로 성공한 그는 2005년부터 ‘악의 축 (Axis of Evil)’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의 코미디 팀을 만들어 전 세계를 돌면서 공연 중이다(악의 축은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반(反)테러 전쟁을 선포하며 타깃으로 지목한 이란·이라크·북한을 지칭한 말). 첫 번째 세계 투어 제목은 ‘상냥한 갈색피부(Brown and Friendly)’, 두 번째 투어 쇼는 ‘더 상냥한 진한 갈색 피부(Browner and Friendlier)’이다. 투어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그의 목표는 아랍이나 이슬람에 대한 전 세계인의 편견을 코미디로 녹이겠다는 것이다.

“아랍인들은 웃는 것을 좋아하고 인생을 즐길 줄도 압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걸 모르죠. 한번은 제 코미디 쇼가 온라인에 떴길래 인터넷에 접속해 사람들의 반응을 봤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코멘트했더군요. ‘그들도 웃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생각해보세요. 미국 영화나 TV에는 우리가 웃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뭐 악마같이 이렇게 웃을 때는 있겠죠. 으흐흐흐, 알라의 이름으로 그댈 처단하겠다.”

조브라니의 스탠딩 코미디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코미디 베테랑답지 않게 아마추어 같은 싱싱함도 묻어난다. 천진하고 정감 넘치는 그의 코미디 몇 편을 소개한다.

#1. 이란 출신 미국인 배우로서 저는 어떤 역할이든 잘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억양도 미국인 억양이고요. 그런데 할리우드 캐스팅 감독은 제가 중동계라는 것을 알면 반색을 하며 “알라의 이름으로 널 죽이겠다”라고 말해보라고 합니다. 저는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안녕하세요. 저는 의사입니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하면 그들은 “좋아요. 그럼 병원을 납치하세요”라고 합니다. 혹시 오해하지는 마세요. 악역을 맡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어요. 악역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은행털이 역할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총을 들고 하고 싶지 몸에 폭탄을 두르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2. 미국에서 한 무슬림 가족이 비행기 통로를 걸어가며 기내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그 얘길 듣고 그들을 테러리스트라고 오해해 비행기에서 쫓아냈어요. 그들은 아빠·엄마·아이로 구성된 가족이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이란 출신인 저는 미국에서 비행기를 탈 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통로를 걸어가며 ‘Hi Jack (안녕 잭)’ 이러면 안 되는 거죠(hijack은 비행기를 납치한다는 의미). 진짜 거기에 잭이라는 친구가 있어도요. 대신 이렇게 말해야죠. ‘Greetings, Jack (보게 돼서 반가워 잭), Salutations, Jack (행복하길 바래 잭).’ 말하는 중간 중간에 딸기, 무지개, 투티 프루티(Tutti Frutti) 같은 좋은 단어들을 넣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투티 프루티는 과일 아이스크림).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한다. 편견과 선입견. 어찌 보면 세상 모든 분쟁이 다 여기서 비롯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광견에는 몽둥이가 약이듯이, 편견·선입견에는 유머가 약이다. 날 선 눈빛과 삿대질로는 거리를 좁힐 수 없다. 편견없는 세상을 향한 조브라니의 유머 몇 편을 더 보자.


▎‘아랍인의 유머’ 강연 동영상
#3. 사실 저도 편견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지난번 공연 때 두바이에 갔었는데, 저임금 인도 노동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두바이에도 성공한 인도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깜빡했어요. 공연 주최측이 저를 데리러 운전기사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호텔 로비로 내려갔더니 인도 남자 한 명이 서 있더군요. 저는 그가 틀림없이 제 운전기사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그는 싸구려 양복에 얇은 수염을 하고 저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례지만 제 기사신가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호텔 주인입니다.” 제가 말했죠. “아, 죄송합니다. 근데 왜 저를 쳐다보고 있었죠?”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제 기사인줄 알았어요.”

#4. 저는 제 코미디 쇼로 편견을 깨뜨리려고 합니다. 중동 사람과 무슬림들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과 TV프로그램들이 우리를 긍정적으로 표현해 주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누가 알겠어요? 언젠가 우리 만의 제임스 본드도 나올 수 있겠죠. ‘내 이름은 본드. 자말(Jamal) 본드(자말은 흔한 아랍계 이름).’

본래 아랍(Arab)은 페르시아만·인도양·홍해로 둘러싸인 아라비아(Arabia)반도를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통상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말한다. 7~12세기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 세 대륙에 걸쳐 사라센 제국을 건설했던 강대한 민족이었다. 이슬람은 전지 전능한 유일신인 알라(Allah)의 가르침을 받들어 610년 무함마드(Muhammad)가 창시한 종교이다. 이슬람 신도를 가리키는 ‘무슬림(Muslim)’이라는 말은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뜻한다.

최근 아랍과 이슬람 시장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와 지자체, 민간 기업의 관심이 뜨겁다. 무슬림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20~25%, 약 18억명에 달한다. 1990~2010년 사이 무슬림 국가들의 연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8%로, 전 세계 평균을 상회한다. 특히 중동 지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독재 정권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건설·플랜트·인프라·에너지 등에 있어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먹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식품·의약품·화장품 등을 일컫는 할랄(Halal) 시장만 해도 1조 달러를 넘는다고 한다(할랄은 아랍어로 ‘신이 허용한 것’이라는 의미).

무슬림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사업 성공의 열쇠

그러나 이러한 시장 잠재력에도 우리가 아랍, 이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너무나 얇고 좁다. 그나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이미지 때문에 심하게 왜곡된 부분도 많다. 남의 나라를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면서 그 나라 역사·문화·관습·정서 등을 모른다는 것은 일단 예의가 아니다. 또한 그렇게 무턱대고 들이대면 장사도 잘 될 리 없다. 1996년에 나이키는 아랍어 ‘알라’와 유사한 문양의 불꽃 무늬 로고를 신발에 새겼다가 무려 80만 켤레의 신발을 회수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 대해 공부가 필요한 때다. 무슬림 시장이 정체된 한국 경제에 새로운 블루오션이 되어줄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의 준비 여하에 달려 있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284호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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