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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노 무어 유레카 의장] 한국은 유레카의 아시아 게이트웨이 

4200개 프로젝트에 45조원 투자 ... 한국에선 84개 산·학·연이 55개 프로젝트에 참여 


▎사진:전민규 기자
1985년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개발을 국가가 어떻게 지원해야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두 정상은 곧 몇 가지 아이디어에 동의했다. 정부가 직접 펀드를 만들고, 현장 기업인의 의견을 반영하며, 시장에 금방 투입할 수 있는 기술 위주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유럽연합(EU)의 시장 지향적 산업 기술개발 프로그램인 ‘유레카(Eureka)’가 등장한 배경이다.

같은 해 유럽 18개국은 유레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금은 정회원 40개국과 준회원 3개국 등 총 4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2009년 6월 비유럽권 최초로 준회원국으로 가입했다. 한국을 제외한 비유럽 국가는 캐나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두 곳에 불과하다.

5월 21일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브르노 무어 유레카 의장을 만났다. 그는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유레카데이 진행을 위해 방한했다. 브르노 의장은 “한국에서 열린 유레카 데이가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1대1 기술협력 상담이 하루에만 200건 넘게 열렸습니다. 한국과 유럽 기업들이 좋은 연구·개발(R&D) 파트너를 발굴하는 발전적인 미팅이 행사 내내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비유럽권 최초로 가입

그는 한국의 유레카 준회원국 지위 갱신 협정도 높이 평가했다. 오는 6월 만료 예정이던 한국의 유레카 준회원국 지위는 이번 서명으로 2018년 6월까지 연장됐다. 그는 “이번 지위 갱신을 통해 한국 중소·중견기업과 유럽 업체들의 R&D 협업이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레카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국과 준회원국의 중소·중견기업은 공동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각국 정부로부터 R&D자금을 지원 받는다. 코리아 유레카데이는 한국 기업과 유레카 회원국 기업 사이의 기술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이 매년 개최해온 행사다. 한국은 지난 3년간 유럽에 직접 찾아가 행사를 열었다.

브르노 의장은 “한국이 유럽까지 직접 찾아와서 행사를 진행하는데 우리도 당연히 한국을 찾아와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한국에서 행사를 개최한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사회적 도전을 위한 글로벌 혁신’이다. 유레카 회원국 정부 대표를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22개국 기술인, 국내연구자 등 총 500여명이 참여했다. 1대1 기술협력 상담, 기술세미나, 협력 사례 공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국을 찾은 유레카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했다. 유럽 시장을 공략할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 기업 관계자들은 한국 업체 사람들과 상담을 하며 서로의 장점을 살릴 방법을 찾았다. 유레카에 참가한 한국 기업이 유럽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발의하면 승인절차를 거쳐 지원이 이뤄진다. 유레카에선 지금까지 4200여개 프로젝트에 45조원이 투자됐다. 한국에선 중소기업 62곳을 비롯해 84개 산·학·연이 55개 프로젝트에 참여해 41개 회원국, 621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지원금 규모는 약 400억원에 이른다. 주로 우리나라의 강점 분야인 정보기술(IT)에서 활발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매치메이킹을 진행한 기업·기관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유레카를 통해 스위스 연구기관과의 협업을 추진 중인 전자부품연구원 오민석 책임연구원은 “사전에 네트워크가 없는데도 정부와 유레카 사무국이 보증하는 플랫폼 안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유럽 기업이 처음부터 신뢰감을 가지고 접근해서 실질적 비즈니스가 이뤄질 수 있었다”며 “신체 부착형 의료센서 부분에서 협업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레카를 통한 협력은 서로에게 소중한 경험이라는 평가다. 한국과 유럽 기업이 함께 연구하면서 유럽의 연구프로세스나 소통 방식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르노 의장도 “자국 기관 간 협력에서 벗어나 글로벌 협력으로 선진 R&D 방식과 문화를 배워야 한다”며 “한국 제조업과 EU 선진 기술이 융합하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은 국가와 기업의 중요한 자산이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유레카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다른 나라의 기업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도중에 결렬됐을 때, 자금을 지원한 정부는 난처한 입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브르노 의장은 “많은 실패와 갈등이 있었지만 더 큰 이익을 생각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설명했다.

자체 개발 능력이 있는 대기업은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소·중견기업 경영자에겐 연구 개발 지원은 기업의 운명과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유레카 회원국은 투자로 인한 불안정성보다 성공 이후 미치는 효과에 주목했다. 회원국을 꾸준히 늘렸고, 2009년엔 한국을 준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며 비유럽 국가에까지 문호를 넓혔다. 이번 서울 포럼에는 중국과 베트남 기업인이 많이 참여했다. 최근 체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한 아시아 시장 진출에 유럽 주요국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배경이다. 그는 “한국이 유레카 프로그램의 아시아 게이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중 FTA 이후 EU 기업 관심 커져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는 일본이다. 경제력과 기업수에서도 한국을 압도한다. 그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을 회원국으로 받은 이유로 경제 규모와 기술력을 꼽았다. “EU는 거대 경제권이지만 각 소속국들의 경제 규모에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은 EU 주요 회원국과 비슷한 경제 규모와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화학이나 소재, 제약산업은 EU가 앞서 있지만 IT 분야와 주요 제조산업에서 한국은 탁월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협력을 통해 윈윈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는 같은 이유를 들어 캐나다의 준회원국 가입을 설명했다. 북미 대륙에는 미국이라는 경제 대국이 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도 보유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유레카 가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유레카 회원국들이 한국과 캐나다를 선호한 이유다. “우리는 캐나다와 손을 잡고 북미 시장 진출에 나설 계획입니다. 한국도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한국을 통해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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