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1997년 11월 11일자에는 아주 특별한 인물 한 명이 소개됐다. 건국대 식품개발연구소장과 선문대 부총장을 역임한 주현규 박사다. 1993년 그는 ‘냄새 없는 청국장’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쑥을 이용해 냄새를 없애면서도 청국장이 가진 고유의 맛과 영양은 그대로 간직한 제품이다. 청호식품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상품화에도 성공했다.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교수와 사장을 겸직하며 화제가 됐다.그가 만든 청호식품은 회사라기보다는 연구소에 가까웠다. 건국대 교수 시절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에 연구소를 지었고, 그곳 한 켠에서 청호식품의 제품을 만든 것이다. 주로 아내인 전영주씨와 마을의 지인들이 함께 청국장과 된장, 고추장을 만들었다. 지금처럼 온라인 유통채널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 입소문으로 일부 골프장과 대형 식당에 납품했다. 그러다 2002년 주현규 박사는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사업을 접을까도 생각했지만 제품을 찾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 혼자 회사를 운영하며 명맥을 이었다. 그리고 2013년 전영주씨마저 남편의 곁으로 갔다.고(故) 주현규 박사와 전영주씨에겐 아들이 둘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국내 유명 주류회사에서 잘나가는 해외 영업담당으로 일하던 주은홍(45)씨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금마면의 청호식품을 찾았다. 땅과 시설을 어떻게 처분할까를 고민했다. 막상 회사를 둘러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아버지가 청국장을 개발하면서 쓴 논문과 연구자료가 가득했다. 어머니가 손수 장을 담그던 시설도 그대로였다. 회사의 만류에도 주은홍씨는 사표를 냈다. 그렇게 2013년 청호식품의 새로운 대표가 됐다. 그는 “부모님이 예전에 내준 숙제를 미뤄뒀다가 한번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막막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부모님의 유산과 다름이 없었기에 ‘제대로 해보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청국장 자체가 가진 이미지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어요. 사람들은 ‘청국장’하면 고린내를 먼저 떠올려요. ‘우리 청국장은 냄새가 없다’고 소개하면 ‘냄새가 빠지니 맛도 없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죠.” 고민 끝에 주 대표가 내놓은 해법은 ‘청국장 가루’다. 청국장을 편리하게 선식처럼 먹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개발한 효소로 만든 청국장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옮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연구를 거듭했고 아버지가 생전에 썼던 연구자료와 논문을 읽으며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전영주 청국장 가루’다. 예상외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SNS를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제품을 한번 경험한 사람의 재구매율이 50%가 넘는다는 점이다. ‘변비가 사라졌다’ ‘아침 대용으로 먹으며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고객들의 평이 이어졌다.“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주 대표는 청국장 자체의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해외 진출을 위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언젠가는 일본의 낫또처럼 청국장도 세계인의 인정을 받을것이란 희망을 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