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정수현의 바둑경영] 집짓기형 이창호, 전투형 이세돌 

기풍은 반상을 경영하는 스타일 ... 리더십 따른 실리 취해야 

정수현

▎이창호 9단(왼쪽)과 이세돌 9단. / 사진:중앙포토
사람의 성격에 유형이 있듯이 경영자들의 리더십에도 유형이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누르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관대하고 자상하게 보살펴주는 타입도 있다. 모든 것을 꼼꼼하게 직접 챙겨야 직성을 풀리는 리더가 있고, 웬만한 일은 알아서 하도록 하는 리더가 있다. 어떤 타입이 좋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군사전략은 물론 천문지리 등 다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매사를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심을 못하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라이벌 사마의는 이런 스타일을 간파하여 제갈공명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국 제갈공명은 세상을 떠나고 삼국지의 판세는 사마의가 속한 위나라로 기울었다. 바둑에도 판을 이끌어가는 스타일이 있다. 그것을 기풍(棋風)이라고 한다. 기풍은 반상을 경영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기사의 기풍으로 리더십 유형을 알아보기로 한다.

◇ 실리형과 세력형 = 기사의 기풍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몇 가지 범주로 나뉜다. 그중에서 어떤 자산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실리형과 세력형으로 구분한다. 실리형은 현금자산과 같이 확실한 이익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세력형은 현금은 아니지만 미래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는 타입이다.

[1도]에서 백1로 다가서자 흑2에 협공하여 흑10까지 둔 상황이다. 흑은 웅장한 세력을 얻었고 백은 귀에 10여 집의 실리를 차지했다. 백은 현금이나 다름없는 이익을 얻었으나 흑은 확실한 집이라고 할 곳은 아직 없다. 하지만 우변 일대에 막대한 수익을 가져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처럼 실리와 세력으로 나뉘면 어느 쪽이 좋을까? 이런 경우 기사의 기풍에 따라 선호가 갈리게 된다. 즉 실리형은 백이 좋다고 하고 세력형은 흑이 좋다고 한다.

구경꾼이 보기엔 세력형인 흑이 멋있어 보인다. 기업으로 치면 세력형은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스타일이다. 왕년에 ‘우주류’로 불린 다케미야 9단은 이 그림의 흑처럼 웅장한 세력을 펼쳐 시원스러운 바둑을 보여줬다. 기업에서도 이런 식으로 호쾌하게 투자하여 경영한다면 국민들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실리형은 너무 현찰만 밝히는 것 같아 얄미워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프로기사들은 실리주의적인 경영을 한다. 현금 위주의 운영이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회사에 현금을 쌓아두고 안전한 자산에만 투자하는 기업가와 같다.


◇ 집짓기형과 전투형 = 기풍을 나누는 또 다른 기준은 집짓기를 중시하느냐 전투를 중시하느냐다. 집짓기형은 바둑돌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집을 많이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전투형은 싸움을 하여 대마를 잡는 전략을 좋아한다. 기업에 비유하면 집짓기형은 재무관리를 중요시하는 경제통이다. 전투형은 라이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 재계 서열을 높이려는 군사형 리더에 비유할 수 있다.

집짓기형은 대체로 싸움보다는 타협을 좋아한다. 피 흘리며 경쟁을 하기보다 타협을 하며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이 타입의 대표는 신산 이창호 9단이다. 수치 계산에 능한 이창호는 반상의 금융 전문가였다. 그래서 이창호의 바둑에서는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현이 즐겨 사용되었다. 전투형은 라이벌과 경쟁을 벌이면서 우위를 점하려는 타입이다. 이 유형은 기업을 전쟁터라고 간주하여 어떻게든 경쟁자를 쓰러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수비 보다 공격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 타입의 대표는 화려한 전투 바둑을 구사하는 이세돌 9단이다. 이세돌은 강렬한 힘과 전략적 수읽기로 상대를 제압하여 승리를 얻어내곤 한다.

[2도]는 이세돌과 이창호의 실전대국이다. 좌변에서 이세돌의 도전으로 약간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별 탈 없이 일단락되었다. 이 싸움이 끝나자마자 이창호는 얼른 손을 돌려 백1로 우변의 백돌에 집을 만든다. 미생마로 쫓기는 형국을 피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이 만일 전투형이었다면 공격당할 것을 각오하고 하변의 노른자위 땅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세돌이 흑2의 큰 곳을 차지하자 이번에는 백3으로 좌상귀의 집을 확보한다. 전투형인 이세돌은 뭔가 싸울거리를 찾는 반면 집짓기형인 이창호는 싸움을 피하고 수익을 올려 이기려고 한다. 이 바둑은 이세돌의 집요한 도전에도 이창호가 재무관리를 잘 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세돌의 강렬한 펀치가 성공을 거둔 바둑도 적지 않다.

기업이라면 어떤 타입이 좋을까? 전투형 리더라면 경쟁 업체의 상황을 논하며 그들을 꺾고 업계를 평정할 전략을 얘기할 것이다. 집짓기형 리더라면 ‘적과의 동침’도 사양치 않으며 수익을 올리는 쪽을 추구할 것이다. 이 역시 어떤 쪽이 좋은지는 단정하기 힘들다. 다만, 소문 내지 않고 실속을 차리는 알짜기업의 리더는 집짓기형일 가능성이 클 듯하다.

◇ 발빠른 타입과 두터운 타입 = 기풍을 분류하는 기준도 다양하다. 속도를 중시하느냐 든든함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기풍을 나누기도 한다. 발빠른 바둑은 성과를 빨리 추구하는 타입이다. 이 유형의 대표는 ‘제비’ 또는 ‘속력행마’로 불린 조훈현 9단이다. 조훈현은 날렵하고 스피디한 행보로 일찌감치 상대를 앞서가는 전략을 구사하곤 했다. 두터운 바둑은 속도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타입이다. 속도는 느리지만 단단하게 두기 때문에 대마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작다. 이런 타입의 대표로는 왕년에 ‘괴물 슈꼬’로 명성을 떨친 후자사와 9단을 들 수 있다. 후지사와는 두텁게 두어놓고 상대의 대마나 약점을 공략하는 전법을 즐겨 썼다.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 조직에서도 성과중시형과 안전제일형이 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기질상 대개 빨리빨리형이 많다. 이 유형은 성과를 빨리 내는 반면 여러 면에 허술함이 노출될 수 있다. 안전사고가 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성과보다 조직의 안녕에 신경을 쓰는 리더는 위험을 초래할 확률은 낮으나 업적 면에서 저평가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자유분방형과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원리주의형이 있다. 또한 온건파 리더와 강경파 리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풍으로 보면 어떤 리더십 유형이 좋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조직의 리더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경영자라면 어떤 타입인지 생각해 보고 그 유형의 강점을 살려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293호 (2015.07.1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