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공익 활동의 힘은 공감과 연대에서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지난 6월 과테말라에 단기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떠나기 전에는 실제 구호현장을 경험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반, 익숙한 문명과 동떨어진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반이었다. 막상 다녀오고 나니 9일이라는 기간 동안 ‘나’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렸던 듯하다. 특히 물·전기·위생 문제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현지 선교사 부부를 보면서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모를 아픔과 부끄러움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필자가 이른바 공익사업에 몸을 담은 10여년간 기쁘고 행복한 일도 많았지만,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안타까운 질문이 있었다. 바로 ‘공익적인 삶에 몸담는다는 것이 왜 이토록 고달프고 힘든 일이어야만 할까?’이다. 과테말라의 선교사 부부의 삶에서부터 우리나라 사회복지·공익 관련 종사자 30만여명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질문이다.

필자는 공익 분야의 여러 사업과 활동이 애초의 뜻을 이루려면 ‘공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개개인의 일상에 녹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 우리는 공익적인 일이라고 하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만이, 특수한 상황에 있는 일부의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흔히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피를 깎는 노력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왜 유독 공익 분야 종사자들은 항상 낮은 임금, 열악한 근무환경,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소명의식 하나로 버텨내다가 결국 개선의 여지 없이 반복되는 현실에 절망해 떠나는 걸까? 생각을 바꿔보자. 만약 공익적인 의미가 들어간 사업이 일반 비즈니스보다 더 경쟁력을 얻고, 그걸 통해 시장을 만들고, 거기에 인재들이 뛰어든다면? 소명의식으로 참고 견디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경쟁력이다. 과연 공익에 경쟁력이 존재할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지난 10여년간 이 문제에 천착하면서 얻은 답은 바로 일상에서의 ‘공감’과 ‘연대’다.

일상에서의 공감이란, 삶을 뒤바꿀 만한 공감을 통해 자기 영역에 대한 아주 작은 공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종종 자신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공익에 관한 콘텐트가 전달될 때, 이를 받아주는 아량도 하나의 일상 공감에 속한다. 물건을 팔 때 공익 분야를 위해서라면 일정 부분의 생산량을 최저가 선에서 내놓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반 비즈니스에선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지만 공익이라는 공감이 있다면 다를 것이다. 더 나아가, 만약 이런 작은 공감의 모든 영역이 우연히 어떤 메시지를 함께 던진다면 얼마나 큰 변화의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엄청난 흐름의 그림이 그려지는데, 이것이 바로 일상에서의 연대의 힘이다.

긍정적인 것은 필자가 몸담고 있는 분야만 봐도 분명 변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SNS를 통해 수시로 공익 콘텐트에 공감하며 참여하고 있고, 방송사의 일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공익적인 스토리텔링을 가미하고 있다. 공익적인 연대는 끈끈해지면 끈끈해질수록 더 발전된 참여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특성이 있다. 미래를 고민하는 젊음 세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공익 분야에 가서 뜻을 펼쳐보고, 크게 성공하라!”라고.

-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1296호 (2015.08.0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