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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비 회복의 신기루] 도시는 인플레이션, 지방은 디플레이션 

실질임금 별로 오르지 않아 ... 저가 저매장에만 사람 몰리는 불황형 소비 증가 


▎일본의 한 대형 쇼핑몰. 최근 일본의 소비 회복을 시사하는 지표가 잇따르고 있지만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 사진:동양경제 제공
‘신기루 소비’. 어느 유통 업계 간부는 최근 일본의 소비동향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신기루란 빛의 이상 굴절로 지상의 물체가 떠오른 것처럼 보이거나 먼 곳의 물체가 가까이 보이는 것을 말한다. 개인 소비에 관한 각종 지표는 회복세를 나타내기 시작했으나, 현장에서는 무작정 기뻐할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정말로 소비가 회복 중인가? 잘 모르겠다’며 시원치 않은 모습도 보인다. 그렇다면 소비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신기루는 왜 발생한 것일까?

고이즈미 총리 시절 미니버블 이후 상황과 닮아


얼마 전 내각부가 발표한 소비종합지수에선 회복 조짐이 강하게 관측된다. 총무성이 6월 하순 발표한 5월 가계조사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소비 지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했다. 소비 지출이 전년 동월을 웃돈 것은 1년 2개월 만이다. 그러나 지난해 5월은 소비세율 인상으로 2011년 3월 이후 가장 큰 소비 침체가 나타난 시점이었다. 4.8%라는 높은 증가률은 일종의 기저효과로 보는 게 맞다.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임금이 여전히 묶여 있는 상태다. 실질 가처분소득 개선폭도 작다. 이런 상황이 소비 동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엔저로 인해 식품가격이 과거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비 동향이 요동치는 이유는 일단 구조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아오키 다이주 UBS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체 가계 소비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달하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임금이 소비로 이동하는 것은 약 70% 정도지만 연금은 100% 소비된다”며 “소비 시장에서 고령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선 55세 이상 세대의 가계 소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풍부한 금융자산이 원천일 것이다. 역으로 대부분의 현역 세대는 물가 상승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를 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소비 회복이란 달리 말하면 스톡(여유)이 있는 사람이 물건을 산다는 소리’(아오키 이코노미스트)다.

엄밀히 말해 지금 일본의 소비를 지탱하는 것은 ‘정부→가계’라는 돈의 흐름이지, 정부가 추구하는 ‘기업→가계’라는 흐름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제조업은 경쟁력이 저하하고 있어 이러한 구조를 바꾸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이렇게 탄탄하지 못한 개인 소비는 머지않은 장래에 기력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구조적 요인은 ‘도시와 지방의 격차’다. 기노자키마키 모건스탠리 MUFG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 앞에서 요즘 일본 경제 정세에 대해 ‘도시는 인플레이션, 지방은 디플레이션’이라고 설명한다. “도심부에는 소비의 중심인 ‘단카이 주니어(일본 베이비붐 시기인 단카이 세대의 자식 세대에 해당하는 1971~1975년생을 이르는 말)’가 많이 살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 관광객의 높은 구매력이 더해져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달리 지방은 산업 공동화로 총수요가 늘지 않아 디플레이션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와 관련해 ‘돈키호테(창고를 연상케 하는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일본의 잡화 할인매장)’의 동향을 주목할 만하다. 제품 조달이나 유통망 측면에서 ‘지점(SPOT) 조달’을 강점으로 하는 돈키호테는 최근 지점의 범위를 넓혔다. “아마도 지방을 중심으로 제조 업체의 도산이나 유통 재고가 늘어난 것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고이즈미 정권의 미니버블이 끝난 2006년 상황과 닮았다.” 한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업 간 격차가 가장 큰 곳은 백화점이다. 도시냐 지방이냐가 승패를 좌우할 정도다. ‘정령지정도시(한국의 특별시나 광역시처럼 자치권을 갖는 일본 내 20개 시)나 대도시의 1~2순위 백화점이라면 괜찮겠지만 그 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쓰다 카즈노리 다이와증권 수석 애널리스트)

원래 백화점의 핵심은 의류지만 매출에서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커지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의류와 비슷한 수준이 될 가능성도 지적된다. 지방에서는 이미 식품 구성비가 50% 이상인 곳도 나타났다. 백화점이 식품수퍼처럼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방의 침체를 도심부 매출로 메우고 있지만, 도심은 중국인 관광객의 ‘싹쓸이 쇼핑’이라는 특수로 지탱된다. 지금의 백화점이 신기루와 같은 위험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과거 유니클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대의 총아라고 일컬어졌던 시마무라(중저가 의류체인)의 기세가 꺾인 것이나 교외를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하다 대거 폐점한 야마다 전기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을 바탕으로 소비 관련 업계의 상황을 좀 더 살펴보자. 일단 종합수퍼(GMS)·편의점·식품수퍼 등 생활밀착형 소비 업계는 회복 경향이 두드러진다. 판매액의 약 30%를 의류 등 비식품이 점하는 종합수퍼는 얼마 전까지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올 4월 전국 종합수퍼 매출 증가율은 플러스로 돌아섰다. 지난해 소비세 인상 이후 처음이다. 도이 카즈히사 이토요카도 사장은 “식품을 중심으로 회복 기조에 있다”며 “의류는 아직 뒤쳐져 있으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이야기한다.

대형 식품 매장으로 변해가는 지방 백화점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 중인 식품수퍼가 호조다. 23분기 연속 이익이 증가하고 있는 야오코(사이타마현을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의 수퍼마켓 체인)는 소비세율 인상 후에도 고객 수, 매출이 전년을 웃돌고 있다. 중장년층의 구매 의욕이 강해, 상품군이 풍부한 정육이나 반찬 코너의 인기가 높다. 가와노 스미토 사장은 경기 전망에 대해 “소비세율 재인상이 연기돼 부정적 요소가 없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수도권 수퍼의 간부는 “소고기 시세가 올라 예전 같으면 값싼 돼지고기로 이동했을 텐데, 소고기가 그대로 팔린다”고 말했다. 조금 비싸도 질을 중시하는 중장년 고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오코조차 ‘젊은층이 느끼기에 무언가 득이 된다는 생각이 들도록 가격 면에서 구매를 자극하는 고객 유치가 필요하다’며 골머리를 앓는다. 지방 매장일수록 가격 정책이 중시된다. 기후현을 기반으로 하는 바로(Valor)의 다시로 마사미 회장 겸 사장은 “수도권 수퍼는 지방과 상황이 다르다”며 “소비자가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EDLP(Everyday Low Price: 매일 저가격)’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편의점은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구매의욕 저하를 걱정했지만 의외로 실적이 나쁘지 않다. 지난해 세븐일레븐 재팬은 편의점 중 유일하게 전년도를 웃도는 실적을 냈다. 저녁 반찬 구매자가 늘어난 덕분이다. ‘고령자나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장을 보려는 고객이 많아졌다’(세븐&아이홀딩스 홍보실). 지난해 고전했던 패밀리마트와 로손도 최근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외식 업계는 업태마다 명암이 갈리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의 매출은 지난해부터 전년 대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가을에 재상장에 성공한 스카이락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주력 브랜드인 ‘가스토(gusto)’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올해 1~5월에도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현재 교외 패밀리 레스토랑은 고령자들의 쉼터로 빈자리가 없는 매장도 꽤 있다. 소비 관련 한 애널리스트는 비교적 고가격 대인 ‘로얄호스트’가 전년 실적을 밑돌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백화점 레스토랑이나 로얄호스트에 갔던 고객이 비교적 저렴한 가스토로 이동하고, 가스토에 갔던 고객이 그보다 저렴한 사이제리아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이제리아는 좋은 실적을 나타내고 있는데 외식 고객이 단가가 저렴한 매장으로 수준을 한 단계 낮추고 있다는 의미다.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오르면서 다운형 소비를 가속화시킨 결과다.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중산층에서 그 아래로 전락한 가구가 늘었다는 설명도 있다.

패스트푸드와 이자카야는 고객 이탈이 심각하다. 일본 맥도날드는 지난해 7년 유통기한이 지난 닭고기 사용 문제와 더불어 올 1월 이물질 혼입 발각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으며 고객 이탈이 가속화됐다. 일본 맥도날드의 매출은 지난해 초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가격 전략을 바꾼 후 다소 비싸다고 느낀 소비자가 늘어난 점도 문제다. 맥도날드가 부진하다고 해서 다른 패스트푸드형 체인점으로 고객이 유입되는 것도 아니다. 대형 규동(소고기 덮밥) 매장인 마쓰야 푸드의 미도리가와 겐지 사장은 “전국에 5만점이나 되는 편의점에 비해 규동 매장은 5000점이 안 된다”며 “편의점에서 파는 제품의 질이 높아지면서 패스트푸드 업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에 고객 빼앗기는 패스트푸드·이자카야

가전매장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가전은 5~10년이라는 교체 사이클이 있어 큰 흐름이 있는 시장이 아니었으나 최근 3번에 걸친 특수가 이러한 사이클을 크게 뒤흔들었다. 첫 번째는 2009년 5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실시된 ‘에코포인트 제도’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구입하면 포인트를 주고, 상품권 등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오래된 제품을 ‘이 기회에’ 바꾸겠다는 사람이 급증했다. 두 번째는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 마지막은 소비세율 인상이다. 이에 따라 수요가 크게 요동치면서 최근 업계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 번역=김다혜

1296호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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