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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상 한국시세이도 사장] 여심 사로잡는 비법은 ‘무조건적 이해’ 

시세이도의 첫 한국인 CEO … 화장품 업계 30년 경력의 노련한 마케터 


▎사진:오상민 기자
지난 30여년간 한국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산업 중 하나가 화장품이다. 이젠 세계 각국 화장품 회사들이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실시간 주목한다. 외국계 유명 화장품 한국 지사의 중요 임무 중 하나도 한국의 화장품을 왕창 사들인 뒤 왜 이 제품이 잘 팔리는지 원인을 분석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국 화장품 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처음부터 잠재력을 가졌던 건 아니다. 외국의 럭셔리 브랜드가 꾸준히 들어와 토종 브랜드를 자극하고 시장을 키운 덕도 크다. 그 정점에 있는 코스메틱 마케터가 있다. 한국시세이도 황학상 사장이다.

창립 143년이 된 글로벌 5위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자생당)는 7월 1일 한국 지사장으로 황학상 사장을 선임했다. 황사장은 1984년 한국 화장품에서 시작해 30여년간 화장품 업계에 몸을 담아온 노련한 마케터다. 특히 1993년 로레알코리아 창립멤버로 한국 시장에 랑콤·비오템·슈에무라·키엘·입생로랑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글로벌 브랜드 출시에 관여했다. 황 사장을 선임한 건 시세이도 아시아-태평양을 총괄하는 장 필립 샤리에 대표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이뤄졌다. 이유는 '전 세계 어느 누구보다 한국 시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세이도에게 한국 시장은 전략적 요충지다. 이런 시장을 잘 아는 현지인에게 전권을 일임한 것이다. 시세이도의 미래 전략 ‘비전 2020’중 하나인 ‘Think Global, Act Local(생각은 글로벌하게, 행동은 현지에 맞게)’에 따른 조치다.

“한국 시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적임자”


황 사장은 업계에서 한국의 화장품 시장을 일궈온 산증인으로 유명하다. 화장품 업을 처음 시작하는 직원들에게 화장품 시장 변천사를 강의하는 것이 주 업무 중 하나였을 정도다. 현대적 의미의 화장품 마케팅이 시작될 무렵인 30년 전, 황 사장은 백화점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순탄하게 주류 유통경로를 맡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당시엔 방문판매가 유통경로의 핵심이었다. 대량 판매, 백화점, 살롱(전문 미용숍)을 모두 합해도 방문판매 매출을 따라 잡지 못했다. 현재 방문판매는 토종 브랜드를 중심으로 상당 부분 축소되었고 화장품은 백화점의 디스플레이라고 불리는 1층에서 파는 핵심 상품이라는 인식이 번져있다. 하지만 당시엔 백화점은 판매보다는 브랜드를 광고하는 역할을 하는 곳에 불과했다. 1990년대 초반 외국 브랜드가 하나씩 들어오고서야 백화점에서 본격적으로 럭셔리 브랜드 판매가 시작됐다. 이후 외국 브랜드의 인기가 치솟았고 수입 화장품은 매대에 올려놓기만 하면 팔려나갔다. 프랑스의 로레알, 미국의 에스티로더, 일본의 시세이도(1997년 한국 출시)가 중심이 됐다. 황 사장은 시장 격변기에 외국 브랜드를 이끌었다.

지금이야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남성 직원이 흔하다. 하지만 1980년대만해도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남성은 눈에 띄는 존재였다. “화장품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운명 같은 건데…. 고등학교 시절 당시엔 흔치 않았던 남녀공학을 다녀서 여성이 많은 직장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상과 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은행이나 종합 상사 같은 곳에 많이 가는데, 제가 졸업할 땐 한국화장품이 3년 연속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될 때였어요. 기업을 고를 때 보는 성장성·안정성·수익성이 모두 좋았지요. 특히 성장률이 거의 50%를 넘길 정도였죠. 당시만 해도 각 지역에 가장 큰 빌딩은 모두 화장품 회사였어요. 토종 브랜드들끼리 서로 높은 빌딩을 사서 겨룰 때였습니다. 그런데다 유명한 실업 야구팀·농구팀·탁구팀까지 가지고 있으니 재미있는 회사란 생각이 먼저 들었죠.”

그래도 청일점, 지내기 쉬울 리 없었다. 하지만 수년을 지내면서 여성 심리 하나만큼은 잘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가 말하는 여성 심리의 특징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이다. “상반된 이야기 같지만, 포인트는 마음을 사는 겁니다. 그러려면 이해하는 수밖에 없어요. 작은 것에 감동을 주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하나 주면 열로 돌려주는 것이 여성의 마음입니다. 그래도 한번씩 복잡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도 여성의 마음을 ‘무조건’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끝장납니다.”

오랫동안 한 업계에 있었지만 CEO는 처음이다. 황 사장은 “조직이 커서 책임감도 무겁다”고 말했다. 말단 직원이나 간부, 이사일 때와는 사뭇 무게감이 달라진단 얘기다. 사무실 직원만 73명, 판매 현장에 305 명, 총 378명의 직원들이 자신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첫번째 임무는 직원과의 소통이다. 아직 직원 모두와 대면하지 못했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직원들과 많이 만나서 현장의 소리를 자주 들을 생각입니다. 지금 시세이도엔 그런 소통이 절실합니다.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방향이 크게 변화하고 있어 현재까지 해온 일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소통이 되질 않아 현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현장의 작은 팩트들을 잘 모아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거든요.”

과거엔 ‘시세이도’하면 브랜드 파워만으로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시세이도의 무엇이기 때문에’라고 이유가 있어야 팔린다. 그만큼 한국 소비자 수준이 높아졌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로서 마케팅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더해 백화점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더 이상 성장하기 쉽지 않다. 기존 백화점 매대는 레드오션이라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처지다. 황 사장은 “이럴 땐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쾌활하고 발랄한 아가씨 같은 회사 추구

황 사장은 시세이도에 대해 “동양인에 맞는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꾸준히 해서 높은 품질을 가지고 있다”면서 “드러내기 좋아하지 않는 일본의 기업 문화는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성장 잠재력이 있는 브랜드이면서도 장점을 잘 살려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제품을 출시하는 속도를 높이는 등 한국의 빠른 마케팅 사이클에 시세이도를 적응시킬 작정이다. 움직임이 기민해지려면 근무환경이 유연해져야 한다. 황 사장은 “여성 직원이 많은 만큼 근무환경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어서 기업과 가정이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혁신을 시작하려면 업무 문화도 바꿔야 한다. “새로운 일을 시키려면 과거에 하던 일의 부담을 덜어줘야 합니다. 매번 하는 일에 다른 일을 더하게 되면 전에 하던 일도, 새로운 일도 모두 잘 할 수 없어요. 실무자들이 전결할 수 있도록 권한도 가능한 넘겨줄 생각입니다.” 황 사장은 문서에 쓰이는 언어도 영어로 통일하고 보고서 양식도 간소화 시킬 생각이다. 매니지먼트 스타일도 다국적화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또 다른 목표 중 하나는 사무실 이전이다. 1997년 한국 진출 이후 17년 동안 쭉 같은 사무실을 써왔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활달하고 개방적인 이미지를 추구할 계획이다. 고요하고 정갈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쾌활하고 발랄한 아가씨처럼로 변신하자는 의미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1296호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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