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애플워치도 비싼 수리비 논란] ‘배보다 배꼽 큰’ 리퍼로 배짱영업 

새 제품 구매가와 큰 차이 없어 ... 공정위, 일부 약관 조항 시정권고 


▎애플이 지난 6월 26일 국내에 출시한 애플워치를 구매하기 위해 서울 명동 프리스비 앞에 모인 소비자들. 애플은 폐쇄적인 AS 정책을 애플워치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애플이 지난 6월 26일 국내에 출시한 스마트워치 ‘애플워치’가 애프터서비스(AS) 문제로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애플워치가 최저 43만9000원(애플워치 스포츠 38mm)에서 최고 2200만원(애플워치 에디션 38mm)에 이르는 고가의 기기임에도 애플 측은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수리비를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간 소비자 권익은 뒷전으로 하는 폐쇄적 AS 방식으로 계속 논란을 일으켰던 애플이 애플워치 출시 후에도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더 큰 피해가 우려된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의 한 정보기술(IT) 기기 관련 온라인 동호회 회원 A씨는 지난 7월 국내에 출시된 애플워치 스포츠 38mm를 구매했다. A씨는 구입한 지 한 달도 안 돼 실수로 애플워치를 땅에 떨어뜨렸고, 제품 액정이 완전히 망가졌다. 수리를 위해 서울에 있는 애플 공인 서비스 센터를 찾은 A씨에게 센터 측이 제시한 수리비는 34만6000원. 구매가(43만9000원)의 80%에 달하는 액수였다. 이는 리퍼, 즉 소비자가 고장 난 제품의 수리를 원할 땐 중고 부품을 일부 조립해서 만든 재제작품을 대신 지급하는 애플 특유의 AS 방식에서 비롯된 액수다. A씨는 “이럴 바엔 차라리 새 애플워치를 하나 더 사는 게 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43만원짜리 고장 났는데 34만원 내라니…


문제는 애플이 소비자들에게 제품 자체의 수리와 유상 리퍼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애플 공인 서비스 센터들은 ‘아이폰’ 등 기존 제품의 AS 때도 고장 정도를 확인하지도 않고 소비자들에게 수리(리퍼)비부터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예컨대 제품 액정이 파손된 경우 액정만 교체할지 제품 전체를 교체할지는 국내에 없는 애플 진단 센터가 결정하며, 제품을 맡긴 소비자는 무조건 이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애플 측이 명시한 약관 내용이다. 또한 이 경우 소비자들은 공인 서비스 센터에 제품 전체 교체 비용을 선결제해야 한다. 나중에 액정만 교체하게 되더라도 차액을 환불해줄 테니 미리 전액 결제하라는 식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비자가 고장 난 기기를 맡겼다가 사설 업체를 통해 수리하겠다며 돌려줄 것을 공인 서비스 센터에 요청해도 센터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한 번 맡기면 애플의 AS 정책상 취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 있는 공인 서비스 센터들은 배터리 교체와 휴면 카메라 수리 등 간단한 수리에 대해서만 결정권을 가지며, 액정 파손 같은 큰 수리는 애플 진단 센터에서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아이폰에서부터 소비자들을 당혹하게 했던 AS 정책을 애플워치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애플의 이 같은 AS 정책이 불공정한 것으로 보고 7월 30일 애플 공인 서비스 센터를 운영하는 수리 업체 6곳(유베이스, 동부대우전자서비스, 피치밸리, 비욘드테크, 투바, 종로맥시스템)에 일부 약관 조항의 시정권고를 내렸다. 민법제665조와 제673조에 따르면 수리가 끝나기 전에 소비자에게 돈부터 받고, 소비자가 중간에 계약을 해지할 수 없도록 강제한 애플의 약관 조항이 부적절하며, 소비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행 민법상 수급인이 일을 마치기 전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보수의 지급은 완성된 목적물의 인도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공정위가 지목한 수리 업체들은 권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약관 내용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 강제성은 없어 애플코리아와 수리 업체들이 약관 조항을 고칠지는 미지수다.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하도록 권고하는 것만으로는 과징금 부과 등의 중징계를 내릴 수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조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단 지목된 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시정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은 사업자는 불공정 약관 조항의 시정권고를 받은 사실을 공표해야만 한다. 민혜영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사실상 애플의 한국 지사 역할을 하는 애플코리아와 수리 업체들이 공정위의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제재 수단의 적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들이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공정위는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재제 수단인 약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래도 시정되지 않을 경우 공정위는 해당 업체를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애플코리아 측은 “현재로선 이와 관련해서 공식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애플워치의 수리(리퍼)비는 만만찮게 든다. 미국 소비자들은 애플워치 스포츠 38mm의 경우 229달러(약 26만원),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 애플워치 38mm의 경우 329달러(약 38만원)를 수리할 때 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애플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전략시장에서 애플워치 소비자들에게 일종의 보험 상품인 ‘애플 케어 플러스’를 제공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애플워치를 구매하면서 59~79달러(약 6만8000~9만2000원)의 가입비를 내고 애플 케어 플러스에 가입한 소비자는 기술적 지원을 2년간 받을 수 있고, 제품이 손상됐을 때도 2번의 AS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애플은 한국에서는 애플 케어 플러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비싼 돈을 들여 애플워치를 사더라도, AS 과정에서 별 대안 없이 수리(리퍼)를 위해 또 비싼 돈을 내야 할 가능성이 훨씬 큰 구조다.

애플워치 판매 부진에 주가도 곤두박질

논란이 커진데다 공정위의 시정권고까지 더해지자 애플 측은 8월 들어 부랴부랴 수리(리퍼)비를 내리면서 들끓은 여론 진화(鎭火)에 나섰다. 애플워치 스포츠 38mm는 29만9000원,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 애플워치 38mm는 41만7000원으로 종전보다 4만7000~6만원 인하한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막대한 비용이며, 선결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플 측은 배짱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공정위의 시정권고가 유효한 올 9월 말까지 애플 측이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애플은 올 2분기에 기대만 못했던 실적 등으로 최근 주가가 급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8월 3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애플 주가는 118.44달러를 기록했다. 올 7월 20일(132.07달러)보다 10% 넘게 주가가 하락한 것이다. 이로써 불과 2주 만에 애플의 시가총액은 100조원 넘게 증발했다. 애플이 지난 4월 미국과 일본 등 9개국에서 먼저 출시(한국은 6월 출시)했던 애플워치의 올 2분기 전 세계 판매량은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200만대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

1299호 (2015.08.2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