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Letter] 아버지 잘 만난 그들만의 리그 

 


음서(蔭敍) 문화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무인 통치 시대엔 귀족 자녀 여러명을 장수로 임명해 아버지와 전장에서 함께 싸우도록 해줬습니다. 장수의 아들들은 전쟁에 나가 전사한 아버지를 위한 복수와 나라의 승리를 함께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귀족 집안 자제들이 너도 나도 전쟁터에 나서겠다는데 이를 막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음서는 자연스레 등용 문화로 자리잡았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시대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장에 나가지도 않는 관리의 아들들이 아버지 천거만으로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이름을 외기도 어려울 만큼 자녀가 많던 시절, 너무 많은 고위직 자제가 관직을 독점하게 된 겁니다.

사실 ‘음서제’는 한 명의 고위관리 당 한 명의 자녀만 벼슬을 줄 수 있도록 한 규제였습니다. 공신의 인사 청탁을 거절하기 어렵고 다 들어주자니 뛰어난 인재를 들이지 못해 나라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요즘 ‘음서제’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자녀 두 사람이 로스쿨을 졸업한 뒤 아버지 청탁·강압에 힘입어 원하는 직장이나 공직에 들어갔답니다. 사실 그런 이야기는 공직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매출 10조원 이상 30대 기업의 단체협약을 분석했더니 조합원의 자녀, 퇴직자 등 직계가족 우선 채용 규정을 명시한 기업이 11곳이나 됐답니다. 금융권 등에선 고위 임원 자녀를 직원으로 받아주는 게 일종의 관례라고도 합니다.

나라와 회사에 그만큼 봉사했으면 내 자식 하나 취직시켜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는지 모릅니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극심한 경쟁을 피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좋은 직장에 들어가길 바라니까요. 아비가 힘있을 때 우리 아이 하나 좋은 직장 해주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에겐 지난 3월 청년(15~29세) 고용률이 1984년 이후 최저치인 38.7%로 떨어졌다는 통계는 보이지 않나 봅니다.

자기 자식을 밀어 넣은 그 자리는 실력을 갈고 닦아온 뛰어난 취업준비생의 자리입니다. 아버지 후광으로 취직한 자녀들도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아무리 철이 없더라도, 자신의 실력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면 그 자리는 고사해야 마땅합니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1300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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