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자본주의에서 공익의 역할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한국의 경제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사회 모든 구조가 자본의 힘으로 움직인다. 필자가 몸 담고 있는 공익 분야 역시 정서적으로는 자본에 독립적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자본주의 기반으로 돌아간다. 요즘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NGO간의 광고 경쟁이 대표적인 예다. 기부 받은 돈을 광고에 쓰는 것을 반대하는 논리와 광고를 통해 새로운 기부자를 모을 수 있다는 의견이 부딪히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공익의 역할’은 뭘까? 상당수 전문가는 자본주의가 부(富)의 쟁취라는 동기를 일으켜,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학을 전공한 필자의 시각에선 자본주의는 단순 수식 계산만으로도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다. 특히 꼬집어 얘기하면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이율에 따라 부자는 더욱 부자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국민이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동안은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된다. 하지만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는 순간, 역사는 혁명이란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배웠다.

지난 2003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감세안의 하나로 상속세 폐지 법안을 마련했다. 이때 국제 금융계의 ‘큰 손’인 조지 소로스를 비롯해 워런 버핏 등 세계적인 갑부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청원 운동을 벌여 화제가 됐다. 이들은 오히려 상속세율을 올리자고 주장했다. 이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사례로 인용되면서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미국인의 종교적 정서에서 나온 박애적인 행동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기반에서 부를 일궜다. 따라서 자본주의 모순을 정확히 알고 있고, 상속세 폐지로 인한 위험을 인지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이미 실패로 끝난 사회주의 체제가 답이 아니라면, 자본주의 속에서 폐해와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 역할을 국가가 주도한다면 복지의 영역이 되는 것이고, 민간에서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순환이 되면 바로 공익과 기부의 영역이 된다. 현재 자본주의는 이 두 가지 영역의 조화 속에 위태로운 체제를 유지해가고 있는 듯하다.

올 초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석학 한 분이 한국을 방문해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의 얘기 중에 미국과 유럽의 기부 형태를 비교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복지가 활성화 된 유럽 국가에선 공익과 기부 영역을 국가가 해야 할 일로 인지하기 때문에 국민의 기부 인식이 부족하다. 이와 달리 미국은 정부가 공익의 영역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민간에 이관하는 형태로 진행하면서 공익과 기부 영역이 잘 발달했다.

한국은 딱 중간에 해당한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갈림길에 서 있다. 어느 방향이 맞을까? 사실 정답은 없다.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국가나 민간이 주도하는 공익과 기부의 영역, 둘 다 엄청난 규모의 자본의 순환과 그에 대한 공감의 과정이 필요하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그게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데 쓰여지는 형태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완해나가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인다.

-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1302호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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