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트럼프의 막말과 한국 지식인의 괴담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점입가경이다. 2016년 11월 본선을 앞둔 예비선거 시작 초기에는 공화당의 젭 부시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라는 돌발변수로 요동치고 있다. TV쇼 ‘어프렌티스’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이 부동산 사업가는 지난 6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란 슬로건을 내걸며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2012년에도 출마했다가 중도 포기한 전력 탓에 이번에도 엉뚱한 유명인의 마케팅 정도로 폄하됐지만 TV토론과 유세를 거치면서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라 수퍼 태풍으로 영향력이 커졌다. 워싱턴 정치권도 나름대로의 셈법에 분주한 가운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민주당 성향 폴 크루그먼 교수가 공화당 후보 트럼프의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등 식자층 사이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트럼프 마케팅의 핵심은 거침없는 언사다. 미국 대학에서 1980년대부터 전개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으로 정치인들은 인종·성별·종교 등을 비롯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서 철저히 정치적으로 모범답안만 이야기하는 관행이 생겼다. 화려한 언어로 포장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견해이지만 외교적 수사처럼 별다른 내용이 없기도 하다. 이와 달리 트럼프는 민감한 사안인 멕시코 불법 이민, 불법 체류자, 인종 문제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특정인의 외모와 체형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막말로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의 막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에 주한미군이 2만8000명 있는 걸 아느냐. 한국은 잘사는 나라다.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4000대가 넘는 TV도 주문했다. 삼성·LG…. 다 한국 회사다. 그런데 이렇게 잘사는 나라를 우리가 지키고 있다. 돈 한 푼 안 받는다.” 그가 4년 전에도 주장했던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이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만 이익을 본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나라가 연간 1조원에 가까운 방위분담금을 부담하고 있다.

다만, 미국 대통령 선거의 선두권 후보가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한국과의 무역불균형을 주장한 부분은 흥미롭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 집계에 따르면 FTA 발효 전인 2011년 54억 달러였던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FTA가 발효된 2012년 77억 달러, 2014년에는 133억 달러로 계속 늘고 있다. 이와 달리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싸고 2011년 국내에 창궐했던 전기·가스료 폭등, 맹장수술비 900만원, 쌀농사 파산과 식량무기화, 인간 광우병 발생 등의 괴담은 결국 유언비어로 판명됐다. 당시 일부 대학교수 및 언론인 등 이른바 지식인 부류에서 주장했던 ‘미국의 경제식민지화’의 실체도 지금까지는 허상에 불과하다.

건국 이후 우리나라는 개방을 통해 발전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미지의 세계로 문을 열고 나가는 과정은 힘들고 두려웠지만 슬기롭게 이겨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FTA류의 괴담은 지금도 소재를 바꿔가며 젊은 세대를 현혹시키고 있다. 추석을 맞아 모인 가족의 덕담과 함께 젊은 세대가 과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재에 기반해 미래 지향적인 관점을 갖출 수 있도록 기성세대 각자의 경험과 삶을 반추해 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1304호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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