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한푼 안 들이고 수억원짜리 수입차를 탈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동차 구입 비용은 물론 취·등록세와 소비세, 자동차세와 보험료, 수리비, 심지어 기름값까지 모두 공짜라면? 모르는 사람만 모르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였다. 답은 뻔하고,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수많은 이들이 허술한 법과 제도를 이용해 그동안 혜택을 누려왔다.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가 승용차를 구입하거나 리스해 업무용으로 등록하면 그만이다. 그 이후엔 실제 업무에 이용하건, 사장 부인과 자녀가 몰고 다니건, 내연녀에게 선물로 주건, 상관없다. 5억9000만원짜리 롤스로이스(팬텀), 2억7000만원짜리 밴틀리(콘티넨탈 GT 6.0), 2억원짜리 벤츠(CL 63), 7000만원짜리 에쿠스(VS380) 할 것 없이 업무용으로 등록만 하면 나라에서 세금을 다 내 줬고, 누가 타든 감시는 없었다. 실제 업무에만 사용했다면 아무 문제 없고, 사적으로 사용했다면 탈세다. 물론, 사적으로 사용해도 적발할 방법은 없었다.
예를 들어 보자. A회사가 6500만원짜리 승용차를 업무용으로 구매했다고 치자. 차량 구입비용은 전액 경비로 처리된다. 5년을 탔다고 가정했을 때, 취득세(약 450만원)와 등록면허세(약 320만원)를 포함해, 유지비인 자동차세(약 190만원), 보험료(약 1000만원), 유류비(연간 1만5000km 기준, 약 700만원)등도 모두 경비 처리돼 소득공제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5년 간 1억원 넘는 비용이 경비 처리된다. 개인사업자는 약 4500만원, 법인사업자는 2500만원 정도의 세금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개인이 구매했다면 모두 세금으로 낼 돈이다. 당연히 비싼 차일 수록 절세(사실은 탈세) 비용은 비례적으로 늘어난다. 개인·법인 사업자가 개인 돈으로 차를 사거나 빌리면 공공연히 ‘바보’ 소리를 들었던 이유다.
차량 구입비부터 유지비까지 전액 경비 처리
▎경실련은 7월 8일 업무용 고가차량 판매실태 및 세제혜택 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사진: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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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부터 업무용 차량에 대해 이러한 과도한 혜택이 주어졌을까. 본지는 국회 입법조사처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획재정부 세제실 등에 문의를 해봤지만, 뾰족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법인세, 소득세법 연혁을 모두 훑어봐야 알겠지만, 업무와 관련된 경비를 손금 산입(세법상 비용으로 처리해 주는 것)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고 법률에 의해 지속돼온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나, 각 의원실에서도 답을 주지 못했다.이유가 있었다. 본지가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찾아 본 결과, 업무용 차량를 특정해 혜택을 주는 법적 근거는 없다. 다만, 개인사업자의 경우 소득세법 33조와 소득세법 시행령 55조 1항, 법인사업자는 법인세법 27조와 법인세법 시행령 19조와 49조에 의해 광범위하게 명시돼 있다. 법인세법 27조는 ‘업무와 관련 없는 비용의 손금(비용) 불산입’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에도 ‘업무 관련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불명확하다. 어디까지 업무 범위인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업무용 차량을 사적으로 이용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려운 이유다. 법인세법 27조는 1998년 12월 28일 법인세법 전부개정 때 신설됐다. 이와 관련,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업무용 차량 과세제도 개선을 위한 조세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어디까지를 업무로 봐야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과 이를 측정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업무용 차량을 신고 없이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벌칙규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이런 관행에 제동이 걸릴까. 8월 31일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업무용 차량에 과도한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을 제한하는 법인세·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업자가 업무용 자동차를 취득하거나 임차하는데 지출한 필요경비의 산입(셈하여 넣음) 한도를 1대당 3000만원, 유지·관리비용은 600만원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5000만원짜리건, 2억원짜리건, 3000만원까지만 경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초과하면 개인과 똑같이 세금을 내야 한다. 김종훈 의원은 “아무리 업무용이라고 해도 취득 비용과 유비지 전액을 경비 처리하는 것은 조세 형평을 크게 이탈하는 것으로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3000만원은 국내에 판매되는 차량의 중간값으로 잡은 것이고, 유지비 600만원은 자체 조사를 통해 월 50만원이면 업무용 차량 실비 처리로 적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9월 정기국회 통과할 것”유사한 법안은 이미 발의돼 있다. 8월 4일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업무용 차량의 경비 처리 한도를 1대당 5000만원으로 제한하고, 혜택을 받으려면 운행일지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앞서 함진규 새누리당 의원은 1대 당 4000만원까지만 경비 처리해주는 법안을 낸 바 있다. 2013년에는 민홍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자동차 배기량 2000cc 이하 차량에만 업무용 차량 혜택을 준다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이 법안들은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9년 전에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다.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인 이계안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7년 ‘업무용 승용차의 취득가액 또는 리스 가격이 3000만원을 초과하면 초과 금액은 필요 경비에서 배제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었다. 이 법안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지난 7월 이 문제를 제기한 박지호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간사는 “국회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5000만원이 넘는 국산차와 수입차 중 10만5720대가 업무용으로 판매됐고, 판매 비용은 7조4700억원이다. 이 금액은 모두 회사 경비(소득공제)로 처리됐다. 박 간사는 “업무용 차량의 경비 처리 한도를 3000만원으로 제한할 때, 과거 5년간의 판매 데이터를 기준으로 하면, 연간 9300억원, 5년 간 4조6000억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종훈 의원은 “국민적 관심이 크고, 과거와 달리 여야 의원이 모두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적절한 논의를 거친 후 이번 정기국회 때 통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비싼 차일수록 업무용 차량 비중 커19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한데 묶여(수정법안) 통과되면,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승용차(137만4928대) 중 약 33%(45만4091대)는 법인이 구매했다. 중요한 것은, 차량 가격이 비쌀수록 업무용 판매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지난해 5000만원 이하 승용차의 업무용 판매 비중은 22% 정도다. 하지만 5000만원 초과~1억원은 49%, 1억원~1억5000만원은 80%, 2억원이 넘는 차량의 업무용 차량 비중은 88%에 달한다.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수입차 업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수입차 전성시대’가 실상은 탈세를 방치한 세금 제도에 기댄 거품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2001년,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전국 경제인연합회와 회원사에 ‘수입차 내수 시장 점유율이 0.4%에 불과하다’며 ‘업무용, 내빈 영접용, 임직원용으로 수입차를 구매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적이 있다.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올 상반기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6.5%에 달한다. 그런데 수입자동차협회 자료를 분석해 보면, 10대 중 4대는 법인 판매였고, 가격이 비쌀수록 법인 판매 비중이 컸다.본지가 2010년 1월부터 올 7월까지 판매된 수입차 브랜드의 법인(개인사업자 포함) 판매 비중을 조사했다. 비싼 차는 법인, 중저가 차량은 개인 판매 비중이 확연히 컸다. 2010년 1월~2015년 7월 사이 람보르기니는 3대가 판매됐는데 100% 법인 판매다. 판매가가 4억~6억원인 롤스로이스는 184대 팔렸는데, 그중 92.9%(171대)가 업무용 차량이었다. 2억~3억원대인 밴틀리는 같은 기간 판매된 1053대 중 903대(85.8%)가 법인 판매였다. 밴틀리와 비슷한 가격대인 포르쉐는 1만595대가 판매됐는데, 이 중 개인에게 판매된 비중은 24.5%에 불과했다. 이밖에 재규어(68.9%)·랜드로버(64.7%)·벤츠(57.5%)·캐딜락(53.1%)·아우디(50.6%) 등 상대적으로 고가 수입차 브랜드의 법인 판매 비중이 컸다.반면, 중산층이 선호하는 수입차의 법인 판매 비중은 작았다. 2010년부터 올 7월까지 11만8986대가 판매된 폴크스바겐의 경우 법인 판매 비중은 21.6%(2만5760대)였다. 같은 기간 4만 1151대가 팔린 도요타는 20.1%가 법인 판매였다. 닛산(16.1%)과 혼다(20.5%), 푸조(28.1%), 피아트(28.6%), 미니(31.5%) 등도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전체 차량 대비 법인 판매 비중(33%)보다 작았다. 업무용 차량에 대한 과도한 혜택이 고가 수입차 판매를 부추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수입차 업계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 반박할 명분도 별로 없다. 수입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수입차 브랜드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입장을 밝힐 사안은 아니다”며 “법과 제도가 바뀌면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외국과의 통상 마찰을 우려하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차종 간 세율의 차이를 확대하기 위해 차량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이 통상 마찰 우려의 근거다. 하지만,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국산·수입차를 불문하고 경비 처리 금액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한다.-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박스기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업무용 차량 번호판은 ‘하늘색’으로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4억원짜리 ‘롤스로이스 고스트’는 모두 28대. 단 한 대도 빠짐없이, 업무용 차량으로 쓰겠다며 개인·법인사업자가 구매했다. 차량 구입 비용부터 유지비까지 회사 경비로 처리돼 소득 공제를 받는다. 물론, 이 차량들이 실제 업무에 쓰이는지, 개인이 타고 다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만약, 업무용으로 등록된 차량의 번호판을 일반 차량과 달리 ‘하늘색’ 또는 ‘남색’ 등으로 구별하면 어떨까?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일반 차량은 ‘분홍빛 흰색 바탕에 보라빛 검정색 문자’, 택시같은 운수사업용은 ‘황색 바탕에 검정색 문자’, 외교용은 ‘감청색 바탕에 흰색 문자’ 등으로 구분한다. 외국에서도 차량 용도에 따라 번호판 색상을 달리 하는 곳이 많다.업무용 차량 번호판 색상을 일반 차량과 달리 하면, 업무와 상관없이 사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의 심리적 억제 효과가 있다. 수억원짜리 ‘수퍼카’를 법인용으로 사서, 개인 차량인양 끌고 다니는 행태를 줄일 수도 있다.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면, 업무에 쓰여야 하는 차량으로 자녀 등원을 시키거나, 백화점 쇼핑을 하거나, 고급 룸살롱에 주차하기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국세청 입장에서도 이런 차량을 적발하거나, 제보를 받기도 용이하다. 개인사업자나 법인이 제출하는 운행일지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도 쉽다.이런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 관계자는 “예전에 비슷한 건의가 있었지만, 번호판 색상을 달리 한다고 해서 업무 연관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기대되는 효과에 비해 사회적 비용이 큰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색상이 다른 법인번호판을 개인으로 바꿀 때 비용이 들고, 경찰 단속 카메라가 다른 색상 번호판을 인식하기 위해 추가 프로그램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행정 비용이 수조원에 달하는 탈세 비용과 사회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비용보다 큰지 확인 된 바는 없다. 경실련이나 국회 관계자들 역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론화 된다면, 경찰을 비롯한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신중히 검토해 볼 수는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