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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성장하는 키덜트 시장] 어른의 장난감 세계 ‘장난 아니네~’ 

불황 속 매년 20~30% 급성장 … 키덜트족 잡기에 나선 유통업계 


▎사진:오상민 기자
“아빠, 이거 갖고 싶어?”

“응. 아빠 루피(피규어 이름) 엄청 사고 싶은데 지금 참고 있어.” 송윤호(34)씨가 유리 진열대에 전시된 피규어 앞에서 떠날 줄 모르자 딸 다영(5)양이 애처로운 듯 바라봤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팬인 송씨는 대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만화책 77권 전부는 물론 만화 속 캐릭터 피규어 50여종을 갖고 있다. 한정판 피규어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송씨는 서울키덜트페어 개막 첫날인 7월 22일 전시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를 찾았다. 이곳에 오려고 휴가 날짜를 맞췄다는 송씨는 키덜트족의 전형이다. 그는 “아내가 한번만 더 사면 용돈을 끊겠다고 했다”면서도 “어차피 한정판을 구하려면 웃돈을 줘야 하는데 지금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게 돈 버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결국 15만원짜리 피규어를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200만~300만원대 RC헬리콥터 ‘없어서 못 팔아’


▎키덜트 페어 관람객이 나만의 피규어를 만들고 있다. / 사진:허정연 기자
‘장난이 아닌’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른이 늘면서 이제 키덜트가 문화를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서울키덜트페어 측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연간 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에는 못 미치지만 국내에서도 매년 20~30%씩 성장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1980~90년대에 만화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며 자란 세대가 이제 30~40대에 접어들며 막강한 구매력을 자랑한다. 실제로 키덜트족의 인기 품목인 프라모델이나 무선조종(RC) 자동차·헬리콥터와 드론(무인비행기) 등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가 제품이 즐비하다. 무선조종 장난감 매장 관계자는 “지난해 200만~300만원대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일주일간 4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끈 서울키덜트페어는 올해 2회째를 맞았다. 첫날 방문객은 20~30대 남성이 주를 이뤘지만 40~50대 중·장년층의 발길도 이어졌다. 10년 전 일본 파견근무 시절 처음 키덜트 문화를 접했다는 강용훈(51)씨는 아내와 현장을 찾았다. “건담 프라모델과 같은 제품은 우리 세대에도 친숙한 추억의 장난감이거든요. 일본에 있을 때 몇 개씩 모은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도 취미로 즐기고 있어요.” 강씨는 “가끔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풍족하지 못한 시절에 태어난 우리 세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를 즐기는 나성준(36)씨는 전시장에서만 한정판 피규어 구매 예약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씨는 “미리 구매 예약한 사람만 추가로 한정 아이템을 준다고 해 마음이 급하다”며 “주말에 가면 5000세트가 다 팔릴 것 같아 서둘러왔다”고 말했다.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판매 부스 앞은 이미 수백명의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건설사에서 근무하는 나씨는 평소에도 업무가 끝나면 일과 대부분을 게임을 하는 데 보낸다. 아직 미혼인 그는 “다른 건 몰라도 게임 관련 아이템을 사는 데는 아끼지 않는 편”이라며 “동료들이 술 마시고 여행하는 데 돈 쓰듯 건전한 취미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려는 소비계층 역시 증가해 자연스레 키덜트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은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면 취미 시장이 성장하고 특히 수집 분야가 급성장한다”면서 “키덜트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이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각박한 일상을 벗어나 어린 시절 추억에서 정서적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며 “희소성 있는 물건에서 즐거움을 찾는 동시에 불황 속 작은 사치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소비 방식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작은 사치에서 얻는 대리만족


▎(왼쪽) 이마트 킨텍스점 가전전문매장 일렉트로마트는 유통에 키덜트 문화를 접목했다. 사진:이마트 제공 / (오른쪽)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의 키덜트 전문매장 ‘토이앤하비’ 테마관. / 사진:현대아이파크몰 제공
30~40대가 키덜트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가운데, 키덜트족 잡기에 유통 업계가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2012년 문을 연 서울 용산 아이파크백화점의 키덜트 전문매장 ‘토이앤하비’ 테마관이 대표적이다. 최근 불경기 속에서도 이 테마관만은 매년 2배 가까운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백화점 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800평 규모의 공간에 RC카와 프라모델·피규어·로봇 등 총 15개 브랜드를 갖춰 키덜트족 사이에서는 ‘성지’로 통한다.


이 매장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상위 7개 제품 가운데 5개 제품의 주고객층이 20~40대 남성인 것으로 파악된다. 아이파크백화점 한희권 리빙문화팀장은 최근의 키덜트 문화에 대해 “과거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별난 사람들의 취미쯤으로 여겨졌다면 최근에는 가족이 함께 즐기는 취미생활로 인식되면서 고객층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며 “전통적인 마니아층 외에 캠핑 열풍과 프레디족(친구 같은 아빠)이 늘면서 키덜트의 외연이 확장된 것이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일산 이마트 킨텍스점에 문을 연 가전전문매장 ‘일렉트로마트’는 유통과 키덜트 문화를 접목한 대표적인 사례다. 800평 규모로 입점한 매장은 기존 가전제품뿐 아니라 드론·액션캠·피규어 등 남성들의 관심을 끌 만한 상품군을 강화했다. 드론의 경우 체험존까지 별도로 구성해 20여 종의 드론들을 직접 시연해 볼 수 있도록 했고, 액션캠 매장 역시 국내 최대 수준이라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매장 곳곳에 수퍼맨·아이언맨처럼 만화 속 영웅을 형상화한 일렉트로맨 캐릭터을 배치해 키덜트족의 구매욕을 더욱 자극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기존 가전매장에서는 찾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를 1000개 이상 전시했다”며 “건담 전문매장, 맥주 거품기 등 다양한 제품을 확보해 말 그대로 남성들의 가전 놀이터로 꾸밀 계획”이라고 밝혔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 키덜트(Kidult) :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어린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뜻한다. 유년 시절 즐기던 장난감이나 만화 등에 향수를 느끼는 성인이 늘면서 문화를 넘어 산업으로 성장했다.

[박스기사] 더욱 뜨거워지는 키덜트 열풍 - 식음료에서 유통 업계로 확산


▎사진:중앙포토
지난 7월 23일 오후 2시 40분. 서울 논현동 강남구청 인근 맥도날드 매장 내부가 10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찼다. 맥도날드가 이날 오후 3시부터 판매하기로 한 ‘미니언 해피밀 스페셜 세트’를 기다리는 인파였다. 어린이용 햄버거 세트 메뉴인 해피밀 세트를 구입하면 장난감을 주는 행사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어린이가 아닌 20~30 직장인 부대였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우성용(가명·31)씨는 “매장당 100개 한정 수량이라 잠시 짬을 내서 나왔다”며 “앞에 40명 정도 서있어 원하는 피규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일반 세트 메뉴의 가격은 3500원인데 반해 맥도날드는 세트 메뉴 5개와 장난감 5종을 묶어 판매해 세트당 17500원을 책정했다.

주문을 받은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100개 한정 수량은 모두 동이 났다. 100명 안에 들지 못한 고객들은 “중간에 새치기하는 사람 때문에 못 받았다” “예비 번호라도 달라”며 언성을 높였다. 다른 매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전국 매장의 장난감이 ‘완판’됐고, 벌써부터 2차 출시를 문의하는 손님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맥도날드가 지난해 출시한 슈퍼 마리오 해피밀 시리즈 역시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뉴시스
키덜트의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이 식·음료는 물론 유통 업계까지 장악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 캐릭터 상품을 내세운다. 롯데백화점 서울 본점 영플라자 1층 쇼윈도 명당자리를 라인이 차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소비 침체로 의류나 잡화 매출은 떨어지는데 반해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 제품은 오히려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며 “귀여운 캐릭터를 살린 제품이 유통 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이 서울 석촌호수에 거대한 고무 오리인형 ‘러버덕’을 띄워 일 평균 10만명의 방문객을 기록한 것도 이런 트렌드와 맥을 같이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취미를 청소년기로 넘어가며 강제로 빼앗긴 경험이 있는 어른들이 그때 누리지 못한 감정을 해소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취업난 등 경기 침체 분위기 역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카카오는 어린이보다 어른을 겨냥한 모바일 캐릭터로 각종 사업을 공략한다. 삼립식품이 지난해 7월 출시한 ‘샤니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빵’은 포장에 카카오톡 캐릭터인 카카오프렌즈를 이용하고, 빵 봉지 안에 캐릭터 스티커를 첨부했다. 캐릭터가 들어간 제품은 출시 이후 6개월 동안 전체 누적 판매액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다음카카오는 캐릭터를 이용해 던킨도너츠·버거킹·배스킨라빈스 31 등 글로벌 식품 업계와 제휴를 맺었다. 특히 던킨도너츠는 캐릭터를 사용한 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배 가량의 매출상승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치약(페리오), 화장품(VDL), 통장(우리은행), 체크카드(하나카드), 골프 공 등 업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제휴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30대 이상에서도 인기가 좋아 최근에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 차량용 방향제 등을 추가하기도 했다.

전국 주요 도시 백화점에서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자체 오프라인 매장 역시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현대백화점 서울 신촌점의 팝업 스토어는 개점 5일 만에 2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이후 평균 월 매출 5억원을 기록했다. 비슷한 크기(60m²)의 다른 매장이 월 평균 매출 1억원을 넘기 어려운 것에 비하면 소위 ‘대박’을 친 셈이다. 연이어 문을 연 롯데백화점 부산점과 현대백화점 대구점 매장도 3주 만에 각각 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에 다음카카오는 아예 캐릭터 사업을 독립법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관련 사업을 확대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최근 키덜트 열풍으로 캐릭터 향유층이 특정 연령층에 머무르지 않아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302호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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