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비루한 자와 더불어 임금을 섬길 수야 

권력만 노리는 사대부 비판 ... 서로를 간신으로 몰기도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춘추시대의 첫 패자 제환공(齊桓公)에게는 세 명의 간신이 있었다. 요리사 역아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 그 고기를 환공에게 올렸고, 환관 수조는 임금의 신임을 얻고자 스스로 거세했다. 개방은 부모를 저버린 채 환공의 환심을 사는 일에만 매달렸다. 관중은 이 셋을 멀리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환공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역아는 아들을 죽여서까지 임금의 총애를 구한 자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는 법인데, 자식까지 죽일 정도라면 장차 임금께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수조는 스스로를 거세하면서까지 임금의 사랑을 얻으려 한 자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몸을 아끼는 법인데, 자기 몸을 불구로까지 만들 정도라면 장차 임금께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개방도 그렇습니다. 그는 부친이 죽어도 상을 치르러 가지 않았으니, 장차 임금께는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이 세 사람은 권세를 차지하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자 사람으로서는 해선 안 될 만행을 저질렀으니, 앞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임금에게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환공은 관중의 조언을 무시했고, 결국 그는 이 세 사람에 의해 유폐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자리를 탐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여, 그것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자. 이런 사람을 간신이라 부른다. 그들에게는 백성이나 국가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직 자신이 가질 있는 부귀와 권력, 이익만 중요할 뿐이다. ‘환득환실(患得患失)’이라는 고사성어는 바로 이러한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논어] ‘양화(陽貨)’편의 ‘비루한 사람과 더불어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얻기 전에는 얻으려 근심하고, 이미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잃을까 걱정하니, 만일 잃을 것을 근심하게 되면 이르지 않는 바가 없게 된다(鄙夫 可與事君也與哉 其未得之也 患得之旣得之 患失之 苟患失之 無所不至矣)’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비루한 소인들은 자리를 탐하고 이익을 추구하여 권세를 얻고자 아등바등하며, 얻은 후에는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못하는 짓이 없다는 것이다.

간신에게 죽임 당한 제환공

이 ‘환득환실’이란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출현한다. 선조 38년 홍문관은 상소를 올려 사대부의 타락을 비판했다. ‘요즘 유생들은 구두법을 알면 바로 과문(科文, 과거 시험용 문체)을 공부하고, 15세가 넘으면 벌써 명리(名利)를 도모하여, 경박하고 사치스러운 것이 풍습을 이루었고 박정하고 불성실함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벼슬에 나가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무너졌으니 벼슬 한 뒤의 모습은 가히 상상할 만합니다. 나쁜 습속에 물들어 벼슬이 높아질수록 절조 있는 행동은 찾을 길이 없어지고, 바른 생각은 펼쳐지지 못한 채 염치가 땅에 떨어져 탐욕스런 풍조가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져 참람하기 그지없습니다. 벼슬을 얻기 전에는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근심하고 얻은 후에는 어떻게 하면 잃을까만 걱정하며, 국가에 충성을 다할 것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선조38.7.27).

광해군이 즉위한 직후 영중추부사 이덕형도 당시 사대부간의 극심한 권력투쟁을 우려했다. ‘근래 환득환실한 선비들은 좋은 벼슬만을 탐하고, 불학무식한 자들은 시론(時論)에 따르는 것만을 옳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체면과 염치, 시비를 가리지 않고 오로지 권세가 있는 곳을 향해 앞다투어 나가면서 밀치고 박차고 싸우는 것을 공으로 삼으니, 이로 인해 조정이 더럽혀지고 있습니다’(광해즉위년.4.1). 그는 나라의 장래를 도외시 한 채 오로지 권세를 좇고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조정을 가득 채우고 있다며, 왕이 이들의 농간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진언한다. 두 상소 모두 사사로운 이익 추구에만 여념이 없는 세태를 경고하며 ‘환득환실’을 인용했다.


이 밖에도 ‘환득환실’은 탄핵이나 정적을 공격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자리를 탐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는 평가를 덧씌우는 것만큼 매서운 칼날도 없을 테니 말이다. 가령 성종 때 대사간 성현은 “벼슬자리에 오른 지 30여년이 되었고, 현재의 나이가 이미 60이 넘었는데도 여진여퇴(旅進旅退, 주관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만 함)하고 환득환실하며, 한가지도 나라에 보탬이 없으니, 시위소찬(尸位素餐, 하는 일 없이 녹봉만 받아먹음)함 또한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진실로 소인이며 취렴하는 신하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시대라면 용납할 수 없는 자입니다”라며 양성지를 공격했다(성종10.4.29). 중종 16년에는 조광조를 지지했던 대신들이 ‘환득환실한 자들’이라는 죄목으로 제거되었다(중종16.10.18 外). 영조 초기 노론과 소론이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던 시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환득환실한 마음을 가졌다’고 비난했다(영조3.10.6 外).

임금이 신하들을 처벌하며 ‘환득환실’을 명분으로 내걸기도 했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등극을 반대했던 세력을 제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왕(영조)께서는 신성한 자질을 타고 나시어 80의 노령을 누리셨다. 그런데 저 불령한 무리들이 감히 선왕의 귀를 흐리고자, 처음에는 환득환실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동궁(사도세자)을 원수처럼 여기기에 이르러, 세자의 자리를 핍박하여 위태롭게 하였다”(정조즉위년.7.3/1.3.29).

하지만 공자가 말한 본래의 취지는 결코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선 ‘환득환실’은 임금이 인재를 구별하는 소중한 기준이다. 성호 이익의 말이다. “충신은 관직에 나아가길 어려워한다. 그 직임이 무겁고 커서 혹시라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소인은 쉽게 나선다. 거리낌 없이 자리를 탐하거나 아니면 경박하여 일을 함부로 알기 때문이다. 요즘 임금이 취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환득환실한 것은 귀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드는 자들에게만 벼슬을 주어서다.” 그는 자리를 얻고자 매달리는 사람, 자리를 잃지 않고자 필사적인 사람을 중용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대신에 관직에 나서길 두려워하고 큰 임무 앞에서 조심스러운 사람을 발탁하라는 것이다.

실록에 다양하게 쓰인 ‘환득환실’

아울러 ‘환득환실’은 관직에 나선 사람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성찰의 질문이기도 하다. 흔히 무언가를 바라면 집착하게 되고, 집착하다 보면 변질되게 된다. 내가 관직이 주는 순수한 소명에 충실하며 백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 자리가 가져다 주는 힘과 이익을 누리고 싶은 것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해야 한다. ‘환득환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고갤 들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할 때, 비로소 그는 맡겨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02호 (2015.09.1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