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의 해외 현지 지사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현지에 내놓는 한편,
현지에서 다시 해외로 진출하는 발판이 된다. 글로벌(Global)과 지역(Local)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글로컬(Global+ Local)형 회사’다. 한국에도 이런 기업이 많다. 국경이 없는 비즈니스 시대에 적합한
형태다. 글로컬 컴퍼니를 이끄는 CEO로부터 한국 시장에서의 역할과 위치, 세계 시장의 현황과 전망을 듣는다.
▎한국이콜랩 류양권 대표. / 사진:이원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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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들면 농업 못지 않게 산업계도 긴장한다. 공업용수 때문이다. 전체 수자원의 6.3%정도 밖에 쓰지 않는데 별 걱정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한 수량은 적지 않다. 현재 공장 등에서 사용되는 공업용수는 매일 1030만㎥ 생산(2014년 기준)돼 이중 58.7%만 실제로 쓰인다. 공업용수가 부족해지면 공장을 가동하기 어렵다. 물을 쓰지 않는 공장은 없다. 물은 모든 원재료의 처리 과정에 늘 쓰인다. 기계의 온도를 식히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 화학작용에서 기초가 된다. 원수를 공급받아 생산에 쓰는 것 못지 않게 사용된 물을 재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의 품질이 생산품의 품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을 깨끗하게 공급하고 폐수가 적게 나오도록 깨끗하게 재처리하려면 고급 화학약품을 사용하고 설비를 자동화해야 한다.이 분야 세계 1위 기업은 ‘이콜랩(ECOLAB)’이다.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물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토털 워터 매니지먼트’ 기업이다. 한국에서는 150여명의 이콜랩 관계자가 물이 사용되는 현장에 나가 실제 약품을 투입하고 성과를 점검하고 있다. 이콜랩은 물·식품·에너지·위생 등 다양한 분야를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로 가지고 있다. 식품 분야에서는 호텔·병원·레스토랑·우유공장, 식품가공 기업 등에 세척과 살균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생 분야에서는 병원이나 양로원 등에 멸균·살균·세척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체 매출의 27%를 차지하는 에너지 사업 분야에서는 원유를 시추하거나 정제하는 공정에서 부식을 방지하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서비스를 한다. 이콜랩(ECOLAB)이라는 이름은 환경을 의미하는 ‘Eco’가 아니라 경제적이란 의미의 ‘Economics Laboratory’를 줄인 말이다. 하지만 환경을 강조하는 비즈니스 행보를 보이면서 중의적인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콜랩은 ‘세상을 깨끗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친환경 제품 개발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비스가 더 중요한 제조업
▎미국 미네소타주 이콜랩 본사. / 사진:이콜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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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콜랩의 폐수 처리 기술은 실제 기업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완공된 울산석유화학 단지 내 동서석유화학의 폐수처리 시설이 좋은 예다. 통상 석유화학 공장이 배출한 폐수는 50%도 회수하기 어렵다. 회수되지 않은 폐수는 울산종합처리장에 방류된다. 동서석유화학은 새 공장을 지으면서 신기술을 도입해 폐수회수율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 올려 보기로 했다. 이콜랩을 비롯 4개 업체가 연구·개발에 참여했다. 파일럿 시설을 만들어 실험하고 테스트를 거듭하는 중에 3개 업체는 개발을 포기했다. 이콜랩코리아는 미국 본사 연구개발팀과 한양대 연구팀과 협력해 개발을 지속했다. 최종 만들어진 폐수처리 시설의 회수율은 70%에 달했다. 이는 보통 한 사람이 연간 100t의 물을 쓴다고 보면 5000명이 쓰는 물을 절약한 양이다. 설비 비용은 기존보다 10%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절수할 수 있는 수량의 비용(울산석유화학단지 내 물값 t당 500원 내외)을 감안하면 비용 대비 수익성은 충분했다. 핵심 기술은 MBR(멤브레인바이오리액터)이다. 막을 이용해 물과 물 이외의 성분을 분리하는 기술로 폐수처리 절차를 크게 단순화시켰다. 투자비는 줄일 수 있지만 운전이 까다로운 지식형 신기술이다. 이콜랩은 이 기술을 동서석유화학과 공동 소유하고 있다.
빌 게이츠 재단의 투자로 더욱 유명해져이콜랩은 수질정화, 세척 및 소독에 관련된 화학약품을 공급한다. 약품으로 수질을 정화하는 제조 업체다. 하지만 전문 지식과 기술력을 제공하는 서비스에 더 집중하고 있어 사실상 서비스 업체에 가깝다. 업무의 90% 이상이 기술연구와 서비스 제공이다. 주된 업무는 정기적으로 샘플을 채취해서 검사하고 수질을 모니터링하며 공정에 문제가 없는지 진단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 수처리 관련 협력사는 500여 곳, 식품 관련 협력사는 6000여 곳, 제지 관련 협력사는 20~30여 곳이 있으며, 에너지 관련 협력사는 200여 곳에 달한다. 포스코를 비롯한 각종 철강 공장은 물론, 자동차 회사의 수처리도 이콜랩이 담당하고 있다.이콜랩 설립자 오스본(M.J. Osborn)은 1920년대 호텔 시트커버를 살균·세탁하다 관련 화학 제품을 개발하면서 오늘날의 이콜랩을 만들었다. 2011년 합병한 날코는 1928년 시카고에서 설립되었으며, 날코코리아에서 23년간 근무한 류양권(51) 대표가 현재 한국이콜랩과 날코코리아의 대표를 맡고 있다. 두 회사는 모두 비즈니스 모델이 유사해 합병 후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 이콜랩은 지난해 9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임직원 수는 280명이다.류 대표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날코에서 10년 정도 근무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지구상에 유한한 자원인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죠. 이콜랩은 그런 부분에서 일을 하기에 충분히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회사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고객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이콜랩으로 옮겨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런 일이 더욱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이콜랩은 물을 절약하고 위생 수준을 높이기 위해 관련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환경과 생명 보호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이 들어오고 싶어한다.이콜랩은 화학약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회사지만 연구 방향은 조금 색다르다. ‘어떻게 하면 약품을 가장 적게 써도 될 것인가’ 혹은 ‘에너지를 얼마나 더 절약할 수 있는가’ 연구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그래서 연구원들도 자신이 환경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콜랩은 해외에서 훨씬 더 유명한데, 특히 미국에서는 ‘친환경 기업’ 그리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외국 현지에서 유학파 등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오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류 대표는 “영어 수준이 높고 기술력이 있는 엔지니어가 많고, 일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재가 많은 것이 이콜랩의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이콜랩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게 된 계기가 있다. 빌 게이츠 재단의 캐스케이드 인베스트먼트가 이콜랩의 대주주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빌 게이츠 재단이 투자했다는 뉴스에 이콜랩의 주가가 급등했다. 빌 게이츠가 이콜랩에 투자한 건 수익성 때문만은 아니다. 지구를 위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다.-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