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Section

[화제의 책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 선진국의 원조가 후진국 망쳐 

세계 빈곤에서의 대탈출 제안 … 토마 피케티와 더불어 불평등 연구의 대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학 교수. / 사진:중앙포토
summary | 불평등 문제가 경제학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교수는 토마 피케티와 함께 세계의 ‘불평등’ 문제 해소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저서를 통해 선진국이 후진국에 섣불리 원조를 하지 말아야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여력을 확보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평등 문제가 경제학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저서 [21세기 자본]이 한국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촉발된 현상이다. 이번엔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프린스턴대 교수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불평등’ 이슈가 또 한 번 경제학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극소수 부자가 중산층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부를 벌어들이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달라지기 어려운 게 자본주의 핵심적인 모순이란 것이 피케티의 분석이다. 그래서 그는 적극적인 ‘자본세’를 물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턴 교수는 이런 불평등을 전 지구적 시각에서 접근한다. 지구 한 쪽 부유한 국가에선 식량과 의약품이 넘쳐나는데,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간단한 의약품을 구할 수 없어 죽어가는 모순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이 각국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어왔기 때문에 결국 미래 세계 빈곤은 줄어들게 될 거란 낙관론을 제시한다.

두 학자간 서로 다른 해법을 두고, 한국에선 ‘피케티:디턴=진보:보수’라는 등식을 세우며 서로 학술적·정치적 대립관계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불평등에 관한 이들의 연구를 뜯어보면 두 학자는 대립관계는커녕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에 가깝다.

피케티와는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에 가까워


디턴은 그의 저서에서 ‘(GDP 등) 잘못된 계산으로 소득의 불평등, 나아가 일·정치·노동시장의 불평등 문제가 사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피케티 교수의 논문(에마뉘엘 사에스 공저)을 중요하게 인용한다. 디턴은 피케티가 쿠즈네츠(소득세 기록 자료를 연구한 노벨상 수상자)의 방법론을 크게 확장시켜 분배의 맨 위에 있는 소득 불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고 소개한다. 디턴은 이런 피케티 이론을 모아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뤘는데도 빈곤 문제 해결에 진전이 거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GDP로 보면 성장하는데 국내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디턴의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되는 이론이다.

디턴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함에 따라 최근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 2013)]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05년 이후 저서를 내지 않았던 디턴이 8년 만에 낸 책으로 1980년대부터 연구해온 이론을 실증적으로 종합하는 논문 해설서라 볼 수 있다. 원서의 부제는 ‘건강과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으로 학술적인 색채가 강하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서는 부제를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로 달아 논쟁적 성격을 강화했다. 실제 내용은 그리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하진 않다.

[위대한 탈출]은 세계 각국 250년간의 성장과 불평등의 관계를 분석한 책이다. 디턴은 ‘적게 가질수록 행복해요’ ‘행복은 소득 순이 아니잖아요’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요’ 등 수많은 관념적 주장을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주관적인 ‘행복’의 허구를 지적하며, 생명(기대수명)과 소득(부)이라는 물질적 근거를 보편적 행복의 두 기초 요건으로 삼는다. 그리고 부가 건강의 요건이 된다는 점을 들어, 가난한 나라가 부유해져서 실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현실을 근거로 짚고 있다. 전쟁 등 정치적인 이유를 제외한 기아, 전염병 등에 따른 기대수명 단축은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단순한 주장 같지만 이를 방대한 데이터와 탄탄한 논리로 실증한 것엔 의미가 있다. 흔히 여러 경제 데이터를 들어 빈곤을 측정한다. 그에 따라 각종 경제정책을 세우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론 ‘행복’을 위한다는 많은 경제정책이 잘못된 데이터를 근거로 삼고 있다. 불평등 등의 실상은 가려지고 그에 따라 정책도 부적절하게 시행돼왔다. 디턴은 기존에 분절된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재정정책을 하나로 이어 소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이에 따라 빈곤국에 보다 적절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업적은 노벨경제학상의 수상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 성장은 불평등을 낳게 되는데, 현 시기는 ‘너무나 불평등하다’는 게 디턴의 기본 인식이다. 여전히 수백만명이 빈곤과 영아사망 등 끔찍한 고통에 놓여있고 세계화로 성장을 거듭했지만 이는 또 다른 불평등을 연쇄적으로 낳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각국 성장은 전 세계 빈곤층을 줄이는 역할도 한다. 디턴은 이를 들어 “성장과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비유한다. 불평등은 가난한 나라가 더 부유한 국가를 따라잡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하는데,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성장하면 절대적인 평등이 확대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단 얘기다. 디턴은 특히 중국과 인도의 급성장으로 수억명이 대탈출(빈곤에서의 탈출)을 할 수 있었고, 이런 각국의 성장이 전 세계 빈곤층을 줄이는 데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럼 이런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디턴은 어떤 해법을 내놨을까? 그는 “원조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 가난한 나라들이 우리가 이미 한 일(성장 및 소득 확대)을 하는데 방해하지 않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기를 그만두라”고 주장한다.

“빈곤에서 스스로 탈출하게 해야”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자본세 과세를 제시해 화제를 모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 / 사진:중앙포토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나 가난에서 탈출하도록 놓아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부유한 나라는 가난에서 탈출한 방법을 보여줬으니 그 소임을 다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가난에서 구제하겠다며 내미는 원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원조를 주며 이권을 챙기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일갈한다. 현실적으로 원조를 중단할 수 없다면 ‘더 좋게 원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혜국 정부가 자국 국민에게 이로운 좋은 정책을 약속한 뒤 원조를 얻거나, 예방접종률이나 영아 사망률 등에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할 때만 원조금을 지불하는 방식 등이다. 디턴의 주장은 냉정하게 비칠 수 있다. 돕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란 말이다. 하지만 그 주장 속에 맥락이 숨어있다. 부유한 나라는 늘 가난한 나라에 손을 내밀지만, 정작 가난한 나라가 성장할 여력은 키워주지 않았다. 대신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를 활용해 더 부유해지기만 했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1307호 (2015.10.2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