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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펴낸 최정표 건국대 교수] 경제민주화가 경기 회복 지름길 

불공정거래 단속하고 임금 올려야 …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 절실 


▎사진:홍승모 객원기자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인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새 책을 냈다. 이번 주제는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 여야 구분 없이 경쟁적으로 이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정책기조가 경제활성화로 선회하면서 경제민주화는 슬쩍 사라졌다. 최 교수는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와 왜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지, 방법은 무엇인지를 미국·일본의 사례를 들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최 교수는 “지금처럼 재벌에 의존하는 정책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며 “경제에 활력을 넣고 다시 역동성 있는 국가로 만드는 길은 경제민주화뿐”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너무 답답했다. 경제민주화가 정치 이슈로는 철이 지난 얘기일 수 있지만,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한 정책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계속 재벌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더 이상 우리 경제에 낙수효과는 없는데도 재벌을 위한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대선 때 나온 얘기가 이렇게 빨리 폐기될 줄 몰랐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무엇인가.

“양극화 해소다. 재벌의 돈이 노동자와 중소기업으로 흘러야 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는 게 아니다. 공정하게 거래하는 게 중요하다. 규제를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불공정 내부거래·하도급거래를 철저히 잡아야 한다. 중소기업 매출의 80%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매출이다. 재벌이 중소기업에게 제값을 쳐주면 이들에게 돈이 돌면서 투자가 늘 것이다. 이들이 고용을 늘리고 임금도 올릴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화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재벌이 직접 돈을 푸는 접근이다. 근로자는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한계소비 성향이 높다. 이들의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경제에 활기가 돌 것이다.”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 저자 최정표 지음 / 출판사 초록물고기 / 값 1만5500원
정부가 내세운 소득 주도 성장론과 비슷한 맥락인데.

“원리는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방법이 다르다. 정부는 기업의 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썼다. 하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 대기업의 돈을 풀려면 더 혁신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이번 책에서도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는데.

“민주화는 독재를 막자는 개념이다. 지금의 경제는 재벌에 의한 독재에 가깝다. 경제민주화는 돈의 집중을 해소해야 하는 작업이다. 당연히 재벌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재벌은 이제 효용성이 떨어졌다. 대기업의 창업자들은 훌륭한 전문경영인이었지만, 지금의 재벌은 창의적이지도 않고 진취적이지도 않다. 더 이상 재벌에게 의존할 이유가 없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전문경영인 체제는 재벌개혁을 위한 수단이다.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자는 거다. 한국의 전문경영인은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세습경영인의 황제식 전횡에 하수인 노릇이나 하면서 능력을 썩힌다. 황제의 눈치를 보다 보니 단기 실적에만 집착한다. 그러니 기업이 멀쩡할 리 없다. 전문경영인의 독립 경영 체제로 바뀌어야 투명 경영과 책임경영을 확립할 수 있다.”

미국 등지에서는 전문경영인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도 나오는데.

“물론 오너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중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의 오너 경영이 우리 경제의 진화 과정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칙대로라면 자연스럽게 사멸해야 할 것을 무리해서 붙잡고 유지하려다 보니 편법을 쓰고 각종 문제를 낳고 있다.”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 추진력 등 오너 경영의 장점도 있지 않나.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번 돈이 어디로 가는가. 오너의 주머니로 갈 뿐이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

제도를 바꾸려면 결국 정치의 힘이 필요한데.

“경제민주화가 추진되지 못한 이유는 정치권이 선거용 립서비스로만 썼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인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도, 능력도 없다. 의지와 철학, 지지층과 비전을 갖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의지만 있으면 빠르게 바뀔 수 있다. 공정거래법이나 기업지배구조 관련 규정을 살짝 손 보면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다음 책을 구상 중인데, 여기서 기술적으로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할 계획이다.”

- 함승민 기자 ham.seungmin@joins.com

화제의 책 | 『나를 깨우는 서늘한 말』


▎나를 깨우는 서늘한 말 / 저자 노재현 / 출판사 중앙북스 / 값 1만3000원
당신을 깨우는 서릿발 같은 말말말

이 책에 실린 명언들은 조금 색다르다. 너무 당연해서 왜 명언인지 이해하기 어렵거나, 진부할 정도로 좋기만 한 말은 담지 않았다. 천천히 읽다 보면 때로는 마음 한 구석이 뜨끔해지고, 심지어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예컨대 이런 문장이 그렇다. ‘만약 우리가 터널 끝에서 반짝이는 빛을 본다면, 그건 다가오는 열차가 내는 빛이다.’ 터널이 길고 어두컴컴한 현실이라면, 그 끝의 빛은 희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명언은 그런 생각을 뒤집는다.

절망 속의 한 줄기 빛이 반드시 좋은 징조란 근거는 없다. ‘터널이 끝나는가 싶어 가슴이 벅찬 것도 잠시, 기차에 치여 죽을 운명에 처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희망의 징조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지도 모르겠다. 서늘한 문장은 명언을 빙자해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려는 대신 읽는 사람의 마음에 잠을 깨우는 찬물을 끼얹는다. 한바탕 물을 뒤집어 쓴 뒤에 어떻게 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시종 서릿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위트 넘치는 명언은 서늘함에 주눅 든 마음을 녹여준다. ‘고소득이란 내 마누라 자매의 남편보다 1년에 최소한 100달러라도 더 많은 소득을 말한다’는 미국 비평가 헨리 루이스 멘켄의 말이 그렇다. 이제는 흔한 말이 된 ‘엄친아’의 성인 버전이다.

기존 명언집과 차별화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노재현 대표는 문장의 맥락과 원전을 간과하지 않는다. 수록된 명언 하나마다 직접 출전을 확인하고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뜻으로 사용됐는지 꼼꼼한 설명을 덧붙였다. 출전이 해외인 경우엔 각 문장의 원문을 빠짐없이 영어와 일본어로 병기했다. 덕분에 이 책은 명언을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힘을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명언집으로선 보기 드문 미덕을 갖췄다.

노 대표는 중앙일보에서 29년 간 기자로 일하면서 도쿄 특파원·정치부 차장·문화부장·논설위원을 거친 노련한 언론인이다. 출전과 원문을 파고들며 맥락을 놓치지 않는 이 책의 장점은 ‘팩트’를 중시하는 기자로서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결과다.

- 이기준 기자

1317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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