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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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우리나라의 국가 비전은 무엇입니까?” 선뜻 답하는 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왜? 애초에 비전이라는 게 없으니까. 비전이 없으니, 백년대계도, 국가 미래전략도 있을 리 만무하다.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역대 정부가 중장기 전략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때 ‘국가비전 2030’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국가전략도 있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폐기처분됐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 정부와 당리당략 매몰된 정치권에게 원대한 국가 비전 따위는 ‘표’가 되지 않았다. 국가 정책은 ‘갈지(之)’ 자 행보를 했고, 비전이 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오죽했으면, ‘선비정신’을 내세운 민간 학자들이 나섰을까.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6]은 정부와 정치권을 배제하고, 순수 민간 학자들이 모여 만든 ‘국가미래전략서’다.국가미래전략을 만들기 위해 KAIST 미래전략대학원을 중심으로 모인 1800여명의 전문가는 36회의 토론을 거쳤고, 100여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그렇게 세운 국가 비전이 바로 ‘아시아 평화중심 창조국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4대 전략(행복국가·평화국가·과학국가·창업국가)과 사회·경제·정치·기술 등 분야별 세부 전략도 제안했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을 지난 11월 10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났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했나?“역대 정부의 중장기 전략은 대부분 임기 말에 나왔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실행도 못해보고 캐비닛 속으로 들어갔다. 일관성 있는 국가 비전이 없는 이유다. 그래서 민간이 주도해 정치권의 눈치 안 보고 소신껏 국가 비전과 전략을 만들기로 했다.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정말 열심히 토론하고 공부했다.”
연구책임자로서 자평한다면.“선비정신을 갖고 만들었다. 매주 금요일 토론회를 열었고, 뜨거운 호응이 있었다. 책을 내고 많은 분들이 좋은 평가를 해줬다. 특히 정치적 편향성이 없어서 좋다는 격려가 많았다. 책은 600쪽 분량이지만, 원래 원고를 4분의 3 정도로 줄인 것이다. 물론 내용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완벽한 국가 마스터 플랜을 세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매년 책을 낼 생각이다. 사회가 변하고, 인간의 욕망도 변하듯이, 전략도 변한다. 매년 수정·보완해 내다보면 완벽에 근접한 국가전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아시아 평화중심 창조국가’는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집단 지성의 결과다. 아시아 평화중심 창조국가는 아시아의 중심에서 평화를 토대로 번영하고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주체적 의지가 담긴 과학적 비전이다. 각 분야의 학자들과 장기간 토론과 고민 끝에 세운 비전이다.”책에는 ‘희망 미래’와 ‘또 다른 미래’가 제시된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바라는 ‘희망 미래’를 이렇게 그린다. ‘공동체와 개인이 상호 공존하는 사회,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기술국가, 세대간 화합과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해결된 사회, 남북 평화경제의 물적 토대 위해 성장을 거듭하는 나라….’ ‘또 다른 미래’는 희망 미래를 추구하다가 실패한 모습이다. 지금보다 더 디스토피아적인 사회다.
우리가 맞게 될 미래는 ‘희망 미래’일까, ‘또 다른 미래’일까.“미래는 만들어 가는 것이지만, 지금처럼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매몰되고 장기적인 국가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아주 어두운 미래를 맞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책에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적 갈등 해소, 남북평화(통일), 지속 성장과 번영, 민주복지국가 건설, 에너지와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주요 과제에 대한 전략이 제시돼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이 부족해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어느 정도 인정한다. 각 분야별로 기복이 있다. 매우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이 제시된 파트가 있는 반면, 좋은 말, 듣기 좋은 말만 나열한 분야도 없지 않다. 계속 보완해 나갈 것이다. 매해 집필진을 바꿔 가면서 업데이트해 나갈 계획이다.”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이라지만, 현재 한국은 어디에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미래를 변화시키는 요소를 압축한 ‘스테퍼(STEPPER)’ 예측법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society), 기술(technology), 환경(environment), 인구(population), 정치(politics), 경제(economy), 자원(resource)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일단 사회·환경·인구·자원은 잘 변하지 않는다. 정치는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경제와 기술을 통해 미래를 발전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주로 경제에만 관심을 갖지만, 경제의 뿌리는 기술이다. 기술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민간이 주도해 만든 국가전략이 아무리 좋아도, 정부나 정치권이 외면하면 헛수고가 된다.“우리가 만든 국가전략은 정파성을 배제했다. 정부 간섭 없이 민간이 자율적으로 만든 전략서다. 잘 만들어 놓으면, 좋은 부분은 언제든 정부 정책에 채택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단 30%가 채택이 된다 하더라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