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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사직서에 선조는 ‘대사간 임명 철회’이러한 율곡의 반응에 선조는 그날로 임명을 철회하고 “하고픈 말이 있는 것 같으니 어디 해보라”고 말한다. 선조가 진심으로 율곡의 말을 경청하려 했다면 아마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저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조는 율곡이 사직하고 물러간 것을 교만하고 과격하여 그런 것이라 여겨 언짢았던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것은 의례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그런데 율곡은 기다렸다는 듯 장문의 글을 올렸다. ‘지금 하늘이 노하고 백성은 곤궁하며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워졌음은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임금은 한 나라의 근본으로, 잘 다스려지느냐 못하느냐는 임금에게 달려 있습니다. 임금이 할 도리를 다했는데도 나라가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율곡은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국정이 혼란한 이유는 다름 아닌 선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민생, 안보 등 당대의 여러 과제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으면서도, 그 이전에 먼저 선조가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하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하께서는 스스로를 과신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소홀하십니다. 물론 선(善)을 택하여 중용을 지키며 자신을 믿는다면 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심을 잡고 올바름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만 믿는다면 ‘오직 내가 하는 말에 따르고 나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하다가 나라를 망친 옛 임금들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서경]에 이르기를 ‘남이 나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자는 나라를 망치며,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 협소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전하의 학문이 이미 완성되어 더 이상 남의 도움을 받을 것이 없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다른 일에 마음을 쓰느라 겨를이 없으십니까? 그도 아니면 시비와 선악을 가리는 일에 아예 관심이 없으셔서 그러시는 것입니까?…(중략)…설령 정말로 전하의 학문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堯)임금은 자신의 의견을 버리고 남의 좋은 점을 따랐고 순(舜)임금은 남에게 좋은 점이 있으면 그것을 취하여 그들과 함께 올바름을 실천했습니다. 우(禹)임금은 훌륭한 말을 들으면 절을 했고 탕(湯)임금은 간언을 따르며 어기지 않았습니다. 전하의 덕은 분명이 네 분 성인에 미치지 못하십니다. 그런데도 자만하여 남의 말을 소홀히 해서야 되겠습니까?’율곡이 볼 때 임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일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해 항상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임금은 그 선택의 올바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얻어 부족함을 채우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야 한다. 요, 순, 우, 탕과 같은 성군(聖君)들이 자신의 총명함을 과신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좋은 말을 수용하려고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이들 임금의 경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선조가 자신만 옳다는 아집에 빠져 독단적으로 정치를 행하고 있으니,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선조에 대한 율곡의 비판은 이어진다. “쓸 만한 재능을 가진 선비가 있으면 전하께서는 그가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할까 걱정하고, 곧은 말을 개진하며 논쟁하는 선비가 있으면 전하께서는 그가 명령을 어길 것이라며 지레 싫어하십니다. 유학자로서의 행실을 실천하는 선비가 있으면 전하께서는 그가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꾸민다고 의심하십니다. 소신은 모르겠습니다. 대체 어떤 도를 배우고 어떤 계책을 진달해야만 전하의 마음에 부합하여 신뢰를 얻을 수가 있습니까?”이 문제도 결국 자만 때문이다. 흔히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가 발생해도 결코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지 않는다. 일이 실패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 탓이다. 내 판단은 분명 옳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방해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듣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다.
살벌함 느껴지는 문장으로 허물 거론이 밖에도 율곡은 선조의 잘못과 허물들을 가감 없이 거론했다. 살벌함마저 느껴지는 문장은 그가 이 사직상소에 목숨을 걸었음을 보여준다. 율곡은 상소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부디 전하께서는 기회를 놓치지 마옵소서. [하서(夏書)]에 이르기를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대처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이미 위태로운 조짐이 드러났으니, 형세가 매우 급박하여 바로잡을 일이 시급합니다. 조금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율곡은 절박했다. 병이 들기 전에 예방했다면 좋았겠지만, 병이 아직 심하지 않은 지금에라도 치료에 나서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여 율곡은 왕명을 거역하고 사직서라는 강경한 형식을 통해 선조를 일깨우고자 한 것이다. 선조에게 달라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선조는 이후 율곡에게 대사헌, 대제학, 병조판서, 이조판서와 같은 중임을 맡겼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율곡을 좌절케 만드는 거대한 바람이 분다. ‘붕당’, 다음 호에서 다룰 주제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