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현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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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항공사가 한국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주인공은 독일 루프트한자 이노베이션허브(LIH)와 한국 스타트업 ‘킴비서’다. LIH은 루프트한자그룹이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독일 스타트업에만 투자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에 투자한다. 킴비서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기업이다. 독일 항공사와 쉽게 연결하기는 어려운 파트너다. 거리도 멀고 업종도 다르다.2월 12일 한국을 찾은 LIH의 글렙 트리터스와 캐서린 짐머맨 이사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이들은 “여행·e-커머스·정보통신(IT) 환경을 감안해 한국 스타트업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엔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이 있고, 대부분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한다. 쇼핑몰에서 다양한 여행 상품을 제공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항공권·숙박·관광을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특가 상품이 넘친다. 트리터스 이사는 “한국은 모바일 전자상거래 선진국이자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테스트베드”라고 말했다. 짐머맨 이사는 “한국은 세계에서 창업열기가 가장 뜨거운 나라 중 한 곳”이라며 “열정적인 젊은 사업가, 적극적인 한국 정부, 앞선 IT 인프라의 삼박자를 갖췄다”고 말했다.LIH가 선택한 킴비서는 유경진 대표가 창업했다. 유 대표는 지난해 서울 해커톤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해커톤은 ‘해커의 마라톤’이란 의미인데, 전문 프로그래머가 모여 실력을 겨루는 행사다. 미국에서 주로 열렸는데 수백명의 해커가 참석했다. 지난해 유 대표는 글로벌 해커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무려 2000명의 참가 동의를 받아냈다. 역대 최대 해커톤 개최를 앞두고 메르스 악재가 터졌다. 결국 행사는 취소됐지만 독일 벤처 업계가 주목하는 한국 벤처인 중 한 명이 됐다. 그중엔 트리터스 이사도 있었다. 곧 유 대표에게 링크드인으로 연락이 갔고 새로운 인연이 시작됐다. 유 대표는 “LIH와 어떤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 수시로 연락하며 사업 방향을 잡고 있다”며 “1차 목표는 한국 시장이지만 자리 잡는 대로 글로벌 시장에 우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리터스 이사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지만 목표는 글로벌 시장”이라며 “한국에서 모델을 키워 함께 세계에 진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독일 기업은 보수적이다. 시간을 두고 파트너를 선택한다. ‘어떤 팀인가’ ‘글로벌 마인드가 있는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기술력이 있는가’ 등을 꼼꼼히 살피며 투자한다. 과정은 까다롭지만 일단 손을 잡으면 오래 함께 간다. 트리터스 이사는 “우리는 한번에 여러 기업과 접촉하며 저울질 하듯이 파트너를 고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짐머맨 이사는 “파트너와 협력하며 같이 성장하는 것이 우리 사업 방식”이라고 말했다.독일은 2008년 IT 버블을 경험했다. 많은 벤처기업이 문을 닫았고, 투자 손실도 상당했다. 힘들게 생태계를 다시 정비한 경험이 있다. LIH는 한국 벤처산업이 버블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오히려 기업 가치에 비해 투자금이 적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들이 꼽은 한국 벤처의 문제는 출구가 너무 좁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투자를 진행한 것은 다른 방향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짐머맨 이사는 “기한을 정해 놓고 상장이나 인수·합병으로 수익을 올릴 생각은 없다”며 “킴비서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일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