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주 회장이 그린 만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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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주며 구애한다. 여자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며 꽃을 던진다. 남자는 여자에게 편지봉투를 건넨다. 여자가 봉투를 펴보니 ‘차순위 신고’라고 써있다. 강명주(73) 지지옥션 회장이 그린 4컷 만평의 내용이다.경매는 입찰 방식이다. 해당 경매 물건을 살 희망가격을 적어내면 응찰한 사람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 낸 사람(최고가 입찰자)이 매수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차순위 입찰신고라는 제도가 있다. 두 번째로 비싼 가격을 적어낸 사람이 차순위 입찰신고를 하면 최고가 입찰자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해당 물건을 매수하지 못했을 때 별도의 과정 없이 낙찰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강 회장은 이런 내용을 만평에 담았다. 남자친구(최고가 입찰자)가 있다는 여자에게 헤어지면 다시 구애하겠다는 차순위 신고 편지를 보낸 것이다.벌써 16년째다. 강 회장은 국내 최초 경매정보 업체인 지지옥션의 홈페이지에 매주 월요일 경매 만평을 게재했다. 만평은 어느덧 800회를 맞았다. 부동산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라는 경매. 어떻게 경매 만화를 그릴 생각을 했을까. 강 회장은 “경매는 어렵지만 훌륭한 투자 수단”이라며 “만평은 보다 쉽게 경매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수단이자 지지옥션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말했다.
대학 시절 처음 만평 그려
▎16년 동안 800회의 경매 만평을 그린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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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만평을 그린 것은 대학생 때다. 다니던 대학교의 신문사에서 활동하다가 기회가 생겼다. 우연히 그리기 시작한 만평을 200회 그렸다. 강 회장은 “일반 대학생 중에 역대 가장 많은 팬을 거느렸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만화를 배운 적은 없었다. 여느 고등학생처럼 만화책을 좋아했을 뿐이다. 만평은 그림 실력보다는 풍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졸업한 지 40여 년이 지났는데 후배들을 만나면 나를 알아본다. 만화 그리던 선배 아니냐며. 입학하자마자 6년을 꼬박 그렸다. 현재까지 최장 기록이다. 앞으로도 이 기록이 깨지기는 어려울 것이다.”대학신문에서의 경험은 지지옥션의 밑거름이 됐다. 졸업 후 다니던 대학교의 교직원으로 근무하던 강 회장은 1년 만에 직장 생활을 접었다. 그는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직장생활보다 ‘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고 말했다.힘들었다. 처음 시작한 사업이 석유곤로 제조·판매였다. 강 회장은 “공장에 갔는데 철판을 자르는 굉음, 기름 묻은 장갑, 일하는 청년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 가슴이 두근댔다. 내가 할 일이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호기로움은 3년 만에 절망으로 변했다. 평생 갚을 수 없을 것 같은 빚이 생겼다. 당연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자금도 없었다. 재기를 고민하던 강 회장의 뇌리에 대학신문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즐거웠던 것, 잘했던 것을 되짚어보니 자연스레 대학신문이 떠올랐다. 신문사에 취직할 생각이 아니라 신문을 만들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신문을 만들 자신은 있었지만 광고를 유치할 자신은 없었다. ‘광고 없는 신문’을 고민하다가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정보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게 지지옥션이다.”지지옥션이 탄생한 1983년 법원경매 정보를 신문에 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폭력배들이 경매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이었다. 강 회장은 “법원이 제공하는 경매 물건 정보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었지만 브로커(폭력배)가 마음대로 보지 못하도록 겁을 줬다”며 “협박을 견디고 도망 다니며 아내와 함께 법원에서 틈나는 대로 경매 물건 정보를 옮겼다”고 말했다.이렇게 만든 정보지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처음 만든 200여 부를 입찰 예정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서로 받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됐다’ 싶었다. 당시 1000원을 받고 팔았다. 자장면 한 그릇에 400원 하던 시절이었다. 2000원으로 가격을 올렸는데도 여전히 줄을 서서 샀다. 하지만 수금이 잘 안됐다. 선불제로 전환했고 34년째 이어지고 있다.”현재 지지옥션의 연매출은 100억원을 넘는다. 자산운용사 등 계열사까지 따지면 매출은 더 늘어난다. 최근 경북 경주시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을 인수했고 골프장도 매입할 계획이다. 강 회장은 “사업도 만평도 결국 맥은 같다. ‘역발상 그리고 역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작은 규모일수록, 경험이 없을수록 차별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남들이 해온 방식을 따라 하는 ‘미 투’(Me too)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회사 앞 도로변에 커피숍이 300여 개가 몰려 있다. 6개월도 안돼 주인이 수시로 바뀐다. 먼저 시작한 기업, 덩치가 큰 기업에 밀릴 수밖에 없다.”
경주에서 호텔사업 시작요즘 강 회장은 호텔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해 경북 경주시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을 인수했다. 기존에 운영 중이던 호텔을 재단장해서 올 1월 다시 문을 열었다. ‘경주지지관광호텔’이다. 강 회장은 “계열사 중에 자산운용사가 있다.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려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 필요하고 호텔은 반드시 필요한 상품이다. 운영 수익을 얻다가 자산 가치가 오르면 매각해서 또 수익을 낼 수 있다. 더 큰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 앞으로 제주도 등지의 호텔을 계속 인수할 계획이다.”작은 캠페인도 준비하고 있다. ‘결혼문화 바꾸기 운동’이다. 경주로 신혼여행을 오는 신혼부부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한다. 강 회장은 “우리나라 결혼문화는 변화가 필요하다. 너무 성대하게 하려고 한다. 간소해질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데는 결혼식 비용도 있다고 본다. 신혼여행은 무조건 해외로 나가는데, 경주만 해도 천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적지가 많다. 경주로 신혼여행 왔다가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면 평생 VIP 회원 자격도 주려고 한다. 미약하지만 미래를 짊어진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이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