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를 본 사람이 775만 명을 넘어섰다(2월 16일 기준).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 기록을 갖고 있는 엄홍길(56) 대장이 이 영화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에베레스트 8750m 지점에서 실종된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2005년 5월 휴먼원정대를 꾸린 엄 대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산(山)사람들의 의리와 불굴의 도전 정신에 관객들은 눈물로 공감했고, 박수를 보냈다.설 연휴를 전후로 엄홍길 대장을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2월 4일 서울역 뒤 국립극단 사무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엄 대장을 스포츠안전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자리였다. 김종덕 문체부장관으로부터 위촉장을 받은 엄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들을 20년 간 오르내리면서 숱한 생사의 고빗길을 만났어요. 나처럼 안전에 대해 절박한 사람이 있을까요. 스포츠안전 홍보대사를 맡지 않을 수 없죠”라며 웃었다.
스포츠안전 홍보대사로 위촉엄 대장은 영화를 여섯 번이나 봤다고 했다. 엄 대장 역할을 맡은 ‘1000만 배우’ 황정민의 연기에 찬사가 쏟아졌지만 엄 대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대장님은 그렇게 카리스마가 강한 분이 아닌데 너무 강하게 표현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 대장은 “살아있는 사람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나요. 본인이 굉장히 노력한 게 나타났고, 제 역할을 충분히 잘 해줬어요”라고 했다.2월 11일 서울 장충동에 있는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설 연휴에 뭘 하셨느냐고 물었더니 강원도 쪽으로 1박2일 기차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기차 여행을 했는데, 모처럼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은 역시 산 체질이라고 했다. “땀을 흘리며 산을 올라야 직성이 풀려요. 다녀오니까 살이 2kg나 쪘네요.”엄 대장의 양쪽 종아리 굵기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왼쪽은 커다란 아령을 집어넣은 듯 근육이 발달해 있다. 이와 달리 오른쪽은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다. 1998년 안나푸르나 도전 때 큰 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았다. 그 후 오른쪽 발목이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오른쪽 엄지발가락도 동상으로 잘라내고 허벅지 살을 이식했다. 경사면을 올라갈 때는 앞꿈치로만 걸어야 한다. 엄 대장은 이런 다리로 히말라야 8000m급 10개 봉우리를 더 올랐다.엄 대장은 자신의 등반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1998년 안나푸르나 사고를 들었다. “7600m 지점에서 추락사고를 당했어요. 발목이 180도 돌아가고 덜렁덜렁해진 상태로 2박3일 동안 4500m 지점까지 기어서 내려왔어요. 깎아지른 빙벽과 암벽이라 동료가 있어도 도와줄 수가 없었죠. 발목뼈가 으스러져 핀 두 개를 박아 뼈를 고정시켰어요. 의사는 ‘더 이상은 산에 못 간다. 뛰는 것도 힘들 거다’고 했어요. 그런데 10개월 뒤에 안나푸르나에 다시 도전해 성공했습니다.”엄 대장의 투혼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왜 그렇게 위험하고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다. 후원 업체의 압력이나 다른 산악인과의 경쟁이 작용하지는 않을까. 엄 대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은 안 가본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합니다. 그걸 놓고 경쟁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죠. 후원 업체의 압력은 전혀 없지만 우리 스스로가 ‘이번에 실패하면 스폰서를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서라도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이게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욕심은 필연적으로 사고를 부르게 돼 있습니다.”고산 등반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전에는 기록이나 목표 달성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젠 등반 과정과 개인의 체험이 중시된다. 엄 대장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봅니다. 어쨌든 누군가가 14좌 완등, 16좌 완등 같은 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에 다음 사람이 자신감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16좌 성공하고 나니까 무산소 등정도 나오고 좀 더 새로운 방법과 루트로 해 보자는 시도가 나오는 거죠”라고 말했다.2002년 9월, 국제산악연맹(UIAA)은 산악인이 지켜야 할 산에서의 윤리와 규범, 안전 지침 등을 제시한 ‘티롤 선언’을 공표했다. 고산 등반 과정에서 사고와 사망자가 잇따르자 일부 종교단체에서 ‘산악인들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때였다. 엄 대장은 이에 대해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안전입니다. 하지만 100% 안전이 보장된 상태라면 도전이나 모험, 개척정신은 나올 수 없겠죠. 그건 취미지 챌린지는 아닐 겁니다”라고 말했다.엄 대장은 ‘인생 17좌’ 도전을 하고 있다. 네팔 오지에 학교를 짓는 일이다.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휴먼스쿨’ 16개 건립에 나섰다. 2월 23일 10번째 학교가 완공됐다. “원래부터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히말라야 15좌, 16좌 갈 때 성공을 향한 염원이 너무너무 간절했고, 그만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졌어요. 히말라야 신에게 ‘제발 꿈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살아서 내려오게만 해 주신다면 살아남은 자로서 뭔가를 되갚으며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죠.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나니 잠깐 그 마음을 잊은 겁니다. 히말라야 신이 ‘너 되갚는다고 했잖아, 나눈다고 했잖아’라고 깨우침을 주셨어요.” 엄 대장은 1986년 에베레스트 도전 때 잃은 동료 셰르파의 동네(팡보체)에 첫 학교를 봉헌했다. 2009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2010년 5월에 준공된 1차 팡보체 휴먼스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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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도전은 아직…워낙 오지에 건물을 짓다 보니 자재 가격과 운송 비용이 만만찮았다. 학교 하나를 짓는 데 3억~5억원이 들어갔다. 후원 업체명을 학교 이름에 넣었다. 먼 곳에서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응급 환자 이송을 위한 헬기 포트 등 부대 시설도 계속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엄 대장은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영화 [히말라야]를 여섯 번이나 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와중에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이 왔다. 그는 “아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히말라야와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학교 16개를 짓겠다고 했는데 중도에 가 버리면 안되죠. 히말라야가 ‘그동안 수고했어. 이젠 가도 돼’라고 한다면 그 때 움직일 수는 있겠죠.”-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