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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기호 한국 HPE 대표] 분사로 새로운 성장 활로 모색 

각각의 주력 사업에 선택과 집중 … “한계사업 떼내는 구조조정형 분사와 달라”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함기호 한국 HPE 대표. / 사진:오상민 기자
휴렛패커드(HP)는 지난해 11월 1일 회사를 기업용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담당하는 ‘HP엔터프라이즈(HPE)’와 PC 및 프린터 사업 부문인 ‘HP Inc.’로 나눴다. 한국에선 2011년부터 한국HP를 이끌어온 함기호 사장이 HPE 대표를 맡았고, HP Inc.에는 김대환 부사장이 대표가 됐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두 개의 HP 모두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분사를 진두지휘한 함 대표는 “분사는 HP가 성장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며 “두 개의 회사 모두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고, 더욱 경쟁력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분사 기업 동시에 재상장


HP는 2014년 11월 1일 분사 계획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준비해 2015년 11월엔 두 개의 독립 법인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함 대표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이미 HP가 파격적인 변화를 택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었다. 회사 경영진도 자주 분사를 화제에 올리곤 했다. HP가 분사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사업 환경의 변화였다. HP는 70년간 숱한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성장한 기업이다. 다만,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는 사업군도 더러 있었다. 분야와 영역이 방대해 효율적인 전략을 세우기 어려웠다. 정보통신(IT) 환경은 더욱 빠르게 변하고 있다. 키워야 할 사업군에 집중하며 중장기 전략을 세워야 했다. 여기에 주력 사업 성장세가 주춤하자 맥위트먼 HP 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함 대표는 “다양한 제품군과 고객을 대상으로 어떤 통합 전략을 적용할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며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고객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를 빠르게 제공하기 위한 변화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분사는 쉽지 않은 일이다. HP는 기업가치 130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글로벌 기업이다. 분사용 서버만 6000대를 준비해 새로운 ERP, CRM시스템을 구축했다. 거래처와 직원의 인적 사항을 정리하는 일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국 사업을 분리하기 위해 함 대표와 연락을 주고 받던 미국 본사 담당자도 “우리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다(We don't know what we don't know)”며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행히 1년을 목표로 진행한 분사 작업을HP 실무자들은 9개월 반 만에 마무리했다. 두 개로 나눠진 HP는 지난해 11월 1일 뉴욕 증시에 동시에 상장했다. 분사한 기업의 동시 상장은 미국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함 대표는 한국에서 분사 작업을 진행하며 네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고객이 어떤 피해도 입지 않도록 했다. 분사가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율해야 했다. 둘째, 분사를 준비하는 기간에도 하나의 조직임을 강조했다. 양쪽 모두에 투명한 정보를 제공했고, 인사상의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셋째, 법무·재무·회계·물류·IT시스템 분리를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했다. 기업이 움직이기 위해선 핵심 시스템 구축이 필수다. 마지막으로 시간 엄수. 회사 분사 예정일에 컴퓨터 전원을 켰을 때, 아무 문제 없이 새로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16명과 함께 분사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테스크포스팀(TFT)이었지만, 본래 업무도 진행해야 했습니다. 과외로 TFT 일을 떠 맡았는데, 모두 고생해준 덕에 분사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HP의 세계 최우수국으로 뽑혀

HP inc.는 PC와 프린터 사업을 진행한다. HPE는 클라우드·빅데이터·보안·모빌리티 사업이 주력이다. HPE는 전자기기와 하드웨어 분야에서 앞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무게를 두고 고객 지원 분야를 강화할 방침이다. 함 대표는 국내 고객 행사를 다니며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IT가 좋은 환경만 제공하면 됐지만, 이제는 IT를 통해 실제를 예측하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함 대표는 IT 인프라 사업의 미래를 밝게 본다. 정부와 대기업의 인프라 투자가 늘고 있다. 성장 중인 유망 산업에서 인프라의 역할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서버가 좋은 예다. 서버시장은 매년 성장 중이다. 고객층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저가 범용 서버부터 수퍼컴퓨터용 특수 서버까지 다양하다. 일반 포털 업체가 사용하는 범용 서버는 중국산이 강세다. 낮은 가격을 앞세워 점유율을 높였다. 고부가가치 서버는 상황이 좀 다르다. 대기업 연구개발 부서용 서버는 정교한 정보처리 능력이 필요하다. 속도와 분석 능력이 중요하다. HPE가 앞선 기술력을 확보한 제품군이다. 함 대표는 “이 분야는 국내에서도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고객 지원 서비스 등의 포트폴리오를 잘 엮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4월엔 서버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한다. 기존 서버는 대부분 블레이드 형식이다. 용도에 맞게 서버를 구축한 이후엔 용도를 바꾸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번에 HP가 준비한 서버는 컴포저블 형식이다. 서버를 구축한 다음에도 고객이 원하는 용도에 따라 쉽게 구조를 바꿀 수 있다. 2020년을 겨냥한 차세대 서버도 준비 중이다. 2017년에 시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기존 서버보다 성능이 1000배 개선된 제품군이다. 함 대표는 “컴퓨터 성능이 획기적으로 나아지고 있어 서버도 이에 맞춰서 성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조직을 정비하는 도중 들려온 좋은 소식도 있다. 한국이 2015년 전 세계 HP 최우수국으로 선정된 것이다. 한국 수상은 HP 역사에서 처음이다. 한국 IT 시장이 부진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성과를 거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함 대표는 2016년을 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말한다. 주력 산업별로 조직을 개편하고 직원 재교육에 들어간다. 그는 조직은 개편하지만 인력 감축을 위한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도전이 남아 있지만 자신이 있습니다. 조직도 고객 요구에 맞춰 조정해나갈 겁니다. 핵심 사업에 집중하며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1321호 (201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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