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파인더 창업자 노범준 대표는 “어웨어는 공기청정기를 직접 가동시키거나, 가습기를 작동하게 만드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신인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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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론칭은 우리 컨퍼런스에서 합시다.” 지난해 5월 초, 세계 최초 소비자 맞춤형 공기 서비스 제품 ‘어웨어(Awair)’ 출시를 앞둔 노범준(39) 비트파인더 대표는 미국 테크 업계의 ‘구루’로 꼽히는 월트 모스버그(Walt Mosberg)의 제안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인의 소개로 만났을 때, 노 대표는 10여 분 동안 공기가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월트 모스버그는 어웨어 출시를 ‘코드 컨퍼런스 2015’ 무대에서 하자고 제안했다. 샤오미·GM·에어비앤비·구글 등의 글로벌 기업 CEO나 관계자가 연사로 무대에 오르는 곳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노 대표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고 너무 떨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해 5월 27일(현지시간) 500여 명의 글로벌 기업 관계자와 관람객을 앞에 놓고 노 대표는 어웨어를 정식으로 론칭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잡았고, 컨퍼런스 이후 파트너십 문의를 많이 받았다. 미국 언론의 호의적인 평가도 많이 얻었다”고 노 대표는 웃었다.2013년 11월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비트파인더는 미국 듀퐁에서 엔지니어 팀장까지 지냈던 한국인 케빈 조와 노 대표가 공동 창업했다. 이들이 선보인 어웨어는 집이나 건물의 공기 상태를 분석해 알려주는 제품이다. 집이나 사무실 곳곳에 이 제품을 설치하면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VOC(휘발성유기화합물, 새집증후군 요인이 되는 물질), 미세먼지 등 5가지를 측정해 실내 공기질을 파악한다. 상황에 따라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줘야 하는지, 아니면 습도 조절이 필요한 때인지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앱을 통해 24시간 동안 실내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어웨어와 비슷한 제품은 있지만, 데이터 분석력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노 대표는 강조했다.
세계적 컨퍼런스에 초대받아 제품 소개
▎세계 최초 소비자 맞춤형 공기 서비스 제품 ‘어웨어’와 관련 앱. 2월 중순부터 한국에서 판매가 시작됐다. / 사진: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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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어웨어는 공기의 질을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만, 앞으로는 공기청정기나 제습기와 같은 기존 공기 관련 제품과 연동할 계획이다. 노 대표는 “기존 전자제품과 연동하게 하는 어웨어 커넥트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출시할 계획인 어웨어 커넥트를 설치하면 어웨어가 직접 공기청정기를 가동시키거나, 가습기를 작동하게 만드는 플랫폼이 된다. 공기청정기나 제습기 등의 공기 관련 제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소비자들이 제습기와 청정기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제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하는데, 어웨어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노 대표는 말했다. “가전제품과 연동하려면 파트너십을 맺어야 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파트너십이 필수는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앱을 가지고 컨트롤하는 스마트 제품이라면 와이파이 칩이 들어있다. 이론적으로 어웨어 커넥트와 바로 연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현재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어웨어 제품을 팔고 있지만, 노 대표는 B2B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만일 어웨어와 빌딩 공조기가 연동이 되면 빌딩 사무실 실내 환경도 어웨어를 통해 제어할 수 있다. 노 대표는 “세계에 있는 빌딩이 어웨어의 판매 타깃”이라며 “시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웃었다.지난해 11월부터 어웨어는 미국과 캐나다에 배송이 시작됐다. 한국 소비자도 2월 둘째 주부터 현대카드 프리비아 몰을 이용해 구매할 수 있다. 노 대표는 어웨어 한국 출시를 계기로 파트너 물색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고, 다이슨과 블루웨어 등의 한국 총판사인 게이트비전과 총판 계약도 했다. “한국 소비자들도 쉽게 어웨어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어웨어 판매 목표는 전 세계적으로 5만~10만 대”라고 말했다. 가격은 199달러(한국 소비자가는 25만6000원)이다.비트파인더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구성원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비트파인더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전략담당 등 13명의 임직원이 있다. 이 중 10명이 한국인이다. 노 대표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2세로 미국 퍼듀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다. 보잉과 삼성전자, 시스코 등에서 경력을 쌓은 후 창업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 잘하는 엔지니어로 인정받았지만, 창업투자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창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에서 5년 일한 후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창투사에서 2년 동안 일을 했다. 이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창투사를 그만두고 시스코에 둥지를 튼 것도 내부 창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시스코에서 스마트 빌딩 관련 신규 사업 팀에서 창업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창업그룹에서 일하면서 스타트업 관련 사람을 많이 만났다.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이 있으면 창업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그가 처음 생각했던 창업 아이템은 3D 프린터. 공동창업자 케빈 조를 만난 이유다. 두 사람 모두 3D 프린터에 관심이 많았고, 이와 관련된 창업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케빈 조의 이력은 독특하다. 1980년대 한국에서 컴퓨터 부품을 직접 제작해 판매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실력을 눈여겨보던 미국인 엔지니어는 1988년 고등학생이었던 케빈 조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이후 듀퐁 엔지니어 팀장까지 지낼 정도로 능력있는 엔지니어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분과 함께 3D 프린터 관련 창업을 계획했는데, 어쩌다 보니 어웨어 창업을 같이 했다”고 노 대표는 웃었다.
다양한 이력의 한국인 직원 의기투합케빈 조뿐만 아니라 독특한 경력의 한국인이 많다. 제품 제작을 담당하는 개발자 윤덕현씨는 구로에서 가게를 20년 동안 운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3D 프린터 제작을 위해 한국·중국·일본 등을 케빈 조와 함께 돌아다녔다. 한국에서 윤덕현씨를 우연하게 만났는데,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영국 왕립학교를 졸업한 후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기업 아이디오(IDEO)에서 9년 동안 일했던 김보성씨는 디자인 책임자로 비트파인더에 합류했다. “우리가 처음 고용한 분이다. 3D프린터의 장·단점을 알기 위해 인터뷰를 했던 인연으로 삼고초려해서 우리 회사에 모셔왔다”며 노 대표는 웃었다.행정고시를 거쳐 연수원 수석졸업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백산씨는 옛 지식경제부 공무원 자리를 그만두고 비트파인더에 전략담당자로 결합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대웅씨, KT에서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고재도씨, 카이스트 출신의 백목련씨 등도 비트파인더 멤버다. “한국인이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에 노 대표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창업 준비를 할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라며 “다들 능력이 좋은데, 우리의 생각에 동감해서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