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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채용욱 룩시드 랩스 대표] 비상호출 생각하자 호출음 울려 

시선-뇌파 기반 인터페이스용 헤드셋 개발... 영화 [아바타] 보고 영감 얻어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룩시드 랩스는 세계 최초의 EBI(Eye-Brain Interface)용 웨어러블 헤드셋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은 헤드셋을 통해 얻은 눈의 움직임과 뇌파 정보에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개인의 인지상태를 간편하게 분석한다. 채용욱 대표가 제품을 시연하는 모습을 다중노출로 촬영했다. / 사진:김현동 기자
루게릭 투병 중인 송원준(가명·34)씨. 그에게 최근 변화가 생겼다. 사지마비 상태인 그가 생각과 눈의 움직임만으로 가족과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선-뇌파 기반 인터페이스(EBI, Eye-Brain Interface)용 웨어러블 헤드셋의 베타 서비스를 사용하면서부터다. EBI는 눈의 움직임과 뇌파 정보에 머신 러닝 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인지 상태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창업 1년 차 스타트업 ‘룩시드 랩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 올 하반기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룩시드 랩스는 카이스트 출신인 채용욱(34) 대표가 지난해 1월 홀로 창업했다. 3월 9일 룩시드 랩스가 입주해 있는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 채 대표를 만났다. 그는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눈부시지만, 아직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인지 상태와 감정을 분석하는 기술은 그만큼 발전하지 않았다”며 “시선-뇌파 기반 인터페이스를 시작으로 컴퓨터가 사람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을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꾼다”고 했다.

올 하반기 상용화 예정

EBI는 낯설다. 세상에 없던 기술이어서다. EBI 헤드셋의 작동 원리를 살펴봤다. 헤드셋에 달린 작은 카메라는 눈동자의 크기와 움직임 정보를 수집해 개인의 인지상태를 유추한다. 동시에 뇌파 분석 장치가 행동·기억·학습·감정 등의 인지능력을 수행하는 전두엽 영역의 뇌파를 측정해 얻은 정보를 시선 추적 장치 정보와 합쳐 분석한다. 실제 뇌파 분석 장치를 붙이고 컴퓨터 자판 앞에 섰다. ‘비상호출’을 생각하자 버튼이 자동으로 눌러져 호출음이 울렸다. 채 대표는 “글로벌 업체들이 눈과 뇌파 중 하나의 기술에 집중해 자체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두 기술을 융합한 것은 처음”이라며 “정보를 읽어내는 것이 핵심 기술인데, 자체 개발한 신호처리 기술은 기존 제품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EBI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에서 EBI는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룩시드 랩스는 ‘CES 2016 10대 스타트업 아이디어’와 ‘8대 차세대 기술’에 선정되면서 해외 언론에 먼저 소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채 대표는 “가상현실(VR)을 연구하는 MS의 홀로랜즈팀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여 협업을 논의했다”며 “1년 만에 이룬 성과라는 데 더 놀라던데, 열심히 개발한 것을 인정받고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자리였다”며 웃었다.

채 대표는 2010년 개봉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보고 EBI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아바타 주인공도 걷지 못하는 장애인인데 생각만으로 원격에 있는 생명체를 통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잖아요. 생각만 가지고 컴퓨터나 로봇을 조작하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간절한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습니다.”

학부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그는 카이스트의 뇌 과학자이자 국내 인공지능 최고 전문가인 정재승 교수를 찾아갔다. 사람의 뇌를 알면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카이스트 뇌공학 석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주제는 ‘뇌파만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원격 제어하는 것’. 미로 안에 로봇을 넣고 뇌파만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통과하는 실험은 2011년 성공했다. 카이스트 박사 과정에 진학한 채 대표는 다시 전산학으로 전공을 옮겨 인공지능을 공부했다. 학자로서 성공이 보장됐지만 박사 과정 도중 그는 돌연 창업을 결심했다. 채 대표는 “연구를 하다 보니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보람이었고 이 기술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급해 실생활에서 뿌듯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며 “가족의 반대가 심했지만 같은 학교 동기 3명과 와이브레인이란 회사를 만들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와이브레인의 창업은 성공적이었다. 뇌에 자극을 줘 뇌 상태를 활성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뇌에 미세한 자극을 줘 뇌 상태를 호전시키는 기술로 의료계의 관심을 받았다. 세상의 주목과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채 대표는 보편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기술 구현을 꿈꿨다. 그는 “의료용 시장에 멈추기보다는 교육과 헬스케어, 나아가 드론이나 자동차 주행, 인공지능과 같은 뇌를 활용한 더 큰 세상의 변화를 봤다”고 했다.

회사를 나온 그는 엔젤 투자사인 퓨처플레이의 도움을 받아 창업을 했다. 기술력을 알아본 투자사는 1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정부의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 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와 연결해 5억원의 추가 지원금을 이끌어 냈다. 창업 후엔 ‘사지마비 환자의 자유로운 소통’을 최우선 목표로 잡았다. 첫 EBI 기기가 사지마비 환자의 인지상태를 분석해 보호자와의 원격 의사소통을 돕는 솔루션으로 개발된 이유다. 채 대표는 “국내 사지 마비 환자 수는 2만여 명이고 미국에만 600만 명 넘게 있다”며 “기존 뇌파 장비 가격이 1만 달러에서 3만 달러 선이라 환자 가족에게 큰 부담이지만 하반기 상용화되는 제품은 기존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일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룩시드 랩스는 내년에 교육용 웨어러블 기기도 내놓을 계획이다. 채 대표는 “EBI는 영어 지문을 보기만 해도 모르는 단어를 자동으로 암기장에 저장하고, 새로운 문장 형식을 자동으로 추출해 복습하는 개인 맞춤형 교육을 구현할 수 있다”며 “교육의 혁신을 가져오고 나아가 가상현실과, 자동차나 드론 컨트롤에 사용되는 환경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룩시드 랩스의 최종 목적지는 인간의 감정에 대응해 대화를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이다. 채 대표는 “이르면 5년, 늦어도 10년 후 인공지능이 사람과 같이 대화하면서 기분이나 뉘앙스로 감정상태를 평가하고 느끼는 기술이 만들어 질 것”이라며 “인간을 정말 잘 아는 새로운 인공지능을 만들어 인간을 더 똑똑하고 건강하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인간 이롭게 만드는 창조가 꿈꿔

영화 같은 미래를 얘기하는 그에게 “두렵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사회가 올 수도 있지만 결국 인공지능을 만든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은 더 창조적인 일에 집중하고 새로운 것을 연구해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룩시드 랩스의 직원은 현재 7명으로 늘었다. 채 대표의 카이스트 후배들이 합류하면서 회사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룩시드 랩스는 현재 보유한 기술을 라이선싱하거나 연구 장비 판매로 매출을 늘려나가고 있다. 올 해 안엔 생산파트너를 찾아 10억~2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목표다. 작은 회사지만 경쟁 상대는 없다고 채 대표는 강조했다. “아직 우리와 같은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를 본 적이 없어요.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분야입니다. 이 기술을 통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그런 창조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1326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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