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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그곳에 당신이 있다” 

가상현실(VR) 활용한 ‘VR저널리즘’ 도래 … 몸으로 느끼는 뉴스 시대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ted.com
해리 포터도 신문을 본다. ‘데일리 프로핏(Daily Prophet)’, 번역하면 ‘예언(豫言) 일보’쯤 될까. 마법사가 구독하는 신문 답게 지면에 실린 사진이 살아 움직이며 말까지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는 건 어떨까. 뉴스를 앉아서만 볼 게 아니라 직접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몸으로 체험해보는 거다. 프리미어 리그 경기장으로 달려가 관중들과 하나가 되어 보기도 하고 테러나 쓰나미의 한복판에서 끔찍함에 전율해 보는 식으로 말이다. 허황되게만 들리는 이런 상상이 점차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술 덕분이다.

사실 가상현실 개념 자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현실의 영상을 360도로 촬영해 이어 붙이면 마치 실제처럼 느낄 수 있다(아이맥스 영화관을 떠올려 보라). 하지만 제작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항공기 조종 시뮬레이션, 의대생 수술 교육, 혹은 일부 디지털 게임 등에만 적용돼왔다. 그런데 최근 촬영장비 가격이 50만원 대 정도로 급격히 떨어지면서 이제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에서도 가상현실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촬영장비 가격 떨어지면서 보편화


▎1. 미국 빈민층의 기아 실태를 고발하면서 VR저널리즘의 서막을 연 ‘기아’의 한 장면. 2. 시리아 내전 상황을 VR 애니메이션으로 체험하게 해 주는 ‘프로젝트 시리아’의 한 장면. / 사진:www.emblematicgroup.com 제공
2015년 말부터 미국의 뉴욕타임스를 필두로 월스트리트저널, AP통신, 그리고 국내 몇몇 신문사들도 속속 VR뉴스를 선보이고 있다. 독자들은 단지 뉴스를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뉴스 현장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뉴스의 현장감과 몰입도가 극대화될 것은 당연지사다. 뉴스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 공감을 극대화하는 ‘몰입 뉴스’, 혹은 ‘VR저널리즘’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VR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엠블러매틱(Emblematic) 그룹을 이끌고 있는 노니 데라페냐는 VR저널리즘의 대모(代母)로 불린다. 2009년 무렵, 그녀는 미국 빈민층의 실태를 알리는 보도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었다. 현장 취재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한 푸드뱅크(빈민 무료급식소)를 방문했을 때, 그녀가 접한 상황은 막연히 머리로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배식을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루한 옷을 걸치고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력도 희망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당뇨병을 앓는 한 남자는 굶주림에 혈당이 너무 떨어져 그대로 보도 위에 쓰러지기도 했다.


▎‘VR저널리즘’ 강연 동영상.
그녀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런 참담한 실상을 어떻게 하면 가장 극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활자만 가지고는 부족한 듯 싶었다. 이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당시 막 부상하고 있던 가상 현실 기술이었다. 그녀는 현장의 실상을 VR 카메라로 찍고 최대한 생생하게 360도 가상현실 영상을 만들었다. 아무도 그녀의 시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상 제작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해서 화면에 나오는 인물과 배경은 실사 대신 그래픽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전용 VR 헤드셋을 쓰고 이 영상을 보면 자신의 눈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바로 옆에서는 허기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도 보인다. 더 이상 빈곤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영상을 체험한 많은 사람은 굶주림에 쓰러진 사람을 돕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떤 사람은 안타까움에 안절부절 못하며 울부짖기까지 했다. ‘기아(Hunger)’라고 이름 붙인 이 작품은 미국의 빈민 문제에 대해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2012년 선댄스 영화제에 선보이면서 VR 저널리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기아’의 탁월한 공감 효과에 감명을 받고 시리아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는 난민에 대한 작품을 의뢰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프로젝트 시리아’라는 작품이다. 3차원 영상은 2014년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민간인 사이에 로켓포가 떨어진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안개 자욱한 시리아의 한적한 거리. 어디선가 소녀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고 허리를 숙일 때마다 폭풍 전야 같은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내 귀를 찢을 듯한 폭발음이 들리자, 희뿌연 먼지가 사방을 뒤덮으면서 시야가 흐려진다. 쓰러져 다친 사람 옆으로 한 남자가 딸을 안은 채 다급히 곁을 스쳐간다.”(2015년 4월, 미국 텍사스 대학교에서 열린 제 16회 국제온라인저널리즘심포지엄(ISOJ)에서 ‘프로젝트 시리아’를 체험한 몇몇 한국 기자들의 소감을 재구성).

스마트폰만 있으면 VR뉴스 시청 가능

‘프로젝트 시리아’는 2014년 다보스포럼에서 상연되며 내전에 고통받는 민간인의 참상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서도 전시되었는데 사전에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데라페냐 대표는 “VR 저널리즘은 그 어떤 형식과도 차별화된 본능적이고 강렬한 경험을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그곳에 당신이 있다(You are there)”는 한마디에서 VR 저널리즘이 갖는 힘이 느껴진다.

구글은 골판지로 만들어 스마트폰을 장착해 쓰는 가상현실 체험 기기 ‘카드보드’ 설계도를 인터넷에 무료 공개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옆으로 눕힌 뒤 화면을 좌우로 나누고, 각각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맞춰진 화면을 광각렌즈를 통해 보는 원리다. 카드보드용으로 만들어진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들은 사용자가 고개를 돌리는 방향에 맞춰 그에 맞는 화면을 보여준다. 사용자는 이를 통해 가상의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 느낄 수 있다. 앞으로 가상현실의 관건은 콘텐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VR 촬영장비나 재생장치 등은 삼성이나 LG 같은 우리 기업들이 하루가 다르게 개선해 나갈 것이 분명하니까 걱정할 게 없다. 허나 현재 무료로 많이 올라와 있는 롤러코스터 체험은 두세 번 하고 나면 지친다.

자동차 드라이빙 가상현실 게임은 5분 정도만 해도 멀미가 날 지경이다. 기존의 2D 콘텐트에 무조건 VR 옷을 입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3D에 어울리는, 3D여야 제 맛을 내는 콘텐트를 새로 발굴하고 개발해야 가상현실이 빛이 난다. 뉴스는 더욱 그렇다. 뉴스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활자나 스틸사진으로 전달할 것과 VR로 전달할 것을 구분하는 분별력이 필요하지 싶다.

마지막으로 주제 넘은 충고 하나. VR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즐기셔야 한다. 가장 좋게는 혼자 계실 때만 조용히 즐기시라. 그렇지 않아도 아무데서나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막장 드라마나 좀비 게임에 심취해 있는 모습은 이미 충분히 기괴해 보인다. 지하철의 모든 승객이 머리에 고글을 뒤집어쓰고 허우적대거나(해저탐험 VR), 발길질하고(격투기 VR), 야릇한 표정짓는(성인용 VR) 장면은 상상만 하기에도 벅차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325호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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