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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센터링경제학(16) | 축구 감독과 기업 CEO] 오너와 CEO 사이에도 ‘디렉터’ 도입? 

유럽 축구계에서 구단주와 감독 사이 ... 디렉터 둬 중재와 견제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펩 과르디올라 바이에른 뮌헨 감독. 그의 이적 소식은 올 겨울 축구계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 사진:뉴시스
유럽 축구에서 여름과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면 선수들의 이적이 소식이 가장 큰 이슈가 된다. 그러나 이제 선수 못지 않게 감독의 이적에도 이목이 쏠린다. 최근에는 펩 과르디올라 바이에른 뮌헨 감독의 맨체스터 시티행과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축구계 최대 이슈가 됐다. 이 밖에도 새 일자리를 찾는 주제 무리뉴 감독과 계약 만료 앞둔 디에고 시메오네 AT마드리드 감독 등 스타감독의 차기 행선지가 스포츠 외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감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제는 감독의 성향을 보는 것 자체가 유럽 축구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선수가 아니라 감독 대 감독의 대결이 각 경기의 포장지가 되기 시작했다. 방송사의 중계 예고 화면만 보더라도 선수가 아니라 감독 의 얼굴이 더 자주 나온다. 감독의 몸값도 선수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2월 2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미러가 공개한 과르디올라 감독의 새 연봉은 1950만 유로(약 256억원)다. 무리뉴 감독은 경질되기 전 연봉으로 1320만 파운드(약 230억원)을 받았다.

전술 다양화와 미디어 발달로 감독 영향력 커져


▎대표적인 전문경영인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 확고한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20년 간 회사를 이끌고 있다. / 사진:뉴시스
유럽 축구에서 감독의 비중이 커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실제 감독의 영향력 증가와, 이걸 확산시키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현대 축구로 오면서 축구전술은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정답이 없는, 물고 물리는 전술의 시대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줘야 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사전에 해둬야 한다. 또 팀 간 기본 수준 차가 좁혀졌다. 기본적인 체력·체격·시설 조건이 비슷한 팀이 맞붙게 되니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강조된다. 또 조직력이 강조되면서 개인 전술보다는 팀 전술이 비중이 커졌고, 그만큼 감독의 능력이 중요해졌다.

감독은 저마다의 전술철학과 운영 방식을 팀에 접목시킨다. 자연스레 경기에서 감독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고, 이것이 팀의 성적을 좌우하게 됐다. 감독의 개성이 뚜렷해지고, 이것이 경기력과 구단 운영으로 쉽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이 미디어를 타고 빠르고 강하게 확산된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 위원은 “감독의 발언과 일거수일투족이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면서 과거에 비해 축구팬들의 감독에 대한 관심이 커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감독은 기업으로 치면 일종의 전문경영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영인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감독은 구단의 소유와는 무관하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저 구단주가 선택한 피고용인일 뿐이다. 다만, 이들은 축구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구단주 대신 전권을 쥐고 팀의 전술과 장기 계획 작성 및 총괄 운영을 책임진다. 구단에 따라 구단주(또는 보드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도 있지만, 몇몇 스타감독은 구단에 전권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피고용인이 고용주의 간섭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전문경영인은 기업의 소유자(주식회사의 경우 대주주)가 아닌 사람이 최고경영자(CEO)의 지위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산업화 초기에는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되지 않아 소유주가 직접 경영을 맡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에 대한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경영인 체제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축구와 마찬가지로 기업에 따라 오너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도 있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는 기본적으로 오너는 소유만하고 경영은 경영인에게 맡기는 구조다. 이를 바탕으로 스타 전문경영인도 탄생했고, 덩달아 이들의 몸값도 올랐다.

그러나 국내 전문경영인의 위치는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축구감독이나 해외 CEO와는 사뭇 다르다. 전문경영인의 사전적 정의와도 거리가 멀다. 실질적 경영권은 대주주가 행사하고 전문경영인은 대주주가 위임한 사항과 시키는 일만 하는 명목상의 책임자에 머물고 있어서다. 국내 기업 중 ‘회장님’이 있는 회사의 ‘사장님’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경영 역량으로 선발되기 보다는 절대적 인사권을 휘두르는 대주주의 간택을 받아야 전문경영인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심지어 자기 보수의 교섭권도 없다. 회장님의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경영인의 존재감이 크지 않아 속된 말로 ‘바지사장’ 취급 당하기 일쑤다.

차이는 이들의 임기에서도 나타난다. 성숙된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한 자르지 않는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전문경영인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는 이유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내거나 조직이 큰 변화를 필요로 할 때뿐이다. 실제로 실적만 좋다면 오너 아닌 전문경영인도 장수한다. 최근 들어 단기 성과주의로 평균 임기가 3~4년으로 줄긴 했지만, 미국·일본·유럽에는 10년 넘는 장수 전문경영인도 드물지 않다. 가령 제프리 이멜트는 GE CEO로 취임한 지 20년 가까이 됐다. 그의 전임인 잭 웰치도 1981년 사장으로 취임해 20년 후인 2001년 은퇴했다. 비슷한 원리로 축구계에도 돈 레비·매트 버스비·빌 샹클리·지오반니 트라파토니·알렉스 퍼거슨·아르센 벵거 같은 장수 감독이 있다.

오너 입김에 허울뿐인 전문경영인 적지 않아


▎축구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디렉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세비야FC의 카스트로 회장, 에메리 감독, 몬치 디렉터(왼쪽부터). / 사진:돈 발론 트위터 캡쳐
이와 달리 국내 전문경영인은 ‘큰 문제가 없으면 2년 뒤 나가고, 잘못되면 그 전에 나간다’가 기본 설정이다. 따라서 비교적 수명이 짧다. 보통 1~2년, 길어야 3년이다. 연임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영 역량보다는 순서에 따라 주어진 자리라서 오래 앉아 있으면 ‘민폐’만 될 뿐이다. 축구에서 감독의 잦은 교체는 구단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하지만, 국내 기업은 CEO가 자주 바뀌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긴다. 이런 구조에서 조직원은 시한부 CEO가 추진하는 변화에 동참할 동인이 적다. CEO 스스로의 동기부여도 어렵다. 많은 기업에서 혁신이 구호에만 그치는 이유 중 하나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기업 구조에 대해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전문성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창업주는 훌륭한 경영인으로 볼 수 있지만, 2~3세 경영으로 넘어오면서 일부 경영인의 역량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 기업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며 “심지어 무능하거나 부도덕해도 교체하거나 견제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축구로 치면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의 사례가 있다. 그는 과거 팀 상황이나 전술보다는 자신의 선호에 따라 안드리 셰브첸코, 페르난도 토레스를 거액에 영입했다. ‘역대 최악의 영입’이라는 오명만 결과로 남았다. 전문성이 결여된 구단주가 전술과 선수 영입에 개입하면서 생긴 일종의 경영실패다.

전문경영인 체제는 경영의 전문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전문경영인이 장기적 관점에서 소유자만큼의 몰입 경영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른바 ‘주인-대리인 문제(prin cipal-agent problem)’다. 전문경영인이 주주 이익 극대화보다는 자신의 실적을 올리는 데 치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영의 전문성은 제고되는 대신에 책임경영이 약화되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기업가정신으로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회피하고, 단기적 이익 추구로 기업의 장기 이익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이제 막 부임한 감독이 단기 실적에 매몰돼 구단 재정을 무시한 채 무리한 영입을 하거나 미래를 위한 유소년 육성을 등한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혔는데도 확실한 지배주주가 없어 오히려 성과가 낮아질 수도 있다. 일본 상장사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오너(가족 포함)의 지분 소유 정도가 높을수록 전문경영인의 성과가 높게 나타난다. 오너 가문이 높은 지분 소유를 토대로 전문경영인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장기 전략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경영인이 있는데도 오너가 명예회장이나 고문 등의 명목으로 실제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경우 전문경영인의 성과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기 성과의 유혹 뿌리치기 어려워

결국 열쇠는 균형이다. 경영을 총괄하는 경영인과 이들이 사적·단기적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게 대주주가 견제·감시하는 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관건이다. 유럽 축구 구단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구단주와 감독 사이에 디렉터를 두기도 한다. 디렉터는 구단에서 선수 영입·계약·스카우팅 등을 책임진다. 예컨대, 감독이 디렉터에게 어떤 타입의 선수를 원하는지 말하면 디렉터는 각종 자료를 활용해 구단 운영과 재정에 맞는 리스트를 만든 후 감독과 상의한다. 혹은 감독이 직접 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말하면 디렉터가 영입 가능 여부를 조사해 알려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구단 운영 상황에 따라 감독이 원하지 않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선수가 영입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감독이 붙잡아두려는 선수를 구단 상황을 고려해 디렉터가 팔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디렉터 시스템의 목적은 구단 운영이 과거와 달리 복잡해졌기 때문에 감독이 경기와 훈련·선수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재정과 행정을 다른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감독의 독주를 제한하는 효과도 있다. 디렉터가 감독과 구단주 사이에서 둘을 중재·견제하면서 전권을 쥔 감독의 전횡이나 실적 위주 운영을 방지하고, 동시에 구단주의 개입도 절차상으로 막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몇몇 구단에서는 디렉터 시스템이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디렉터가 구단주의 ‘대변인’ 역할에 머물면서 감독을 흔들고 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기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디렉터 시스템은 구단주가 경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디렉터와 감독의 파트너십이 제대로 구현된다면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감독이 일정 권한을 포기하는 대신 구단주가 선수단과 경기 운영에 직접 개입할 여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이 기업 구조에까지 딱 들어맞진 않지만, 국내 기업경영 구조에 대한 고민 필요한 지금 축구의 경영 시스템도 한 번 참고해보는 건 어떨까.

- 함승민 sham@joongang.co.kr

1325호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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