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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증권가 앞날은] 덩치 키운 ‘뉴 빅3(미래·NH투자·KB투자)’ 한투증권 도전장 

합병으로 자기자본 크게 늘려 ... 삼성증권 향방 따라 판세 요동칠 가능성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증권가 뉴 빅3로 떠오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왼쪽부터).
판이 또 한번 크게 흔들렸다. 2014년부터 이어져온 증권 업계의 대형 인수·합병(M&A)이 일단락되면서 업계 서열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통의 강자들이 피인수로 자취를 감춘 자리에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KB투자증권이 새롭게 부상했다. 업계 1·2·3위에 자리한 이들 업체는 ‘압도적 1위 질주’ ‘선두 추격’ ‘견고한 3강 체제 구축’이라는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벌써부터 전력투구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 등 ‘빅3’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업체들도 만만치 않아 증권가에 밀어닥친 격랑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기세다.

업계 판도 재편의 선봉장은 NH투자증권이었다. 이 업체의 전신인 NH농협증권은 2013년 말 당시 자기자본이 870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다가 ‘거함’인 우리투자증권을 삼키는 이변을 일으키면서 하루 아침에 업계 판도를 뒤흔들었다. 두 업체가 합병해 탄생한 NH투자증권은 4조5000억원 대의 자기자본을 자랑하면서 단숨에 업계 1위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NH천하’는 오래 가지 못했다. 자기자본 4조원을 넘어서는 업계 2위, 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오면서다. 어떤 업체가 대우증권을 인수하더라도 NH투자증권의 2위 추락은 불가피했다. 승자는 미래에셋이었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합병이 완료되면 자기자본 7조7500억원으로 압도적인 업계 1위 증권사가 탄생한다.

전통의 강자 역사 속으로


대우증권 다음 변수는 현대증권이었다. 업계 1·2위를 다투던 전성기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현대증권 역시 자기자본 3조3000억원대의 대형 매물이었다. 원래 인수 후보자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곳은 한국투자증권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이 현대증권을 인수할 경우 자기자본이 6조6000억원으로 껑충 뛰면서 미래에셋증권의 압도적 1위 지위가 흔들리게 될 수 있었다. 증권판이 ‘양강 체제’로 재편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KB투자증권이 승자로 결정되면서 이런 시나리오는 현실화하지 못했다. KB투자증권의 현대증권 인수는 여러 측면에서 NH농협증권의 우리투자증권 인수와 비슷하다. KB증권 역시 자기자본 6000억원의 중소형 업체로, 덩치가 더 큰 업체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업계 선두권으로 부상하게 된 경우다.

어쨌든 인수합병 잔치가 마무리되면서 업계 ‘빅3’가 완전히 재편됐다. 단순한 순위 변경만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선두권 증권사들의 규모가 이전보다 커지게 됐다. 덩치를 불린 증권업은 이전과 양태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초대형 증권사는 위탁매매(브로커리지)와 펀드 판매를 통한 수수료 중심의 기존 증권업 모델이 아니라 막대한 자기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자기자본투자(PI)와 자산관리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고 미래의 변화상을 예상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한국의 금융 빅뱅은 자본시장에서 불어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선두권 업체들의 행보는 야심차다. 가장 적극적인 건 미래에셋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대우증권의 인수 잔금을 치르기도 전에 발 빠르게 나섰다. 대우증권의 회장직을 맡기로 결정하면서 최일선에서 통합작업을 진두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회장은 이를 위해 공식 직함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회장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다만, 박 회장은 바쁜 일정과 잦은 해외 출장 등을 고려해 대우증권 회장직을 비상근 미등기 임원 형태로 수행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지난 4월 4일 일찌감치 홍성국 대우증권 사장 등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홍 사장에게 미래에셋 배지를 달아줬다. 이어 “통합 증권사 사명은 ‘미래에셋대우’로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4월 7일 잔금 납부 직후 대우증권 회장 취임, 15일 양사 통합추진위원회 출범, 17일 양사 임원진이 참여하는 합동 워크숍 진행 등 통합 작업은 속전속결식으로 진행된다. 초대형 ‘메가 증권사’의 탄생 목표일은 10월 1일이다. 박 회장은 통합 미래에셋대우증권을 ‘한국의 노무라증권’으로 키울 계획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자기자본 28조원의 아시아 최대 증권사이자 일본 증권 업계를 ‘노무라 대 비(非)노무라’로 양분할 정도의 압도적 1위다. 노무라처럼 미래에셋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업체로 성장시키겠다는 의미다.

NH투자증권은 2년 만에 업계 1위 자리를 내주게 됐지만 1위 재도전을 쉽게 포기할 태세는 아니다. 오히려 2년 동안 ‘합병 리스크’가 거의 해소되면서 올해부터는 NH농협지주의 방대한 조직을 활용한 시너지 효과 창출을 본격적으로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는 “농협그룹이라는 캡티브 시장(계열사 등을 활용한 마케팅)에서 안정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분명 시장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NH투자증권은 단기간에 NH농협지주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2150억66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5.2% 증가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금융투자 등 비은행 분야를 미래 먹을거리로 여기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KB투자증권의 행보 역시 주목거리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통합 증권사를 발판 삼아 그룹을 ‘한국형 BoA메릴린치’로 키운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2008년 메릴린치증권을 인수한 뒤 은행 자산관리와 기업금융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얘기다. KB금융 측은 “은행과 증권이 결합한 이 모델을 참조해 한국형 유니버설뱅킹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선두권 금융그룹인 KB에 전통의 명가(名家)인 현대증권이 제대로 녹아들면 이른 시일 안에 급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민은행의 뛰어난 소매금융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증권가의 선두권 구도가 고착화할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3위가 된 KB투자증권과 다른 업체 간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모두 3조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은 ‘다크호스’가 될 만하다. 비록 대우증권 인수전과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연거푸 패했지만 인터넷은행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이 업체는 곧 출범할 인터넷전문은행인 한국카카오은행 지분 5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한국카카오은행이 제대로 가동되면 한국투자증권의 지주사인 한국금융지주는 염원하던 은행계 금융지주사로 탈바꿈한다. 오너의 야심도 이 업체가 현 주소에 만족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20년까지 아시아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카카오은행이 한투증권의 비장의 무기?

삼성증권도 업계 판도를 뒤바꿀 변수가 될 수 있다. 한 때 시장에서는 삼성증권 매각설이 나돌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다”는, 진위 여부를 떠나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이유도 곁들여졌다. 이 사안은 지난 1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이슈가 불거지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삼성 측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관심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자기자본 3조5000억원 대의 삼성증권이 매물로 나온다는 건 업계 서열이 또 한번 바뀔 수 있는 대사건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M&A가 일단락되면서 업계 서열이 일단 재편됐지만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미지수”라며 “미래에셋 대우증권을 제외하고는 업체간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변수만 발생해도 순위는 삽시간에 뒤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1330호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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