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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이 한 문장] 진지한 잔소리꾼을 곁에 둬라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 경영연구원장
‘사려깊은 군주는 현명한 사람들을 선출하여 이 사람들에게만 군주에게 사실대로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되, 군주가 묻는 문제에 한할 뿐 다른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군주는 그들의 의견을 들어 그 뒤에는 혼자서 자기 나름대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군주론 23장
자연계에서 태양과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커지듯이 인간계에서는 권력과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힘이 커지지만 ‘너무 가까우면 타 죽고, 너무 멀면 얼어 죽는 양면성’을 가진다. 또한 가까울수록 군주의 개인 성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심기를 잘 살피고 굴신하는 아첨꾼들로 채워지기 쉽다. 군주도 사람인 이상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속성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주변의 찬사에 속아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군주는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파멸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군주도 전지전능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주변의 조언을 들어서 부족함을 보완하고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독단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조언이 중구난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관점이다. 역량있고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신하들에게만 진실한 조언을 구하고 심사숙고 하되, 나머지 조언은 사실상 무시하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의사결정자의 입장이 되면 판단을 위해 많은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식견에 바탕을 두면서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조언자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조언의 형태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따라서 역량있고 충직하면서 객관적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조언자를 두는 것은 성패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전설의 요순시대 이후 최고의 태평성대로 일컬어지는 당나라 태종의 치세에는 현명한 조언자 위징이 있었다. 당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처참한 패배를 당하였지만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될 만큼 안팎으로 훌륭한 정치를 펼쳤다. 그는 왕권이 안정된 후 자신을 반대한 공신들도 존중했고 문벌보다는 실력에 방점을 두고 인재를 발굴했다. 이러한 정책의 핵심에 위징이 있었다. 위징은 원래 당 태종의 형인 이건성의 핵심 참모로서 당 태종을 제거하는 반대편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 태종은 명확한 비전과 냉정한 판단력을 높이 평가하고, 죄수 신분으로 전락한 위징을 발탁해 신하로서는 최고의 지위인 시중으로까지 임명했다. 당 태종으로부터 독단에 빠지는 황제에게 제동을 거는 역할을 부여받은 위징은 17년 간 무려 300여회에 걸쳐 당 태종의 정책을 비판하였고, 당 태종도 인간인지라 격분한 적도 수차례였지만 내치지는 않았다. 위징이 죽은 후 당 태종이 남긴 추모사가 후세에 전해진다.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과거 역사를 거울로 하여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기의 장단점을 분명히 한다. 나는 세 종류 거울로 허물 범하기를 방지했으나 지금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었다.’ ([정관정요] 임현(任賢)편)

-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 경영연구원장

1338호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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