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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객 증가에 커지는 캐리어 시장] 럭셔리 브랜드 속속 한국 상륙 

영국 ‘글로브트로터’, 프랑스 ‘무아나’, 독일 ‘리모와’ 출사표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영국 유명 인사들이 애용하는 ‘글로브트로터’.
해외 여행 인구가 급증하면서 여행가방은 필수품이 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1분기 해외로 여행을 떠난 국민은 555만842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늘었다.

과거엔 싸고 튼튼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내구성을 갖추면서도 가볍고 특별한 디자인을 찾는다. 업계 관계자는 “여행 수요가 늘면서 가방 선택이 여행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며 “고가일수록 살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있게 마련이고, 자연스레 남과 다른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가 캐리어 선호도 높아져


▎알루미늄 캐리어를 주로 만드는 독일 ‘리모와’.
고가 캐리어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자 명품 여행가방 브랜드도 국내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프랑스 여행용 트렁크 브랜드 ‘무아나’는 올 7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1층 정문 옆에 국내 첫 매장을 연다. 1849년 프랑스에서 시작한 무아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행용 트렁크 브랜드다. 앞서 영국 브랜드 ‘글로브트로터’는 6월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과 갤러리아 명품관에 문을 열었다. 1897년에 설립된 글로브트로터는 엘리자베스 2세가 신혼여행 때 사용했고, 윈스턴 처칠이 재무장관 시절 애용했던 제품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영국 왕세자 내외를 비롯해 데이비드 베컴, 엘튼 존, 케이트 모스 등 유명 인사들이 이용할 만큼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다.

글로브트로터의 설립자는 가황 처리된 섬유를 형성하고 구부리는 방법을 발명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가볍고 튼튼한 가황 섬유를 활용해 캐리어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여행가방은 주로 가죽이나 캔버스·압축섬유로 만들어 무겁고, 비에 젖으면 변형이 쉬웠다. 특수 제작한 종이 14겹을 접착하는 방식으로, 종이지만 내구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 회사는 1912년 코끼리가 올라타도 부서지지 않는다는 광고를 내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가죽 끈과 손잡이 등을 각 분야 장인이 모두 맞춤형으로 제작한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하루에 20개만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가격이 200만~300만원을 호가한다. 회사 관계자는 “글로브트로터는 영국에서 100년을 사용하는 여행가방으로 알려졌다”며 “자식은 물론 손자에게까지 대대로 물려줄 정도로 견고한 점을 고려하면 가격만으로는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프리미엄 시장이 커지고 있고, 특히 삶의 질을 높이는 여행과 관련된 제품인 만큼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여성을 중심으로 가방 브랜드가 인기를 끄는 것과 달리 여행을 즐기는 남성 고객 덕분에 유명해진 제품도 있다. 독일 리모와다. 이 브랜드는 최근 2년 간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남성 여행객들이 사용감이 좋으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캐리어를 찾기 시작하며 이 브랜드가 각광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복고 열풍을 타고 스크래치가 나거나 손때가 탄 제품이 오히려 멋스럽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알루미늄 캐리어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고 말했다.

리모와는 알루미늄 캐리어를 주로 제작하는데, 10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에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리모와는 그루브 디자인(좁고 긴 홈이 있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토파즈’가 대표 상품이다. 이 캐리어는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을 주 성분으로 하는 경합금 소재 ‘두랄루민’으로 만들었다. 두랄루민은 1930년대 독일의 비행기 ‘융커스’를 만드는 데 썼는데, 이 비행기는 매우 가벼워서 당시 보통 비행기들이 나르지 못한 크고 무거운 기계나 물자 운송에 주로 이용했다. 이 비행기 디자인에서 착안해 만든 토파즈 역시 항공기 전용 초경량 알루미늄으로 제작해 가볍고 견고한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 열대지방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했기 때문에 완벽한 밀폐력을 자랑해 온도와 습도 변화에도 강하다.

360도 회전 가능한 바퀴가 한 쪽에 2개씩, 총 8개 탑재돼 한가득 짐을 넣어 무거워진 캐리어를 이동시키기에 편리한 것도 장점이다. 노면 조건에 상관없이 부드럽고 안전한 이동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리모와 관계자는 “텔레스코픽 손잡이가 장착돼 있어 방향 조정이 쉽고, 가방 탈부착 홀더가 탑재돼 핸드백이나 서류가방을 걸기에도 편하다”고 설명했다. ‘수공이 곧 첨단기술이다’라는 철학 아래 90단계 이상 세분화된 제조 과정과 독일 장인의 수작업을 거쳐 유럽에서 직접 생산돼 ‘여행가방계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제로할리버튼은 ‘007 시리즈’를 비롯해 [인셉션] [미션임파서블] 등 각종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에 단골 소품으로 자주 등장해 일명 ‘007가방’으로 유명한 브랜드다. 1938년 세계 최초로 여행가방에 알루미늄 소재를 도입한 기업이기도 하다. 대표 제품 라인에는 440t의 압력과 섭씨 537.7도 이상의 고열로 주조한 항공우주 소재인 ‘투톤코일 알루미늄’이 사용된다. 숙련된 장인의 수작업을 통해 250단계 이상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열처리 된 알루미늄 외장은 강철같이 견고하지만 무게는 강철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견고하게 제작된 경첩은 180kg 이상의 무게도 견딜 수 있다. 제로할리 버튼은 강한 내구성을 인정받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카메라와 같은 민감한 물건들을 운반하는 가방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윈도우 XP를 발표할 때 원본 운반에 제리할리버튼을 사용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의 월석을 담아 온 가방도 제로할리버튼이다. 대중적인 모델의 가격대는 100만원 선이다.

멋스럽고, 가벼운 알루미늄 캐리어 인기

‘가볍고 폼나는’ 캐리어 열풍을 타고 쌤소나이트그룹 산하의 명품가방 브랜드 하트만 역시 최근 알루미늄 캐리어를 내놨다. 새롭게 출시한 ‘7R 마스터’는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200개 이상의 부품과 40개 이상의 특수 도구가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품 역시 완성까지 총 250단계 이상의 공정을 거친다. 가방 외형에 윤곽을 내는 프레임 작업부터 광택을 내는 폴리싱, 바퀴 조립, 로고 부착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과정이 전문 장인의 정교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수제 캐리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하트만 관계자는 “손잡이 부분에 가죽이 사용돼 캐리어를 끌 때 그립감이 뛰어나고 바퀴에도 특수한 시스템을 적용해 부드럽고 조용하게 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커지면서 고객 역시 세분화돼 고가 캐리어를 찾는 사람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곤 하지만 해외 여행객이 꾸준히 늘고 있는 점을 봤을 때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339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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