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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광고기업 상화 정범준 대표] 생각하면 곧바로 실행한다 

국내 첫 로봇VR 만들어 … 삼성전자·현대차 등 고객으로 확보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정범준 대표가 경기도 이천에 자리한 상화의 미디어융복합연구소 랜디(RANDI)에서 로봇VR을 타고 있다.
“이 특허면 앞으로 걱정 없이 살겠구나.” 상화의 탄생은 엉뚱한 기대에서 출발했다. 정확히는 극장에서 시작됐다. 2006년,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던 정범준씨의 눈엔 스크린 속 광고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관객들이 신기하게 보였다. HSBC 펀드브로커로 일하다 제일기획에서 기업 전략 수립을 담당하던 이 사내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스크린이 광고 매체가 될 수 있겠다.’ 스크린에 얇은 테두리를 장식해 TV처럼 꾸몄다. 특정 브랜드만 붙이면 해당 브랜드의 TV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로 특허 등록을 했다. HP(휴렛팩커드) 아이디어 공모전에 출품해 상금 10만 달러를 받았다. 정범준씨는 상금으로 2007년 광고회사를 설립했다. 설립 멤버는 현재 이 회사에서 기술을 총괄하는 이은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포함 세 명. 회사 이름은 입주한 건물 이름과 같은 ‘상화’로 지었다. 당시엔 건물 한 층의 일부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이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다.

“창업 후 1년 반 동안 일이 전혀 없었어요. 기발한 특허 하나면 돈방석에 앉을 줄 알았습니다. 특허는 등록보다 사용료를 받기 위한 영업이 중요하단 걸 몰랐죠.” 운영자금이 바닥날 때쯤 정 대표는 USB 200개를 구매해 무작정 하루 5곳을 정해 광고주를 찾아 다니며 일감을 구했다. 변화를 모색할 기회를 찾은 건 201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정 대표는 이곳에서 상화의 비전을 발견했다. “다들 콘텐트 자체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반대로 저는 콘텐트를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정 대표는 심리서적을 읽으며 방법을 찾았다. 그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사물에 일단 시선을 빼앗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고정된 스크린을 움직이면 사람들이 주목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는 곧장 로봇 전시회가 열리는 독일에 가서 산업용 로봇 한대를 구매했다. 로봇 가격 1억원을 지불하고 나니 회사 통장 잔고는 거의 비었다. “저는 생각하면 바로 실행해야 하는 성격입니다. 고정된 화면을 시청자가 외면하듯 내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클라이언트는 떠난다고 생각했죠.”

산업용 로봇을 변형해 LED패널을 설치해 보기도 하고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도 진행했다. “2009년 경기도 동탄에 마련한 80평 규모의 미디어 실험실에서 로봇을 활용한 촬영과 영상 퍼포먼스를 연구했습니다.” 로봇을 이용한 영상물은 기대보다 만족스러웠다. 자신감이 생긴 정 대표는 해외 기업에 e메일을 보냈다. ‘로봇으로 촬영하고 로봇 퍼포먼스로 귀사 콘텐트의 주목도를 높입니다.’

굳이 국내가 아닌 해외 기업에 e메일을 보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싶었어요. 메일을 보내고 답변 오기 전에 곧장 해외로 사업 수주하러 간다며 나갔습니다.” 먼저 러시아·중국 기업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다음은 두바이. 다행히 두바이 최대 통신사인 DU MOBILE이 관심을 보였다. “로비에서 3시간을 기다리다 안 될 것 같아 일어나려는데 내려오더군요. 그날 부사장까지 만나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콘텐트 빛나게 만들 방법 고민

일감을 수주해 돌아온 이후 국내에서도 상화를 찾기 시작했다. 정범준 대표는 로봇을 추가로 사들였다. 2013년, 로봇을 이용한 촬영뿐 아니라 다양한 영상 실험을 위해 경기도 이천에 1000평 규모의 R&D 시설 ‘랜디(RANDI)’를 만들었다. 이곳엔 지금까지 상화가 들여와 변형한 로봇 30여대를 포함 다양한 촬영 장비가 있다. 그는 “지금도 촬영에 필요하다 싶으면 로봇뿐 아니라 어떤 장비든 사지 않고 랜디에서 우리가 쉽게 다룰 수 있도록 직접 만듭니다”라고 말했다. 랜디에선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이너 관점으로 로봇을 제어할 수 있도록 자체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다. 매버릭(MAVERICK)을 통해 상화는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피사체 움직임을 따라 세밀한 촬영이 가능한 오브젝트 트레킹(Object Tracking)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무중력 상태를 실감나게 표현한 것도 이 오브젝트 트레킹 기술 덕분이다. 이 기술을 가진 기업은 아시아, 유럽 기업 중 상화가 유일하다.

매버릭을 통해 상화는 사람이 촬영할 수 없는 각도, 카메라 이동 속도를 구현했다. 가령 물방울이 연속으로 떨어지거나 화염이 폭발하는 순간, 다양한 색상의 가루가 퍼져나가는 순간 등 찰나를 2.5m/s 속도로 움직이며 촬영할 수 있다. 지난해 상화는 이 기술로 삼성전자 커브드UHD 화질데모 영상을 만들어 ‘2015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로봇을 도입한 게 분명 큰 전환점이긴 했지만 2009년부터 상화는 3D 촬영, 드론 등을 직접 만들며 연구했습니다.”

정 대표의 말처럼 광고 시장에서 상화의 존재감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드러났다. 지난해 서울모터쇼에서 현대차가 17년 만에 내놓은 트럭 ‘올뉴마이티’가 로봇 팔에 설치된 4개의 LED 패널 속 영상과 조화를 이루며 소개된 것이다. 당시 업계에선 “최근 제품 출시 행사 중 가장 이색적이고 실험적인 퍼포먼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로봇과 함께 상화가 공들여온 VR기술도 성과를 인정받았다. 지난 2월 2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16 MWC 행사장에 모인 5000여 명이 상화가 만든 VR콘텐트로 삼성의 신작 스마트폰 갤럭시S7를 접했다. 세계 최초로 VR 프리젠테이션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고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여기저기 나왔다. 상화의 기술력을 눈여겨본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상화와 손잡고 다양한 콘텐트를 제작하고 있다.

매버릭의 성능은 4월에 열린 20대 총선에서도 입증됐다. MBC 선거개표방송에서 LED패널을 팔에 단 상화의 로봇 스크린이 실시간 개표 현황 화면을 전달한 것. 로봇 스크린을 이용한 생방송은 세계 최초의 실험이었다. 정 대표는 “매버릭을 통한 로봇 제어 기술이 생방송에서도 안정적으로 구현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상화는 지난 5월 중국 베이징에 연락사무소 개념의 사무실을 설립했다. 상화의 첫 해외 사무실이다. 상화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의 광고 제작 문의가 많아 설립했다”고 말했다.

20대 총선 개표방송에서 로봇 스크린 인기

정범준 대표는 ‘생각하면 즉각 실행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로봇 제어기술과 VR 콘텐트 기술 등을 자체적으로 보유한 정 대표는 올해 1월 생각했다. ‘둘을 합쳐보면 어떨까.’ 이미 상화가 보유한 기술이니 만큼 접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3개월 만에 국내 최초 로봇VR이 만들어졌다. 로봇에 탑승해 VR기기를 착용하면 VR영상과 동일하게 로봇이 움직여 실감을 극대화했다. 정 대표는 최근엔 3D영상과 드론을 결합한 장비를 개발 중이다.

광고기업이 이 많은 로봇과 기술을 어떻게 보여주려고 할까. 정 대표는 “로봇과 VR, 3D영상을 접목한 클럽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이 좋을 듯싶어 물색하고 있다. 로봇VR을 이용한 테마파크도 고려하고 있다.

1341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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