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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친정 기업’ 살리려 사재 내놓고 백의종군 

2M 해운동맹과 협상 중... 자율협약 9부 능선 넘어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왼쪽)이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6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금융시장 현안 및 주요 금융 개혁 과제’ 조찬강연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 생존의 요건을 사실상 모두 갖추는 데 성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상선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세계 1·2위 선사(머스크·MSC)와 함께 해운동맹을 체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과 해운동맹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이 해운동맹에 가입하면 채권단이 요구한 자율협약의 조건을 100% 충족하게 된다.

대주주 지분 감자 후 현대상선 공식 분가

현대상선이 올 초 자율협약을 신청하고 요건을 사실상 갖추는 과정에서 가장 마음을 졸인 건 현정은 회장이었다. 현정은 회장은 남편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 세상을 떠나자 대신 회장직에 올랐다. 취임 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까지 6년 간 해운경기는 활황이었고, 현대상선 이익률도 높은 편이었다.

문제는 해운 경기가 고꾸라지면서 벌어졌다. 수년 간 해운 업황이 부진하자 현대상선은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활황일 때 비용을 절감하고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는 등 경쟁력 강화 조치를 펼쳤어야 하지만 현대상선은 본업과 거리가 먼 곳에 투자했다. 실제로 해운 경기 악화 이후 현대그룹은 남산 반얀트리 호텔을 인수하고 연수원을 신축했다. 현대건설 인수를 두고 현대자동차그룹과 경쟁하기도 했다.

물론 현정은 회장 측에서는 이런 ‘경영 실패’라는 주장에 대해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항변한다. 정부가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관리하면서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양대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현대상선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부분이 현 회장 측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결국 현정은 회장은 지난 3월 현대상선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으면서 300억원의 사재출연과 현대증권 매각이라는 고강도 자구안도 내놨다.

오는 7월 15일 대주주 지분을 7대1 비율로 줄이는 추가 감자가 이뤄지면 현대상선의 대주주는 채권단으로 바뀐다. 대주주 감자 후 지분율은 현대엘리베이터(3.05%), 현대글로벌(0.31%), 현정은 회장(0.29%) 등 총 3.64%로 줄어든다. 앞서 현대상선은 지난 3월에도 일반 주주를 상대로 7대1 비율의 감자를 했다.

무상 감자 후 한때 국내 최대(1위) 재벌 집단이었던 현대그룹도 공정거래위원회 대규모기업집단 기준(자산규모 5조원)을 충족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신분이 바뀐다. 지난해 공정위가 산출한 공정자산 기준 현대상선(6조4768억원)·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3조3939억원)가 빠져나가면 현대그룹 공정자산은 2조700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현정은 회장은 이미 자산총액 기준 1·2위 계열사를 품에서 떠나 보낼 채비를 해왔다. 현대상선 소속 임원 일부는 보유 중이던 현대상선 주식(2300~5200여 주)을 매각하고 현대그룹 계열사로 적을 바꿨다.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에서 근무하던 현대상선 직원도 일부는 현대상선에 남고, 일부는 현대엘리베이터 등으로 소속을 변경했다.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7~8월경 출자전환해 현대상선 최대 주주(지분율 약 40%)로 올라설 예정이다. 사채권자와 해외 선주들도 출자전환 후 각각 20% 안팎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상선을 떠나보내면서도 현대상선 회생에 전력한 이유는 현 회장 아버지가 세운 기업이기 때문이다. 1964년 고(故) 현영원 회장이 설립한 신한해운은 1984년 사돈회사인 현대그룹에 편입되고 현대상선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사재까지 출연해 현대상선 회생 의지를 보인 것도 현대상선이 사실상 친정 회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아직 현대상선 회생까지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하지만 해운 업계에서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2M이 현대상선에 먼저 손을 내민 이상 마지막 고비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일단 2M은 오션동맹과 경쟁 중이다. 해운 조사업체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4월 기준 2M의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은 572만8698TEU(1TEU: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로 다른 경쟁 해운동맹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향후 변경되는 해운동맹사 구성을 고려하면, 조만간 2M동맹의 시장점유율(34.7%)은 오션동맹(39%)에 뒤처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상선은 매력적인 파트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미주항로 점유율은 3.7%(11만6059TEU·세계 14위)다. 현대상선이 참여하면 2M은 3개의 글로벌 해운동맹 중 가장 취약(점유율 18.9%)한 미주항로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현재 미주항로 점유율은 오션동맹(39.6%)이 가장 앞서고, 디 얼라이언스(34.9%)가 뒤따른다. 2M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주항로가 취약하다.

2M 동맹 가입 가능성 커

구주항로(37.1%) 독식 체제도 강화할 수 있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4월 구주항로에서 2.7%의 항로점유율(13만2068TEU·세계 11위)을 기록했다. 구주항로는 통상 10개 이상의 항구를 경유한다. 최소 8척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하고, 항구마다 인력을 배치하면 노선당 최소 2조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2M 입장에선 구주항로 11위 선사는 매력적인 동맹사다.

선대 경쟁력도 나쁘지 않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보유한 1만2000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은 총 10척(12만8325TEU)이다. 황진회 한국 해양수산개발원 실장은 “2M 동맹은 유럽 선사들로만 구성됐다”며 “해운동맹은 한 번 결성하면 5년 이상 장기 계약하는데 아시아계 해운사 전원이 해운동맹 파트너를 결정하자 2M이 현대상선에 러브콜을 보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오션 동맹은 중국계(중국·대만·홍콩)가 주축이고, 디 얼라이언스에도 한국·일본·대만 선사가 참여했다. 하지만 2M은 유럽계 해운사로만 구성돼 있다. 머스크는 덴마크, MSC는 스위스·이탈리아 계열이다.

현정은 회장도 적극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상선 고위 관계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머스크 고위급 경영진과 친분을 유지해온 것이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정은 회장은 해외 선주들과 용선료 협상 당시에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조디악 회장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협상 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1342호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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