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참뜻은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9월은 탱자가 노랗게 익어가는 때다. 감귤처럼 생긴 탱자는 향기는 좋지만 먹지는 못한다. 식물학적으로 둘 다 운향과에 속하지만 하나는 식용으로 쓸모가 많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는 이 두 가지 열매를 두고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었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재상인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러자 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 와서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고 힐책했다. 이에 안영이 귤화위지에 비유하면서 제나라에 사는 사람 중에는 도둑이 별로 없는데,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도둑질을 많이 한다면 이는 초나라 풍토의 문제가 아니겠느냐며 반론을 펼쳤다.

기후와 토양이 바뀌면 정말로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릴까? 필자가 청소년기에 이 한자를 처음 접했을 때는 제주도 귤나무를 가져와 서울에 심어보고 이게 정말인지 알아봐야겠다고 맘먹은 적이 있었다. 말의 참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귤화위지는 생물학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도·환경의 차이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추구하는 목표와 행동, 선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비유한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다.

어찌 보면 동·식물은 자연환경에 적응적 진화하는 데 애를 쓰는 반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의 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속성이 많다. 예컨대 일 잘하는 사람을 제대로 보상하고 해악을 끼친 사람을 적절하게 제재하며, 귤과 탱자를 혼동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누구나 성실하게 일하려는 유인이 있다. 그러나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예측불가능하고, 내가 부린 재주에 다른 사람이 공을 채가는 조직에서는 힘 있는 자와의 친분 맺기 정치를 앞세워 비정상적인 잇속을 챙기려는 탱자족이 우세하게 마련이다. 탱자족에 끼지 못하는 대다수 구성원들은 냉소주의에 빠지면서 조직의 파망(破網)을 재촉할 것이다.

어느 조직, 어느 사회든 탱자족과 귤족 중 누가 우대받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제도에서 비롯된다. 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영국의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멤버였던 이사벨라버드 비숍은 조선을 방문, 탐사하고는 [한국과 이웃 나라들]이란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비숍은 조선인에 대한 첫 인상이 지저분하고 게으르고 가망 없다고 느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시베리아에 이주한 조선인들을 만나서 그들이 근면성실하게 일하고 재산을 모은 것을 보고는 생각을 바꾼다. ‘조선에서 농부들이 양반과 관료들의 가혹한 세금 등으로 이익이 안전하게 보호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만 경작하고’, 시베리아 정착민들도 ‘그대로 조선에 있었으면 똑같이 근면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비숍의 결론이었다.

지금도 기업조직을 포함한 도처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잘되는 음식점은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누가 주인이고 종업원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다들 열심히 일하는 특징이 있다. 노력과 보상의 연계에 대한 주인과 종업원 사이의 신뢰가 남다른 협력과 고객 응대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가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려 있는 노란 열매를 혹시라도 보게 되면 한번쯤 자문해보시라. 우리 회사는 탱자가 잘되는지 아니면 귤이 잘되는지.

1351호 (201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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