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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꿈의 나라 vs 공포의 나라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국서 인종·종교 둘러싼 갈등 수시로 표출 … 한국도 다문화 사회 대비 서둘러야

흔히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한다. 대개 좋은 의미로 쓰이지만 최근에는 꼭 그렇지 만은 아닌 듯싶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본토를 타깃으로 한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이후 미국에서는 인종과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수시로 표출되고 있다. 인도 태생의 작가이자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인 아난드 기리드하라다스(Anand Giridharadas)는 9·11 테러 며칠 후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을 얘기한다. 그 속에는 지치고 일그러진 미국의 맨 얼굴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같은 땅에 존재하는 두 개의 미국, 꿈의 공화국과 공포의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거침없는 입담 속에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배타적이었는지, 또 얼마나 착각 속에 빠져 살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JTBC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의 주요 출연진.
#1. 피해자의 삶: 방글라데시에서 공군 장교였던 라이수딘 부이얀(Raisuddin Bhuiyan)은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왔다. 평소에 관심 있던 정보통신 강좌도 듣고, 또 결혼식 비용까지 마련해야 해서 그는 텍사스 주 달라스의 작은 마트에서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 밤, 만(卍)자 문신을 새긴 백인 남자가 산탄총을 들고 마트에 뛰어들었다. 대처 방법을 알고 있던 라이수딘은 두말 않고 현찰을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남자는 돈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라며 소리를 질렀다. “뭐라구요(Excuse me)?”라고 되묻는 라이수딘의 목소리에는 이민자의 억양이 강하게 묻어 나왔다. 그 순간 남자의 총에서 발사된 수십 발의 산탄 총알이 그대로 라이수딘의 얼굴에 박혔다. 피범벅이 된 얼굴을 감싸 쥐고 계산대 뒤로 쓰러진 라이수딘. 하지만 신의 가호가 있었던지 간신히 목숨은 건 질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삶은 처절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오른쪽 눈을 잃었고, 결혼을 약속했던 약혼녀도 그의 곁을 떠났다. 집주인이었던 마트 주인은 그를 거리로 내쫓았고, 병원은 입원 하루 만에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그를 쫓아냈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6만 달러의 병원비뿐. 방글라데시의 가족들은 그에게 돌아오라고 애원했지만, 라이수딘은 그럴 수 없었다. 못다 이룬 꿈 때문이었다. 상처가 아물자마자 그는 새로이 텔레마케팅 일을 시작했고, 그 다음엔 더 수입이 좋은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했다. 억척같이 일한 덕분에 최고의 웨이터로 인정을 받고 차곡차곡 돈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다 한 IT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조금씩 실력을 쌓았고, 마침내 달라스의 일류 기술 회사에 억대 연봉을 받고 채용될 수 있었다.

#2. 가해자의 삶: 미국에서 태어난 마크 스트로맨(Mark Stroman)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도 다른 많은 미국 젊은이들처럼 나쁜 부모, 나쁜 학교, 나쁜 감옥을 거치면서 서서히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수염도 나기 전에 체포되어 처음에는 소년원에 갔고, 어른이 되어서는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는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자가 되어 갔고 화풀이 대상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9·11 테러가 터진 것이다. 그는 애꿎은 무슬림 세 명에게 복수의 총질을 해 댄 혐의로 붙잡혀 사형을 선고 받았다(총을 맞은 세 명 중 단 한 명, 라이수딘만 살아남았다).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스트로맨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을 좌우해온 증오에서 차츰 벗어날 수 있었고, 목사와 기자, 유럽의 펜팔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되었다. 그는 몸에 문신을 새긴 것을, 또 죄 없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신(神)을 받아들였다.

#3. 용서와 사과: 사건이 일어난 지 8년 후인 2009년 어느 날, 메카로 순례 여행을 떠난 라이수딘은 문득 오래 전 신께 한 맹세를 떠올렸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죽음을 예감하면서 그는 만일 자신에게 두 번째 삶이 주어진다면 인류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알라신과 약속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그 약속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느꼈다. 그가 택한 방식은 이슬람과 서방의 끝나지 않는 복수극을 중재하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텍사스 주지사에게 편지를 써서 스트로맨의 사형 집행을 재고해 줄 것을 탄원했다. 2011년 7월, 라이수딘이 배심원들 앞에서 스트로맨의 구명을 눈물로 호소한 바로 그날, 두 남자는 생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라이수딘: “마크, 제가 신에게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저는 당신을 용서하고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한번도 미워한 적 없어요.”

스트로맨: “당신은 대단한 분입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드립니다. 형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스트로맨이 사형당한 후 라이수딘은 스트로맨의 맏딸을 찾아 “너는 비록 아버지를 잃었지만 삼촌을 얻었단다”라며 경제적 도움을 제안했다고 한다.

미국은 산업화된 시대에 가장 성공한 국가이면서 가장 실패한 국가이기도 하다. 극단적인 빈부 격차에 종교와 인종의 갈등이 뒤엉켜 있다. 9·11 테러가 있던 2011년, 텍사스의 작은 마트에서 충돌한 것은 두 남자가 아니라 두 개의 미국이다. 여전히 희망을 품고 내일을 향해 전진하는 미국과 불안과 증오에 사로잡혀 편협한 인종주의로 물러앉은 미국 말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도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2007년 100만 명, 2016년 200만 명을 거쳐 향후 5년 내에 300만 명을 넘어 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귀화한 외국인(통계상 내국인)은 제외한 수치인데도 그렇다. 지금까지 단군의 자손임을 너무 강조해서 그런지 우리는 다문화(multi-culture) 혹은 다양성(diversity)에 대해 준비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느 순간 성큼 다가온 다문화 시대가 우리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순전히 우리 노력 여하에 달렸다.

가장 먼저 이방인을 대하는 우리 자세부터 돌아봤으면 한다. 만에 하나 피부색이나 언어, 출신지에 따라 눈빛과 태도를 달리해 왔던 건 아닌지 말이다. 다양성에 대한 기초 준비가 필요하신 분들께 JTBC의 [비정상회담]을 권한다.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거침없는 입담 속에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배타적이었는지, 또 얼마나 착각 속에 빠져 살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비정상회담의 어록 몇 개 옮겨본다. ‘한국인들은 자신만의 색을 내기보다 서로 엮이려고만 한다’ ‘가난한 나라에 대한 차별이 심하고, 양보와 배려에 인색하다’ ‘김영란법 같은 법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것이 놀랍다’. 흠, 역시 쓰다. 내친 김에 가벼운 걸로 세 개만 더. ‘한국에서 명절 좋아하는 사람 만나본 적 없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 가르치려고 한다’ ‘시험 하나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건 말이 안 된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358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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