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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뜯어보니] 요금 찔끔 내렸지만 땜질 처방에 그쳐 

 

세종 =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전력 소매시장 개방 무산... 요금 산정 체계 전면 개혁해야

올 여름 ‘요금폭탄’ 논란에 휩싸였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개편된다. 2004년 이후 12년 만이다. 누진구간은 6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된다. 최저구간과 최고구간의 누진 배율은 11.7배에서 3배로 작아진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기요금 체계 개편방안’은 11월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공개된 후 같은 달 28일 공청회를 거쳤다. 12월 8일 국회 산자위 심의를 통과한 개편안은 이후 한국전력 이사회 의결,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12월 중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바뀐 요금제는 12월 1일 사용분부터 소급 적용된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국회에 보고한 누진제 개편안은 세 가지였다. 이 중 3안이 개편안으로 최종 확정됐다. 1안은 1단계는 필수 전력사용량, 2단계는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하는 누진제 원리에 가장 가까웠다. kwh당 요금(요율)도 선진국 기준과 유사했다. 하지만 전기를 많이 쓰는 가구의 요금 인하 효과가 작았다. 2안은 단계별 구간과 요율이 2단계까지 현행과 같다. 기존 누진제 틀을 유지하며 요금 인하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 다만 올해 여름 가장 많은 ‘요금폭탄’ 피해를 입었던 400~800kwh의 중소비 가구엔 요금 인하 효과가 작다. 두 안의 장점을 절충해 만든 것이 3안이다. 다수의 국회의원과 전기요금 전문가들은 3안이 1안과 2안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누진 구간과 배율을 완화하면서 특정 구간에만 요금 인하 혜택이 가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누진제 개편안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누진 단계와 배율은.

“현행보다 단계별 전력사용량 구간과 요율이 줄어든다. 1단계(200kwh 이하)가 93.3원, 2단계(201~400kwh)는 187.9원, 3단계(401kwh 초과)는 280.6원이다. 3안은 구간별 전력사용량 범위가 누진제의 기본 원리와 선진국 사례에 근접하며 요금 인하 효과도 골고루 받도록 단계별 요율도 조정했다(김용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

실질적으로 요금은 얼마가 줄어들까.

“4인 도시 가구의 봄·가을 한 달 평균 전력 사용량은 342kwh다. 이 가구가 여름에 1.84kw짜리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씩 틀면 441.6kwh를 더 쓰게 돼 총 783kwh를 소비한다. 현행은 누진 구간이 6단계(501kwh 이상)까지 올라가 요금을 32만1000원 낸다. 3안을 적용하면 최대 누진구간이 3단계(401kwh 이상)로 낮아진다. 요금은 15만원 줄어든 17만 1000원이 된다. 개편안은 전체적으론 평균 11.5%의 요금 인하 효과가 있다.”

200kwh 이하 소비가구에는 한 달에 4000원을 할인해준다던데.

“누진구간을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다 보니 이들 가구 요금이 기존보다 오르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으로 약 868만 가구가 그렇다. 이들의 가구당 전기 요금은 최대 3760원 늘어난다. 이와 달리 매달 1000kwh를 넘게 사용하는 ‘수퍼유저’는 여름과 겨울 1000kwh 초과 사용분에 한해 기존 누진제 6단계 요율(kwh당z 709.5원)을 적용한다. 무분별한 전력 사용을 막기 위해서다.”

교육용 전기요금도 인하되나.

“기본요금 산정방식이 바뀐다. 연중 최대 사용치를 기본요금으로 하던 걸 매월 최대 사용치로 정한다. 개편안이 적용되면 요금이 최대 50% 줄어들 전망이다. 유치원도 초·중·고교처럼 교육용 요금 혜택을 받게 된다. 사회적 배려 계층 지원도 확대된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장애인, 다자녀 가구, 사회복지시설 등은 1만6000원 한도에서 30%까지 요금을 할인 받는다. 원하는 날짜에 전기 검침을 받는 ‘희망 검침일제’ 대상도 전 가구로 확대된다.”

야당 안보다 정부 개편안이 요금 인하 효과는 적은데.


“야당의 개편안은 한전의 수입을 과도하게 감소시킨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개편안 대로라면 한전은 연간 1조5800억원과 1조6300억원의 손실을 각각 입는다. 정부 개편안의 연간 손실액은 9393억원이다.”

개편안 시행으로 여름철 ‘요금폭탄’ 논란은 상당 부분 줄어들 걸로 보인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개편안이 전력시장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땜질식 처방’이라고 지적한다. 개편안을 만든 새누리당과 정부의 누진제 개편TF는 전기요금 논란의 뿌리인 한전의 소매시장 독점 문제 등 전력시장 구조 개편도 논의했다. 하지만 최종안에서 이 부분은 빠졌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전력 소매시장에 경쟁이 도입되지 않은 채로는 전기요금 논란은 또 발생할 것”이라며 “한전 이외에 여러 사업자가 다양한 전기 요금제를 내놔 경쟁하면 가격은 자연스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TF는 주택용 전기요금보다 싼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의 인상도 논의했다. 에너지 가격의 오르내림에 따라 전기요금이 움직이는 연료비연동제 등도 회의에서 언급됐다. 그러나 최종적으론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11월 국회에서 누진제 개편안을 보고하면서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원가보다 상당히 비싸 인상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개편안이 확정되면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에 대한 개편도 검토·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료비연동제에 대해선 “내년 중 국제 컨설팅을 벌인 후 시행 방안을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누진제 문제를 넘어 10년 넘게 왜곡돼 온 전기요금 산정 체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0년대 이후 석유와 가스 등 국제 에너지가격이 급등했음에도 전기요금만 인상률이 매우 낮았다”며 “연료를 발전해 생산하는 2차 에너지인 전기가격이 발전 원료인 석유·가스보다 싼 왜곡 현상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생산원가가 올라감에도 정부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낮은 수준으로 묶어둔 탓이다. 이로 인해 난방과 농업용 온실연료 등에서 전기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원가에 충실한 전압별 요금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에 3.7%씩 부과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력원가 절감 ▶전력수급 안정 ▶전기안전 확보 ▶보편적 전력공급 등을 위해 정부가 전기요금에 추가해 걷는 돈이다. 정부가 전력기금은 과도하게 걷으면서 정작 잘 쓰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0년 1조3478억원이었던 징수액은 2015년 2조144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어기구·김경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까지 쌓인 전력기반기금은 약 4조2000억원이다. 올해 다 쓰지 못하고 이월하는 돈은 1조2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력산업기반기금 부과비율을 줄여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주형환 장관은 9월 국정감사에서 “신재생 에너지 투자, 저소득층 지원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커질 것”이라며 “기반기금 부담 비율을 인하하게 되면 이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 IT학과 교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파리기후협약 이행 등으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전력산업에 목돈이 필요해 기반기금은 중요하다”면서도 “누진제 논란으로 국민에게 전기요금 문제가 크게 부각된 만큼 예산당국과 전력당국이 긴밀히 협의해 합리적 부과율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364호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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