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강세, 인도 화폐개혁 영향 … 5년 전보다 40% 하락
[금의 귀환]이라는 해외 서적이 최근 국내에서도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국의 금융 전문 법률가인 제임스 리카즈가 지은 이 책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제 정세가 불안해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으니 금을 사라”고 강조한다. 리카즈는 과거에도 [화폐의 몰락](2014년)과 같은 저서를 통해 달러 가치가 크게 요동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금의 가치를 매기는 달러 가격이 오르면 대부분 금값이 올랐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는 금값이 오른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국내 금 유통 전문가도 리카즈와 비슷한 전망을 내놓는다. 미국 금 선물이 국내 금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을 2016년 발표한 염명훈 키움증권 금융상품영업팀장은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하며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정했졌다”고 말했다. 2016년 4월 상하이(上海)황금거래소에서도 위안화로 표기한 금 가격인 ‘상하이 금기준가’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상하이황금거래소는 당시 “금은 달러로 가격을 매겨 다양한 시장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위안화가 계속 달러를 견제하면 화폐 가치가 불안해져 금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게 염 팀장의 예상이다.
가격 낮아질수록 국내 금 거래량 증가이런 전망과 달리 2016년 말까지도 국내 금 가격은 하락세였다. 7월 1g 당 5만1000원대로 최고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연말에는 4만3000원대를 형성했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11월 초 4만8000원대로 반짝 올랐을 뿐 내림세가 이어졌다. 국제 금 가격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기준으로 국제 금 가격도 2016년 7월 1트로이온스(31.1g) 당 1364.9달러로 고점을 찍은 뒤 연말에는 1130달러 대로 떨어졌다. 증권가에서는 금 가격 하락 이유를 달러 강세와 인도 화폐 개혁으로 꼽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 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금 가격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또 국제 금시장의 최대 큰 손인 인도가 화폐 개혁으로 단기적인 경기 위축을 겪으며 금 소비량이 줄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가격이 낮아질수록 국내 금 거래량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2016년 월 거래량은 8월 12.6㎏에서 11월 26.3㎏으로 점차 늘어났다.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량은 16.6㎏으로 전년 대비 86% 증가했다. KRX 금시장에 연간 입고된 금 수량도 12월 처음으로 1t을 돌파했다. 2014년 3월 이후 2016년 12월까지 누적 입고량은 33t이다. 미국(8000t)이나 중국(3500t)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거래소를 통한 금 거래량이 증가하면 국가가 보유하는 금도 늘어난다.은행 골드바 거래 실적도 늘었다. 국민은행의 골드바 판매 실적을 보면 2016년 9월 1만3990g 팔렸던 것이 11월에는 2만 8620g로 두 배 이상이 됐다. 국민은행의 골드바 판매는 2016년 7월부터 줄곧 1만5000g 아래였는데 금값이 하락한 11월부터 판매량이 급증했다.KRX와 은행·증권사 등 42개 금융권에 금 실물을 공급하고 있는 한국금거래소도 바빠졌다. 한국금거래소는 서울 종로구 귀금속전문회사로 출발해 금·백금·은 등 귀금속 거래로만 2015년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2012년부터 도입된 귀금속 제품에 대한 정부의 품질관리 인증절차에 따라 해외 수출액도 증가했다. 수출 5000만 달러를 달성한 공로로 무역의 날 표창을 받았다.
[박스기사] Mini Interview |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상무 - “백금·은 투자에도 관심을”지난 12월 초 방문한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사에는 오전부터 왕래하는 고객이 많았다. 상담창구 직원은 “트럼프 당선 날에 금값이 거래 중에도 치솟아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상무는 대기업에서 금·은·백금·팔라듐을 제조해 판매하는 일을 하다 2006년부터 이곳에서 금 유통업을 맡았다. 2005년 법인을 설립한 한국금거래소는 2013년 국민은행에 골드바를 납품하며 매출 규모가 급성장했다. 송 상무는 이날 두꺼운 철문으로 둘러싸인 금 보관소를 공개했다. 1㎏ 골드바 보관소는 자리가 텅 빈 채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는 “원래는 금이 가득 차야 하는데 요즘 금 가격이 내려가자 워낙 많이 찾아서 비었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10년 넘게 실물 금 유통을 담당했던 송종길 상무로부터 금 투자 적기와 향후 시장 전망을 들어봤다.
금은 언제 투자해야 하나.“국제 금 가격이 내려가고,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더욱 투자할 만하다. 2011년 9월 무렵 금 1㎏은 8000만원에 판매됐다. 현재 같은 무게가 5000만원에 판매된다. 40% 하락한 가격이다. 부가가치세와 수수료를 감안해 15%를 더 내고 구입하더라도 차익실현이 가능하다. 전 세계 금 매장량은 5만t인데 매년 공업용이나 장신구 등으로 2500t 이상 사용되고 있다. 고갈 우려도 있어 장기적으로 안전자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금 실물을 찾아 보관하는 경우도 있고 계좌로만 거래하는 방법도 있는데.“금 실물을 사면 부가가치세 10%가 포함된 가격이라서 계좌 거래보다는 차익이 크지 않다. 수수료까지 감안하면 15% 이상 시세 차익이 있어야 실질적인 소득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엔 계좌 거래보다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거래할 수 있는 KRX 금시장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만 여기서도 실물로 찾을 때는 부가가치세가 부과된다. KRX 금시장에선 계좌 거래에 적용되는 차익의 15.4%의 배당소득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상위 자산가일수록 실물 자산을 보유하려는 특성이 있다. 특히 2014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미사일을 쏜다고 위협했을 때와 같이 혼란이 벌어지면 실물 금 거래가 더욱 는다.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이 외국보다 더욱 실물 자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크다.”
최근 금 실물 거래의 특징은 뭔가.“백금이 금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예년에는 백금이 금보다 비쌌다. 2014년 초반 국제 금 가격은 1트로이온스 당 1300달러대였던 반면 백금 가격은 1400달러대를 기록했다. 현재 금이 1100달러대, 백금은 800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백금이나 은처럼 다른 귀금속 자산에도 관심을 넓혀 투자 다양성을 확대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특히 은은 금보다 부피가 크기 때문에 도난 우려가 적어 개성공단 철수와 같은 불안 요소가 생기면 더욱 많이 팔린다.”
2017년 금 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달러 가치가 올라가 국제 금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금은 1~2년 단기가 아니라 10~20년을 보고 장기 투자해야 한다. 금 가격이 충분히 내려간 만큼 장기적으로는 투자 가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