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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알파고 60전 전승 비결은 딥러닝과 창의성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기업 경영에도 독창적 발상은 필수... 인공지능이 바꿀 세상 미리 대비해야

근래 국내 바둑 웹사이트에 ‘마스터’라는 아이디의 기사가 나타났다. 마스터는 ‘명인(名人)’이란 뜻이다. 마스터는 정상급 고수들을 하나 둘 꺾기 시작하더니 무려 60전 전승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했다. 한국 랭킹 1위 박정환 9단과 중국 1위 커제 9단도 마스터에게 참패를 당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마스터가 알파고임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알파고가 아니고는 세계 최고수를 그리 쉽게 무너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스터가 60승을 거두고 난 뒤 구글에서는 마스터가 알파고임을 밝혔다. 이 결과에 프로기사들을 비롯한 바둑계 사람들은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알파고가 강해졌다고 하더라도 최고수들이 한 판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지난해 3월 이세돌과 대결할 때에 비해 알파고는 훨씬 더 강해졌다. 약 10개월 만에 엄청난 진보를 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짧은 기간에 이처럼 실력이 늘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어떤 방법으로 이렇듯 실력이 향상됐을까. 해답은 바로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둔 자료, 즉 수많은 기보(棋譜)를 통해 정보 처리를 한다. 이 데이터를 통해 특정 상황에서 고수들이 둔 수들을 벤치마킹한다. 그러나 알파고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런 자료를 가지고 자체 학습을 한다. 답이 분명하지 않은 문제를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데이터를 수정한다.

사실 이런 방법은 사람도 사용한다. 프로기사들은 바둑 공부를 할 때 고수들의 기보를 복기하며 훌륭한 기법을 배운다. 해결책이 애매한 부분은 바둑돌을 놓아가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이리저리 검토한다. 그래도 결론이 안 날 때는 동료 기사들과 소집단을 이뤄 공동연구를 한다. 알파고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 것인데, 다만 그 공부량에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알파고의 독창적 발상


알파고나 기사들의 이런 공부법은 기업에서도 응용할 필요가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황일 때 경영의 고수들은 과연 어떤 수를 두었는가를 알아본다. 그렇게 해서 몇 가지 대안이 나왔다면 이것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시뮬레이션을 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고수들의 처리법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개량된 알파고는 바둑의 기술에서 특별한 점을 보여줬다. 매우 특이하게도 알파고는 사람들이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독창적인 수를 두고 있다. 프로기사라면 약간 나쁜 수라고 여기는 수나, 아직은 둘 시기가 아니라고 보는 수들을 자유롭게 두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추운 날씨에 화사한 봄옷을 입고 나온다거나, 카페에 개인 사무실을 차리는 식이다.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할 수 있다. 예를 보자.

[1도] 이런 장면에서 흑1에 두고 나서 흑3에 두었다. 이것은 ‘3삼 침입’이라고 하는 수다. 정석에 있는 수지만 지금처럼 주변에 아무 돌도 없는 상황에서 쓰는 것은 처음 본다. 프로기사 중에 이 상황에서 알파고처럼 흑3에 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알파고가 이 수에 착안했다는 것이 특별하다. 또한 이런 수를 자유롭게 두어 승리하는 것도 특이하다.

[2도] 이것은 알파고가 판팅위라는 중국 일류 고수와 둔 바둑이다. 백1로 흑에 붙여 간 후 흑4까지 응수하자 백5로 바싹 다가섰다. 이 수법도 특별하다. 백1과 백5는 족보에 있는 수법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때 이르게 백1에 붙여간 것은 보기 드물다. 또한 흑 돌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백5로 다가선다는 것도 특이하다. ‘적이 강한 곳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알파고의 발상은 확실히 인간 고수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3도] 좌변에 다가가려면 그냥 백1에 두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렇게 두면 흑2로 벌려 집을 차지하는 것을 꺼렸던 것 같다. 그래서 상변에 먼저 붙여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알파고의 기법을 보면 20여 년 전 한국이 일본을 꺾고 세계 최강으로 올라설 때 가 생각난다. 당시 한국은 ‘한국류 정석’이고 하는 독특한 수들을 개발해 세계 정상으로 올라섰다. 모양과 이론을 중시하는 일본 바둑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수들을 구사하며 세계 최강자가 됐다. 알파고도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며 새로운 수법으로 인간 고수들을 무너뜨렸다.

기업경영에서도 마켓 리더가 되려면 다른 경쟁자들과는 다른 독창적인 발상이나 상품이 필요하다.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진부한 방식에 머물러 있어서는 경쟁력을 갖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공중전화 부스 신세 안 되려면

알파고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인공지능 시대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됐다. 다보스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이제 인류가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같은 신조어가 새로운 유행을 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기업은 물론 일반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자리에 변화가 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있는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알파고 같이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나 로봇이 나오면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당연히 이런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개발도 필요하지만 변화되는 일자리나 삶의 방식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으면 갑자기 쓰나미를 만난 것처럼 일대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나의 예를 생각해 보자. AI 의사와 인간 의사가 있다고 할 때, 환자가 누구에게 검진을 받고 싶어할까. 진단의 정확도를 고려할 때 AI 의사가 당연히 더 인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인간 의사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 손님과 상담하고 AI를 조작하는 일이 의사의 주업무가 될지 모른다. AI 의사의 등장으로 인간 의사가 의술의 최고 전문가라는 위상도 바뀌게 된다. 현재 바둑계에서는 무적의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프로기사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그동안 바둑 기술의 전문가로 자부해 왔는데, 이제는 알파고가 “나보다 하수인데 고수는 무슨…” 하면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런 사태는 거의 필연적이다. 그래서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길거리의 공중전화 부스 신세가 된다. 정보화 혁명의 산물인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던 공중전화 부스는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다.

인간 최고수들을 모조리 무찔러 무적의 바둑 신으로 등장한 알파고를 보며 그 비결과 기술, 그리고 미래를 예측해 보았다.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미래사회에 대비하며 알파고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보시기 바란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70호 (2017.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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