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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기업 공약 살펴보니] 재벌·대기업 때리기 집중 더 독해진 경제민주화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후보 대부분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날 세워 … 재계 “누가 대통령 되든 부담”

19대 대선 후보의 경제·기업 관련 공약은 사실상 ‘규제 강화’로 요약된다. 경제 회복을 외치면서도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표심 잡기 필수 어젠다로 ‘기업 때리기’를 선택한 것이다. 최순실 사태로 불거진 반(反)기업 정서에다 재벌개혁 요구까지 겹쳐진 영향이다. 특히 후보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두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의 날을 세웠다. 경제계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 주체인 기업을 이토록 몰아세우면서 ‘경제 대통령’ ‘복지 대통령’을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기업 때리기 중심에는 재벌과 대기업이 있다.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선물했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다른 개발도상국 또한 이런 방식으로 경제 규모부터 먼저 키워나갔다. 그러나 이 구조가 수십 년간 이어오면서 정경유착·부정부패·승자독식 등 부작용도 컸다. 특히 최순실 사태와 재벌가의 뇌물혐의가 도화선이 되면서 재벌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재벌과 대기업 중심 경제의 폐해를 바로잡겠다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보들은 재벌·대기업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공정거래위원회 권한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 제한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놨다.

문 후보는 특히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다중대표소송제 등을 통해 소액주주권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공정경제’를 주창하는 안 후보는 기업분할명령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강화와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자는 입장이다. 유승민 후보도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공정위 심사기능과 심판기능 분리 등을 내걸었다. 심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까지 강조하고 있다. 그는 공기업 임원 임금을 최저임금자의 10배(약 1억5000만원), 대기업 임원은 30배(약 4억5000만원)로 상한선을 정했다. 또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 카드도 꺼냈다.

이 밖에도 재벌·대기업을 개혁·규제하기 위한 공약은 수두룩하다. 금산분리를 위해 문 후보는 통합금융감독시스템 구축을, 안 후보는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금융감독체계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총수 사면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을, 안 후보는 사면심사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해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심 후보도 50억원 이상 배임 횡령죄는 특가법상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고 재벌 일가 황제노역·황제면회 금지도 내걸었다.

재계 “투자·고용 위축될 수도”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기업 때리기에 열중하면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대한민국 산업계에는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4대 그룹 등 재계에선 유력 대선 후보들의 재벌개혁 공약이 자칫 기업의 경제 활동을 억누르고 투자·고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 대선 공약으로 기업을 규제할 만한 수단이 다 나왔는데 이렇게 해선 한국 기업은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며 “규제뿐 아니라 기업 활동도 더 잘하게 할 수 있는 장치나 기업가정신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함께 나와야 진정한 재벌개혁”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은 특히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차단 공약과 관련 경영권 방어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도입은 기업의 정당한 의결권 행사를 막고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은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경영권 방어장치가 부족한 편인데 이마저도 무력화될까 걱정된다”며 “대주주의 사익을 근절하려 한다면 균형을 맞춰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대선 주자들의 공약이 잘 이행되면 재벌 지배구조가 개선되는 등 순기능이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반적으로 진보 진영의 공약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관리 방안으로 논의돼오던 것들”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잘 실현하면 지배구조 개선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기사] 중소기업청, ‘청’ 떼고 ‘부’ 달까 | 후보 모두 중소기업 지원 강화 공약

대선 주자들은 규제 일변도인 대기업 공약과 달리 중소기업 공약은 ‘지원 강화와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각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 밑바탕에 깔린 문제의식은 같다.

성장의 과실을 재벌·대기업이 독차지하는 경제구조를 방치한 탓에 경제가 활력을 잃고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후보들은 중소기업 전담부처의 신설을 공통으로 내걸었다.

공약대로라면 지금의 중소기업청은 장관급 ‘부’ 단위로 승격한다. 문 후보는 ‘중소기업, 벤처기업,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과 법안을 만들며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중소벤처기업부 신설’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었다. 안 후보를 비롯한 나머지 3당의 후보도 중소기업 정책 전담부처 신설을 약속했다.

중소기업 정책의 실행 방식은 후보마다 차이를 보인다. 심 후보는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안 후보와 홍 후보, 유 후보는 민간 주도를 강조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만 참여할 수 있는 적합업종 지정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문재인·심상정 후보는 적합 업종 또는 고유 업종 지정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대기업 진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그러나 홍준표·유승민 후보는 현재 사전조정제도를 보완하는 선에 머물고 있다. 안 후보는 관련 공약이 없다.

4차 산업혁명 관련 후보들 대부분이 창업 활성화와 연구개발 예산 증액 등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 후보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관 협업체계 구축,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신성장을 견인하겠다고 공약했다. 안 후보도 융합기술 중심의 신산업·혁신형 투자 등으로 4차 산업혁명 플랫폼 선도, 민관 공동 연구 국가 기술융합센터 설립, 4차 산업혁명 인재 10만 명 양성, 자율주행차 핵심부품 개발 및 융합 생태계 기반 마련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홍 후보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정보과학기술부로 변경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미래전략위원회를 설치 및 특별법 제정으로 4차 산업혁명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유 후보는 벤처·창업 활성화 차원에서 혁신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심 후보는 대통령 직속 4차 산업 위원회를 신설하고 전문 인력양성을 위한 정부와 산학연간 협업체계 구축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4차 산업혁명 등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기 위해 기초 과학 연구를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1383호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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