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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맞지 않는 4가지 법안 보니] 취지는 좋지만 규제에 매몰돼 자가당착 빠져 

 

남승률·황정일·함승민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해운법·주택법·유통법·SW산업진흥법 개정안 논란... 도입 목적 다시 점검하고 바로잡아야

01. 해운법 개정안 | 비난하던 일감 몰아주기 다시 하라는 꼴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3자 물류(제3자에게 물류를 위탁) 사업을 막으려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이 2월 9일 대표 발의한 ‘해운법 일부법률개정안(해운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의 취지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자는 것이다. 대기업이 3자 물류를 하면서 중소 물류회사의 일감을 뺏고, 대기업의 지위를 악용해 해운사에 낮은 운임을 강요하는 식으로 시장질서를 어지럽혔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2015년 한국 7대 물류 자회사가 처리한 수출 컨테이너는 611만 개로, 전체 수출 물동량(732만 개)의 83%였다. 같은 해 7대 물류 자회사가 취급한 764만 개의 수출입 물량 중 62.4%는 3자 물량이었다. 한국선주협회는 입찰에 참여한 선사들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거나 할증료 전체를 운임에 포함하는 총비용 입찰 강요, 수송계약 후 빈번한 재협상으로 운임 인하를 압박하는 행위 등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물류 자회사의 일부 일감을 중소 물류회사로 돌려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논리를 편다. 한국선주협회 김경훈 부장은 “2000년 초반 대기업의 물류 자회사가 잇따라 나오면서 계열사 물량은 물론 남의 화물까지 빨아들여 중소 물류회사가 고사 직전”이라고 주장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도 “대기업 물류 자회사가 남의 물량을 빼앗아 오고 선사를 좌지우지하는 등 횡포가 심했다”며 “오죽하면 내부 물량만 처리하라는 이야기가 나오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런데 해운법 개정안을 들여다 보면 지금까지의 경제민주화 기조와 배치된다. 개정안 조항을 보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1항에 따라 지정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로 통지된 화물운송사업자(국제물류주선업자 포함)는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 이외의 사업자와 해운법에서 정하는 해운중개업, 물류정책기본법에서 정하는 국제물류주선업 등의 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 되도록 함(안 제31조의2제1항). 제31조의2제1항의 적용을 받는 화물 운송사업자에 대하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3(특수 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 의제), 제45조의4(특수 관계법인으로부터 제공받은 사업기회로 발생한 이익의 증여의제) 및 제45조의5(특정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 의제)를 적용하지 아니하도록 함(안 제31조의2제2항). 이 조항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이나 한진 등은 각자의 그룹 계열사 물량만 취급해야 한다.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재벌 총수 일가의 부당한 부의 대물림을 방지하고, 계열 회사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2011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를 시작했다. 2013년에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부당 지원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행위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해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와 딴판으로 물류 업계에서는 일감 몰아주기가 오히려 장려되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물류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3자 물류회사를 키워온 정책과도 배치된다. 한국선주협회 등에서는 “대기업은 해외 무대에서 영업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국내 물류 대기업이라고 해도 DHL·페덱스·UPS 등과 겨루기에는 버거운 게 현실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사회적 요구에 따라 내부 거래 비중을 낮춰온 기업이 엉뚱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현재 CJ대한통운의 외부(비계열) 물량은 전체의 88.9%에 이른다. 한진도 90% 선이다. 이와 달리 LG 계열의 범한판토스는 33.6%, 삼성SDS 32%, 현대글로비스 30%, 롯데로지스틱스 8%에 불과하다. 계열사 물량이 적은 CJ대한통운과 한진은 3자 물류 길이 막히면 당장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해운법 개정안은 한정된 이익을 나눠서 어려운 중소 물류회사를 돕자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중소 물류회사의 경쟁력 강화나 시장 확보는 다른 정책수단으로 도모해야지 경쟁을 제한하고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를 강화해 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해운업 개정안이 중소 선사를 살리는 최선책인지 의문”이라며 “세계적인 추세는 선박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라고 말했다.

현재 해운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 내용 중 일부를 고치지 않으면 국회 통과가 어려울 전망이다. 정유섭 의원실 관계자는 “공정한 시장경쟁의 룰을 만들자는 것이지 일률적 강제나 시장주의 훼손 의도는 없다”면서도 “법안 심사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부작용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도 “CJ대한통운과 한진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국회 전문위원, 입법조사관 등에게 관련 내용을 충분히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물류 업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류 업계 관계자는 “통합 물류지원 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부처도 법도 기능적으로 분리돼 있다”며 “해양수산부와 국토교통부는 노무현 정부 때는 (수산 부문을 제외하고) 하나였지만 이명박 정부 때 다시 분리됐다”고 말했다.

02. 유통법 개정안 | 내수 어렵다면서 유통 점포 출점 막아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제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의무 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는 늘지 않았다.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 등의 영업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내수 활성화 대책과 유통 규제가 엇박자를 내고 있어서다. 더욱이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에서는 영세 상인의 표심을 얻기 위해 대형 유통 업체 출점과 영업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유통 업계는 포퓰리즘식 규제 남발로 반(反)기업정서가 확산되고 결국 내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돼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22개에 달한다. 대부분 대형 유통사업자를 겨냥한 규제 법안이다. 백화점·대형마트·복합쇼핑몰·시내면세점·편의점 등으로 규제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대형마트의 경우 대규모 점포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고 의무 휴업일을 월 2회에서 4회로 늘려야 한다. 영업규제 대상 점포를 백화점·시내면세점·하나로마트까지 포함했다.

국내 유통 업계가 부진한 대형마트 사업의 대안으로 꼽고 있는 스타필드 하남, 롯데월드몰 등의 복합쇼핑몰도 일요일 강제 휴무에 들어갈 공산이 커졌다. 20대 국회가 시작된 지난해부터 복합쇼핑몰 규제 법안이 잇따라 나왔고, 대선 주자들도 공약에 해당 내용을 담았다. 정치권에서는 유통법 외에도 가맹사업법을 개정해 편의점의 심야시간(밤 12시~오전 6시) 영업을 금지하는 방안도 내놨다. 편의점이 과도하게 몰리는 걸 막기 위해 편의점 간 영업거리 제한 기준을 새로 도입하겠다고도 했다.

유통법은 1997년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몇 번의 개정을 거치다가 2012년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정을 마련했다. 개정안은 상대적으로 약자이며 소상공인이 많은 시장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 사업자의 영업일 제한을 두게 했다. 특히 대형마트는 내수 활성화와 소비자 편의성 제고라는 기능에도 전통시장 쇠퇴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결국 2010년 이후 여러 차례 유통법이 개정되면서 격주 일요일 의무휴업, 전통시장 인근 출점 제한, 신규 출점 시 인근 중소상인과 상생협의 의무화 등 규제가 까다로워졌다.

그러나 이후 규제의 실효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 규제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의무 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는 늘지 않아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의 쇼핑 대체 방안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전통시장’이라는 응답은 9.4%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동네 중·대형 슈퍼마켓’이나 ‘다른 날 대형마트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전통시장 매출은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이 실시된 2012년 20조1000억원에서 2013년 19조9000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실익과 폐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남발성 규제라는 비난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통업 경기도 얼어 붙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의무휴업·영업시간 제한 도입 이후 2015년까지 대형마트사의 343개 기존점 매출은 21.1% 감소했다. 새로 문을 여는 점포도 줄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각각 1993년과 1997년 1호점을 개점한 이후 처음으로 올해 새 점포를 열지 않기로 했다. 물론 대형마트 매출 감소가 전부 규제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온라인과 모바일 시장 매출 증가 탓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대형마트 규제가 주변 상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대형마트와 중소 수퍼마켓은 서로 경쟁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대형마트와 중소 수퍼마켓은 각각 다른 시장(소비자 그룹)에 직면하고 있어 서로 경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소 유통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대형 유통 업체 규제는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5년 12월 보고서에서 대형 유통점 영업 제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영업 규제로 인한 대규모 점포 등의 매출액 감소가 전통시장으로 유입돼 상생이 가능한지 의문이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형 유통점에 대한 규제의 강도뿐 아니라 범위까지 더 넓어지면서 이런 논란은 앞으로 더 번질 가능성이 있다. 복합쇼핑몰과 면세점 영업 제한이 과연 중소상인 보호라는 목적에 부합하느냐는 문제 때문이다. 시내면세점의 경우 내국인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10~20% 정도 밖에 되지 않고, 그마저도 해외 여행을 가는 고객들이 대다수여서 골목상권 보호와 연관성이 적다는 지적이다. 최근 부상하는 복합쇼핑몰도 전통시장 같은 중소상인과 소비자층이 겹친다고 보기 어렵다.

유통 업계에서는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규제들이 모두 시행될 경우 매장에서 영업하고 있는 중소상인과 납품 업체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주말 쇼핑’이 제한되면서 소비자 편익이 저하되고, ‘코리아세일페스타’ 같은 정부의 내수 진작책에도 내수가 위축되는 등의 2차 피해에 대한 걱정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소비 촉진을 통한 내수활성화 정책 기조와 배치되며 영업의 자유, 소비자 권리 침해뿐 아니라 중소기업 입점 업체의 피해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03. 주택법 개정안 | 주택시장 살리려고 푼 청약규제 다시 부활


▎2015년 말 청약 접수를 받는 부산 해운대자이 2차 견본주택 앞에 방문객이 길게 줄을 선 모습.
3월 말 의원 입법 형태로 발의된 ‘주택법 개정안’도 논란이 되고 있다. 주택시장 활성화 혹은 정상화를 이유로 지난 정부에서 풀었던 청약 규제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주택건설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원욱 의원이 3월 말 대표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에 따르면 주택시장이 과열된 곳에 대한 청약 규제가 지금은 빨라도 40일 이상 걸리지만 올 하반기부터는 일주일로 단축된다. 또 정부의 규제망을 벗어나 과열 양상을 보이는 곳의 민간택지의 분양권은 전매(轉賣) 제한 규제를 받게 될 전망이다.


개정안은 아파트 분양시장이 과열됐거나 과열될 우려가 있는 지역은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이하 주정심) 심의를 거쳐 전매제한, 청약 1순위 자격 제한, 재당첨 제한 등의 청약 규제를 즉각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주택법 시행령에서 대상 지역을 일일이 지정해야 하는데, 앞으론 시장 상황에 맞춰 필요할 때마다 심의를 통해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이와 함께 수도권 외 지방 민간택지에서 공급되는 주택도 3년 이내로 전매제한 기간을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2015년 4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이후 지금은 지방 민간택지의 분양권 전매제한 규제가 없다. 그러나 법이 통과되면 3년여 만에 지방의 민간택지 분양권 전매제한이 부활하게 되는 셈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나온 11·3 대책에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주택법 개정안은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해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와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택건설업계는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과 함께 ‘시장 자율화’를 외치며 각종 재건축 규제를 비롯해 주택시장의 규제를 대거 완화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청약 1순위 자격 완화 등 청약 규제를 대폭 풀었다. 한 주택건설회사의 임원은 “2015년 청약 1순위 자격 완화 이후 2년여 만에 청약시장을 다시 옥죄겠다는 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분양시장이 위축될 수 있는 만큼 주택건설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특히 분양 등 주택건설업은 정부 정책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택건설업은 정부가 규제를 풀면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이어서 ‘천수답(天水畓·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에 비유되기도 한다.

주택건설업계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분양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분양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서울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구) 등지의 아파트 분양권을 입주 때까지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의 ‘11·3 부동산 대책’ 이후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부동산 정보회사인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일 부동산 대책 이후 3개월(지난해 11~12월, 올해 1월)간 지방 5개 광역시에서 1순위 청약자는 34만 424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5만2786명)보다 37.7% 감소했다. 전국의 1순위 청약자는 지난해 동기(105만7913명)보다 24.3% 감소한 80만1348명에 그쳤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 팀장은 “청약 규제에다 대출 규제까지 더해져 분양시장은 물론 주택시장 전반이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분양시장 위축은 주택건설업계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팔리지 않는 ‘미분양’ 주택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 늘어난 6만1063가구다. 1월 말(5만9313가구)보다도 3% 증가했다. 미분양은 지난해 10월 5만7709가구에서 11월 5만7582가구, 12월 5만6413가구로 계속 줄었으나 올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주택시장은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규제 시그널만으로도 주택 구매 심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 후 3개월 뒤 시행된다. 법 시행 전이라도 규제 강화·완화 조정 예정지를 지정해 놓을 수도 있다. 이 주택법 개정안은 의원입법 형태지만 국토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발의된 법안이라 사실상 정부 공동 법안이다. 주택건설업계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당장 부산이 전매제한 규제를 받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11·3 대책에서 부산 해운대구 등 5개 구는 청약 1순위 제한이나 재당첨 제한 대상이 됐지만 전매제한 규제는 피해갔다. 이 때문에 올해 1분기 청약 경쟁률 상위 10위권 중 4곳이 부산일 정도로 분양시장 열기가 뜨겁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그나마 유일하게 시장이 움직이고 있는 부산까지도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업계의 우려와 달리 국토교통부는 11·3 대책의 후속 조치로 당장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택시장이 위축됐거나 위축될 우려가 있는 곳에 대해선 건설·청약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세제 지원을 할 수도 있다”며 “시장의 움직임에 맞게 규제나 규제 완화를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이지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04.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 | 상생 취지 좋지만 중소·대기업 경쟁력 하락

2013년 개정된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도 논란의 대상이다. 현행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중소기업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IT융복합 사업, 차세대 신성장 사업 등 소프트웨어가 포함되는 많은 정부 공공사업에 대기업은 참여할 수 없다. 이에 창조적 신성장 산업 추진이 위축되고 연구개발(R&D)을 통한 신기술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SW산업진흥법은 공공IT 시장에서만이라도 인위적인 보호막 아래서 중견·중소 IT기업들이 대기업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고 역량을 키우라는 의도에서 개정됐다. 이에 따라 상호출자제한집단 대기업의 경우 공공IT 사업 입찰에 일절 참여할 수 없다. 매출액 8000억원 이상의 SW 대기업은 총 사업비 80억원 이하의 공공사업을 수주하지 못한다. 국방·외교·치안·전력·국가안보 등 국가 중요 사업일 경우 입찰 참여 제한 예외 인정 사업으로 규정해 심사를 통해 SW 대기업의 공공사업을 허용하지만 제한적이다. 지난해 상호출자제한집단 대기업의 공공 SW 분야 참여 제한 예외 사업은 9건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도입한 이 제도가 되레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하는 빈 공간을 ‘전문성이 떨어지는’ 중견기업이 메우면서 기술력 높은 중소기업이 오히려 SW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견·중소 IT기업 안에서도 제 살 깎기 가격 경쟁, 협력 업체의 희생 등 기존 시장 구조와 동일한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공 SW 사업의 유찰률도 높아졌다.

본지가 지난해 나라장터 사이트에 공개된 20억원 이상 SW 구축·유지관리 사업 453개를 조사한 결과 43.4%인 197개 사업에서 경쟁 입찰이 이뤄지지 않아 유찰됐다. 매년 20억원 이상 사업 유찰률이 30% 미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늘었다. 중견 업체들이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공공SW 사업 입찰을 꺼리기 때문이다.

공공 SW시장이 막히자 대기업에서는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고급 인력이 회사 내 다른 부서로 재배치되거나 아예 중견 IT회사로 이직하는 후폭풍이 불었다. 산업은행의 계정 및 정보계 부문 아웃소싱을 맡아왔던 삼성SDS는 결국 공공 IT 시장뿐만 아니라 외부 금융IT 시장에서 손을 떼기도 했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중소기업은 투자자금 확보 어렵고. 투자 자체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대기업의 적극적 기술 개발이나 투자가 일어나지 않아 국내 SW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시장은 낙후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SW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대기업은 해외 전자정부사업 입찰에 참여하려 해도 기존 사업 참여 기록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해외 정부가 인지도 높은 대기업을 선호해 중소기업은 참여 기회가 적다. 유지·보수 등 일부 사업에서라도 대기업 참여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술로 세계로 나가려면 국내에서의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대기업은 국내서 공공사업 입찰에 제한돼 있기 때문에 내놓을 만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일례로 한국은 스마트도로의 기반 기술인 차세대 지능형교통시스템(C-ITS) 분야에서 해외 업체에 선수를 빼앗긴 상황이다. 기존 지능형교통시스템(IST)에서는 삼성SDS, SK CNC, LG CNS 등 대기업 계열사를 중심으로 수출이 활발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이철기 아주대 ITS대학원장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과 규제가 역전의 빌미가 됐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초창기 C-ITS 사업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관련 사업이 줄었고, 소프트웨어발전법으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설명이다.

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SW 사업의 대기업 참여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채 국장은 “대기업과 중소업체·개발자 간 불공정 거래 관행 같은 것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해 문제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며 “단순히 업체와 사업규모에 따라 입찰 참여를 제한하면 결국 부작용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연구원장은 “SW산업진흥법의 대기업 참여 제한이 ‘공생’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부작용만 낳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SW를 발주해 소유하는 게 아니라 민간에서 개발된 서비스를 빌려 쓰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우회적인 정책으로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1383호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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